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이웃사랑] 남편에 아들·딸까지 근육병 병수발 최연희씨

최연희(가명·45)씨는 근육병을 앓고 있는 아들, 딸에다 남편까지도 근육병 진단을 받았다. 남편은 그나마 증세가 덜한 편이지만 현재 아들 태훈이와 딸 도연이는 인공호흡기의 보조 없이는 잠을 들지 못할 정도로 증세가 악화돼 있다. 이채근기자 mincho@msnet.co.kr
최연희(가명·45)씨는 근육병을 앓고 있는 아들, 딸에다 남편까지도 근육병 진단을 받았다. 남편은 그나마 증세가 덜한 편이지만 현재 아들 태훈이와 딸 도연이는 인공호흡기의 보조 없이는 잠을 들지 못할 정도로 증세가 악화돼 있다. 이채근기자 mincho@msnet.co.kr

두 아이의 엄마인 최연희(가명·45·대구 동구 안심동)씨는 연이어 발생하는 가족들의 근육병에 충격을 받아 우울증을 앓게 됐다. '속이 새까맣게 타들어간다'는 말이 이런 상황을 빗댄 것 같다.

최씨 가족의 근육병은 치료법을 찾기 힘든 희귀·난치병이다. 그래도 최씨는 "내가 버티지 않으면 남은 가족들은 어떻게 하겠냐"며 "이를 악다물고 최대한 상황을 견뎌내려 노력하고 있다"고 눈시울을 붉혔다.

건강하기만 했던 아들 태훈(고2)이는 초교 6학년 무렵이 되면서 자주 "다리가 아프다"는 소리를 했다. 그저 성장통이려니 하고 넘겼다. 중학교 1학년이 되자 음식을 삼키기 어려워 했다.

병원에서는 '연하장애'라는 진단을 내놨다. 그러던 중 증세가 심해져 종합병원을 찾게 됐다. 의사는 고개를 갸우뚱하더니 결국 유전자 검사 결과 근육병이라는 진단을 내렸다. 지난해 7월의 일이다.

태훈이의 증세는 목과 호흡기 쪽에 집중돼 있다. 잘 때는 인공호흡기가 없으면 제대로 숨을 쉬기 힘들다. 목에는 늘 가래가 끼어 컥컥대기 일쑤이고, 목소리도 쇳소리처럼 이상해졌다. 입에는 늘 침이 고여 발음도 어눌하다.

아빠를 닮아 미술에 소질이 있는 태훈이는 근육병이 점점 심해지면서 이제 몇 시간 동안 붓을 드는 것도 힘들어할 정도다. 태훈이는 "입시에서는 시간제한이 있어 빠른 시간 안에 그림을 마무리하는 것이 중요한데 병이 점점 심해져 걱정"이라고 했다.

작은딸 도연(중2)이는 어릴 적에 보행기를 태워 놔도 힘이 없었고 18개월이 넘어서야 겨우 발걸음을 떼는 등 태어날 때부터 발달이 늦었다. 병원에서는 '지적장애가 있다'고 했고, 최씨는 그런 줄만 알고 십수년을 키웠다.

하지만 태훈이를 진단한 의사는 도연이 이야기를 듣더니 "의심스러우니 한번 데려와 보라"고 했다. 그리고 도연이 역시 지난해 8월 근육병 진단을 받았다. 근육병 환자 10명 중 3명 정도는 지적장애를 동반하는 경우가 있다고 했다.

현재 도연이는 휠체어 신세를 지고 있다. 다리 근육이 제멋대로여서 혼자 놔두면 다리가 자꾸 꼬여 넘어진다.

보정기를 통해 다리가 꼬이지 않도록 곧게 펴줘야 하고, 화장실도 혼자 가지 못해 엄마가 업어서 데려다 줘야 한다. 척추도 계속 구부러지고 있어 수술을 받아야 할 처지다. 호흡도 인공호흡기 보조를 받아야 한다.

아들 딸이 동시에 근육병 진단을 받고 나자 남편의 증상도 의심스러웠다. 남편은 젊을 때부터 다리에 힘이 없다는 소리를 자주했고, 아이들이 근육병 진단을 받을 무렵에는 허리와 엉덩이의 통증을 호소했다.

극구 병을 부인하는 남편을 겨우 데려가 검사를 받은 것이 지난해 9월. 세 달 사이에 아들과 딸, 남편이 '근육병' 진단을 받은 것이다.

로프를 타고 아파트 건물 외벽에 글씨 새기기와 디자인 작업을 했던 남편은 이후 일손을 놓아야 했다. 건강한 사람도 하기 힘든 일인데 근육이 자꾸만 힘을 잃어가 자기 몸 하나도 건사하기 힘든 남편에게 그 일을 하게는 할 수 없었다.

이 때문에 생계는 엉망진창이 돼 버렸다. 5년 전 대출을 끼고 장만한 빌라는 아예 애물단지가 됐다. 벌써 2년째 팔려고 내놓았지만 사려고 나서는 사람이 없다. 그 사이 대출받은 돈의 이자는 눈덩이처럼 불어나 매달 이자만 60만원가량을 갚아나가야 하는 상황이다. 지난 연말부터 기초생활수급비로 60만원가량을 받고 있지만 이자를 갚고나면 끼니를 때울 돈도 마련하기 힘들다.

최씨는 "한 집에 한 명 있기도 힘든 희귀병 환자가 3명이나 되는데 왜 이렇게 온 가족이 고통을 받아야 하는지 모르겠다"며 "아무리 형편이 어렵다고 하지만 이대로 아이들을 포기할 수는 없다"고 울먹였다. 살아 숨쉬는 동안은 최대한 고통받지 않고 힘들지 않게 보살피고 싶은 것이 엄마이자 아내 최씨의 마음이다.

한윤조기자 cgdream@msnet.co.kr

※ 이웃사랑 계좌는 '069-05-024143-008 대구은행 ㈜매일신문사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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