'아버지는 항상 나의 그림자이자 영혼의 반석.'
항상 밖에서 활동하며 말을 많이 하지 않는 경상도 아버지는 아들에게 살가운 존재가 아니다. 아들이 성장할수록 다가가기가 더 어려운 존재다. 손잡고 함께 걷거나 따뜻하게 포옹 한번 하는 부자지간도 많지 않다.
작가 정찬은 그의 대표작인 '그림자 영혼'에서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처럼 아들은 아버지에 대한 적대감과 그에 대한 죄의식이 무의식 속에 자리 잡는다고까지 말했다. GOD의 멤버였던 손호영씨도 지난해 말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아버지는 내 영혼을 지배하고 뒤를 따라다니는 '그림자 영혼'"이라고 말했다. 그만큼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자신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 인물이 아버지다.
30대 후반의 나이에 소화기 전문 종합병원인 드림병원을 운영하고 있는 배종석(37) 병원장과 아버지의 유업을 이어받아 대구웅변협회를 이끌고 있는 김태현(40) 사무총장을 만나 이들에겐 아버지가 과연 어떤 존재인지 들어봤다.
두 사람은 "돌아가시기 전엔 잘 몰랐던 아버지에 관한 일들이 어느덧 내 머릿속에 자리 잡고 있다"며 "현재 내가 하고 있는 일이 아버지가 그토록 바랐던 일의 연장선상에 서 있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배종석 병원장, '따뜻한 병원은 아버지 정신'
대구 수성구 범어네거리 인근에서 '속 보는 내과'로 주가를 높였던 배종석 드림병원장(내과전문의)은 지난해 1월 소화기 계통의 전문병원인 드림병원을 개원했다. 병원의 경영 모토는 '따뜻한 병원, 내 가족 주치의'다. 이는 8년 전 교통사고로 돌아가신 선친(배기종)이 남겨주신 정신적 유산이나 다름없다.
배 원장의 말에 따르면 그의 선친은 한마디로 '오지랖이 넓은 사람'이었다. 8남매 중 장남이었던 선친은 결혼한 뒤 부인과 함께 7명의 동생들이 시집·장가가는 것을 다 도왔으며 이도 모자라 부모 없이 떠도는 사람들을 8명이나 집안으로 들여 식구처럼 살도록 도와줬다. 이들 중에는 아직도 연락을 하는 이들이 있다. 자동차도 일부러 승합차를 사 버스가 다니지 않는 길을 가는 동네 사람들을 택시기사처럼 태워주는 일도 마다하지 않았다. 설, 추석 등 명절엔 가족이 타고 있어도 차에 사람을 더 태울 수 없을 때까지 길 위의 사람들을 태워줬다.
어릴 때는 이런 아버지가 싫기도 했다는 배 원장은 이제 그 정신을 병원 경영에 철저하게 투영시키고 있다. "우리 병원에서 치료를 못 해줄 때는 대학병원 등 가장 믿을 만한 곳을 알아본 뒤 소개해 줍니다. 또 환자가 암을 발견하고도 언제 수술할지 몰라 불안해하지 않도록 최선의 배려와 조치를 하는 것이 드림병원의 경영 정신입니다."
그는 "어릴 때는 법대에 가고 싶다는 생각도 했는데 선친은 아픈 환자들을 직접 돌보며 이 사회에 더 많은 것을 베푸는 의사가 되길 바랐다"며 "선친과 방식은 다르지만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하는 것이 앞으로 내가 해야 할 일"이라고 밝혔다. 이와 함께 앞으로 병원의 경영흑자를 바탕으로 해외 봉사활동과 병원 의사 및 직원들의 안식년 제도 등을 정착시키고 싶다고 덧붙였다.
선친의 유산은 드림병원을 세우는 종자돈이 됐다. 선친은 고향인 성주에서 엿질금을 만드는 공장을 했는데 제법 벌이가 쏠쏠해 남긴 유산이 드림병원 설립에 큰 도움이 됐다.
이런 선친을 잊지 못해 배 원장은 8자 걸음조차 고치지 않고 그대로 따라한다. 워낙 바쁘게 의대-인턴-레지던트-개인병원 개원-종합병원 개원의 길을 가다보니 아버지의 모습조차 잊고 살았던 것이 사실.
이런 탓에 최근 본인에게 아버지의 모습이 어디에 있나 고민하다, '아! 완전 8자 걸음이 그렇지'라고 생각이 들어 한때 고쳤던 8자 걸음을 요즘은 의식하지 않고 걷고 있다. 선친을 잘 아는 동네 사람이 뒤에서 봐도 '그 아버지랑 똑같이 걷네'라는 말이 나올 수 있도록.
