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사람과 歲月] 시노래 그룹 '징검다리' 리더 위대권씨 (상)

"지금껏 80여곡 작곡…좋은 詩에 좋은 음악 입혀야죠"

안동의 시노래 그룹 '징검다리'의 리더 위대권(41)씨는 시와 노래에 취해 살았다. 중학교 2학년 때부터 통기타를 치며 노래를 불렀고, 고등학교 때는 시 동아리에 가입해 활동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에는 안동의 음악다방을 전전하며 기타치고 노래했다. 시에 대한 열정은 십수 년에 걸친 신춘문예 도전으로 이어졌다. 등단의 행운을 차지하지는 못했지만 그 열정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찬바람이 신춘문예의 계절을 알리면 설레는 가슴을 어찌할 수 없다.

1994년부터는 자동차에 악기와 앰프를 싣고 다녔다. 초대해준 사람도, 기다리는 사람도 없었지만, 마음 닿는 곳이면 어디든 자동차를 세우고 노래했다. 토요일이면 안동 '문화의 거리'에서 기타 치며 노래를 불렀다. 10년 넘는 세월 동안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관객이 있거나 없거나 가리지 않았다. 지난해 10월에는 안동시민회관 소극장에서 제4회 징검다리 공연을 했다. 매달 1회 정도 소규모 합동공연도 열고 있다.

안동 교도소 교도관인 그는 퇴근하면 하루 3시간 이상 노래를 듣거나 부른다. 7년 정도는 미치광이처럼 하루 10시간 이상 음악을 듣기도 했다. 프리앰프와 파워앰프, 스피커, 시디 플레이어 등을 바꿔놓고 그 소리에 어떤 차이가 있는지 귀와 가슴에 새기고 싶었다. 같은 음악이라도 어떤 소리는 쓰고, 어떤 소리는 달다는 것을 7년이 지나서야 알 수 있었다.

시노래 그룹 '징검다리'는 위대권씨와 그의 아내 강미영씨를 비롯해, 건반 김미선, 이지연씨가 멤버로 활동 중이다. 2006년 결성한 노래패로 안동에 하나뿐인 시노래 그룹이다. 지난해 9월에는 첫 음반 '밤 기차'를 냈다. 시인 김소월의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 박남준의 '먼 강물의 편지', 안상학의 '밤 기차' 등과 위대권씨 자신의 시에 음악을 붙여 만든 음반이다. 초판 2천장을 발매했는데 지금까지 1천800장을 팔았다.

아내 강미영씨 역시 노래를 좋아했다. 어쩌면 노래를 좋아했기에 두 사람은 만났는지도 모른다. 아내는 소녀 시절부터 노래에 대한 꿈을 잊은 적이 없지만, 아이 셋을 키우느라 그럴 틈이 없었다. 아이들이 좀 자란 뒤, 아내는 라이브 카페에 나가 가수로 활동했다. 2006년 시노래 그룹 '징검다리'를 결성하면서 카페 활동을 접고, 징검다리의 보컬로 남편 위대권씨와 함께 노래한다.

위대권과 강미영의 시노래는 정겹고 슬펐다. 어디선가 들었던 듯한 노래, 그러나 어디에서 들었는지 알 수 없는 노래, 까닭 없이 눈물이 날 것 같은 노래였다. 그들의 노래는 충격적이거나 신선하지는 않았다. 기타 반주와 함께 흐르는 그 노래에서는 개울물 소리, 겨울 끝에 부는 바람에 배어 있는 가느다란 생명의 향기가 묻어 있었다. 고통스럽고 슬프지만 살고 싶은 욕망을 주는 노래였다.

'봄 가을 없이 밤마다 돋는 달도,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 이렇게 사무치게 그리울 줄도,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 달이 암만 밝아도 쳐다 볼 줄을,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 -김소월의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 중에서.

'칠흑 같은 밤, 그대에게 가는 길, 이마에 불 밝히고 달리는 것은, 길을 몰라서가 아니라, 길을 몰라서가 아니라, 멀리서 기다리는 그대에게, 그대에게, 쓸쓸하지 말라고, 쓸쓸하지 말라고, 내 사람 별빛으로 먼저 보내는 것' -안상학의 '밤기차'-

위대권의 '징검다리'가 부르는 시노래가 정겹고 또한 슬픈 것은 아마 그 가사, 그러니까 시 때문일 것이다.