배 원장을 비롯해 다섯 병원장이 있는 드림병원은 위내시경, 대장내시경 등 소화기 계통의 전문 종합병원으로 암이나 종양 진단시 원스톱으로 수술이 가능한 병원이다. 기존의 획일화된 건강검진에서 벗어나 수진자의 병력과 가족력에 맞는 맞춤형 검진으로 환자들의 만족도를 높이고 있다. 또 협대역 영상(NBI·특정 파장과 빛만 선택해 영상을 얻는 기술)을 도입해 정확하고 섬세한 진단을 하는 병원으로 이름을 높여가고 있다.
배 원장은 성주에서 태어나 대구 경운초교·중리중·대륜고를 거쳐 대구가톨릭의대를 졸업한 뒤, 서울아산병원과 대구가톨릭대병원에서 일하다 '속 보는 내과'를 개원했다. 드림병원은 지난해 1월부터 개원해 꾸준한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김태현 사무총장, '아버지 반만 했으면…'
대구웅변협회 김태현 사무총장은 아버지의 그늘이 너무 크다. 8년 전 돌아가신 김정규 전 대구웅변협회장이 지역사회에 너무 많은 기여를 했을뿐더러 활동 폭도 넓어 요즘도 어딜 가나 선친의 그늘을 뛰어넘어 활동하기가 벅차다.
김 사무총장은 "사실 아버지의 반에 반이라도 따라가지 못해 애를 많이 먹었고, 30대 때는 철없는 행동도 많이 했다"며 "이제 불혹의 나이에 접어들어 아버지의 이름에 누가 되지 않도록 새로운 마음가짐을 갖고 더 많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지금도 선친의 친구분들이나 제자들이 제 일을 돕고 있어 큰 힘이 된다"고 덧붙였다. 그는 한번씩 힘이 들 때는 아버지 생각을 하며 심기일전한다고 했다.
고(故) 김정규 회장은 대한민국 웅변계와 지역 사회 발전에 상당한 공로를 세운 유명 인사였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각종 전국웅변대회에 출전해 상을 휩쓸었고 영남신학대학교를 졸업한 뒤, 교육부 인가 전국 최초의 웅변학원인 영남웅변학원을 설립했다. 이후 13년간 대구학원총연합회 회장, 대구웅변협회장, 대구민방위협의회장, 민자당(한나라당) 대구홍보위원장 등 여러 단체의 대표 자리도 맡아 지역 사회에 이름을 알렸다.
박정희 전 대통령 시절엔 해외안보 계도단장(별정 1급)을 맡아 해외 동포들에 대한 국가관, 민족관 교육에 앞장서기도 했다. 이런 활동 덕에 대통령 표창을 비롯해 국민훈장 석류장, 자랑스러운 대구시민상도 받았다. 그의 큰아버지는 김홍규 예음찬양음악신학교 학장.
이런 이유로 김 사무총장은 선친의 뜻을 이어받아 대구 웅변계의 중추적 역할을 하는 것이 결코 쉽지 않았다. 30대 초반의 사회 초년병 시절에 아버지의 1주기 사업을 도맡아야 했으며, 자신의 진로 역시 선친과 궤도를 같이할 수밖에 없었던 것.
하지만 김 사무총장은 선친의 신조인 '근면·정직·봉사'의 정신으로 살기 위해 노력하며, 대구 스피치계의 달인으로 변신에 변신을 거듭하고 있다. "아버지는 불도저 같은 분이셨습니다. 항상 일에 파묻혀 사셨고요. 그래서 어렸을 때에는 아버지가 하시는 일이 너무 싫었는데 지금은 많이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는 선친을 추억하며 "벌써 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8년 남짓 됐지만 직업이 아버지와 똑같아 생각이 날 때가 많다. 특히 아버지가 쓰신 여러 자료나 책, 원고 등을 볼 때면 일에 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더불어 아버지에 대해 "가정에서는 굉장히 엄하신 분이지만 때론 직접 요리도 하시는 다정다감한 분"이라고 덧붙였다.
선친의 뒤를 이어 김 사무총장도 다양한 사회봉사 활동을 하고 있다. 웅변·환경·예술·문화단체의 대구 회장직을 맡고 있으며, 청소년 선도에도 앞장서고 있다. 그는 "미국이란 나라에서 어떻게 흑인 대통령이 나올 수 있었을까 궁금해하는 사람이 많은데 결정적인 계기는 바로 스피치"라며 "대구에서 스피치를 잘하는 미래의 지도자를 키우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김 사무총장은 대구 영신초-중리중-협성고-계명대를 거쳐 현재 (사)국제웅변스피치 학술연구회 대구회장·(사)국제전통문화 예술교류협회 대구회장·(사)국제환경문화운동본부 대구본부장·대구BBS청소년연맹 선도위원회 부위원장·유니버시아드 문화센터 발표력스쿨 강사·바다와 강 살리기 운동본부 대구본부장 등 맡고 있는 직책만 10개가 넘는다.
권성훈기자 cdrom@msnet.co.kr
사진·정운철기자 woon@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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