원래 시는 그 자체로 노래였다. 사람들은 자연과 삶에서 얻은 감동을 선율에 담아 읊조렸다. 시마다 운율이 있었고, 운율을 따라 읊조리는 것만으로 이미 노래였다. 그래서 옛 사람들은 시인을 가객 혹은 음유 시인이라고 불렀다. 그러나 근래에 시는 운율을 잃어버렸다. 노래는 사라지거나 뒷전으로 밀려났고, 문자만 남아 어지럽게 출렁대는 듯하다. 급기야 악을 써대는 듯, 의미도 느낌도 모를 시들이 '전위적' 이거나 '신선하다'는 호평을 받으며 득세했다. 삶의 눈물과 땀, 사랑이 묻어나는 노래는 '그렇고 그런' 시들로 격하돼 버렸다.

"흔히 인생이란 자주 부르는 노래를 닮아간다고 말합니다. 아마 맞는 말일 겁니다. 우울하고 슬픈 노래를 많이 듣고 부르면, 그의 삶도 어두워질 것이고, 밝고 경쾌한 노래를 부르면 삶도 밝아지겠지요. 우울한 노래, 슬픈 노래로 다가서는 나를 보면서 걱정하고 부담스러워한 적도 있습니다."

위대권씨는 가수 김광석을 좋아한다고 했다. 김광석의 자리에 서고 싶었다. 그를 흠모했고, 벽처럼 느끼기도 했다. 줄기차게 김광석의 노래를 불렀다. 마흔 언저리까지 그의 '서른 즈음에'를 불렀다. 이건 아니다, 아니다 싶으면서도 헤어나지 못했다. 그러던 어느 날 안상학 시인의 권유로 '시노래'를 시작했다. 어쩌면 '시노래'를 통해 위대권은 김광석의 자리가 아닌 제자리를 찾은 것인지도 모른다.

위대권씨가 부르는 시노래는 서정적이고 온화하다. 때때로 전위적인 작품을 만들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그가 추구하는 근본은 서정성이다. 그는 처음 들어도 낯설지 않을 노래, 오래 들어도 질리지 않을 시노래를 짓고 부르고 싶다고 했다.

"서정적인 시, 서정적인 노래가 완성된 장르라고 생각합니다. 선정적이거나 전위적인 작품, 지나치게 언어가 아름다운 작품은 신선할 수 있지만, 그것은 과도기적인 단계라고 생각합니다. 지나가는 바람이라고 할까요? 평범한 듯한 노래야말로 가장 강한 생명력을 가질 수 있다고 봅니다."

위대권씨는 지금까지 시노래를 80여곡 작곡했다. 자신의 시에 곡을 붙인 것도 있고, 다른 시인의 노래에 시를 붙인 것도 많다.

"10년 넘게 작곡을 했는데, 마음에 드는 노래는 최근 3, 4년 동안 작곡한 것들입니다. 작곡하는 기술이 나아졌다기보다 세상을 들여다보는 눈이 깊어진 덕분인 것 같습니다. 좋은 시와 좋은 곡을 창작하는 힘은 기술이 아니라 결국 인생이더군요."

사실 시노래는 대체로 엄숙하고 어려워서 일반인들에게는 난감하다. 기껏 2, 3분에 불과한 시노래 한곡을 끝까지 듣기가 고역일 때도 있다. 그러나 위대권씨의 노래는 쉽고 정겨웠다.

"작곡을 하기도 전에 이건 좋은 곡이다, 확신이 서는 시가 있습니다. 시의 완성도가 높은 작품, 쉬운 언어로 쓴 밀도 있는 작품을 보면 그렇습니다. 서정주 시인의 귀촉도는 정말 가슴이 뭉클해지는 시입니다. 김소월의 시는 쉬운 언어로 썼으되 그 깊이를 가늠하기 힘들 만큼 아름답습니다."

그는 자신을 시가 본래 가진 운율을 증폭하는 사람일 뿐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니 애초에 운율이 없는 시(감동을 주지 못하는 시)는 증폭시킬 수 없다. 그런 까닭에 10권이 넘는 시집을 낸 시인에게서 단 한곡의 시노래거리도 발견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물론 좋은 시를 발견하고도 제대로 곡을 붙일 수 없을 때가 있어 가슴이 아프다고 했다.

그는 대중과 소통할 수 없는 시는 좋은 시가 아니며, 함께 호흡할 수 없는 시노래는 이미 노래가 아니라고 했다. 관객이 노래에 맞춰 발장단을 맞추고 어깨를 들썩일 수 있는 노래가 좋은 노래라고 했다.

무대에 서는 사람은 누구나 관객의 박수를 갈구한다. 위대권씨 또한 그럴 것이다. 그러나 그는 무대에서 받는 관객의 박수 못지않게 큰 소망을 갖고 있었다.

"좋은 시를 만나고 싶습니다. 그 시에 좋은 음악을 입히고 싶습니다."

조두진기자 earful@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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