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황을 먹고 만개하는 꽃'이라고 불리는 경매시장. 부동산경기 침체 속에서도 법원경매입찰장이 붐비고 있다. 시세차익을 노리는 투자자들은 물론 중소형 아파트의 매매나 전세를 구하지 못한 서민들의 경매 참여가 늘었기 때문이다. 입찰경쟁이 치열해지면서 낙찰가율(감정가 대비 낙찰가)도 치솟고 있다.
24일 오전 11시쯤 대구지법 경매입찰장. 입찰장과 주변 복도에는 200여명이 몰렸다. 입찰에 참가한 사람도 있지만, 경매정보지를 보면서 현장에서 경매를 공부하려는 '견학생'도 눈에 띄었다.
잠시 후 개찰이 시작됐다. 첫 번째 물건은 감정가 25억1천700여만원인 대구유통단지 내 근린상가. 두번 유찰돼 최저경매가는 12억3천300여만원. 입찰자가 13명이며, 대부분 법인이었다. 이 물건은 18억500여만원에 낙찰됐다. 이 낙찰가는 지난달 유찰가(최저경매가)를 크게 웃돈 금액이다. 취재에 동행한 리빙경매 하갑용 대표는 "유찰된 물건 중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전달(지난번 입찰) 최저가를 넘어 낙찰되는 경우가 10건 중 2, 3건에 이른다"고 말했다.
자동차도 경매에 나왔다. 2006년식 SUV 카이런. 감정가 1천250여만원인 이 물건에는 10명이 응찰했다. 최고입찰가는 1천201만원. 그런데 2명이 같은 가격을 적어낸 것. 장내 방송을 통해 이 사실이 알려지고 바로 추가입찰을 한다는 안내가 나가자, 엄숙했던 입찰장에서 잠시 웃음소리가 흘러나왔다. 추가입찰 결과, 낙찰자는 1천221만원을 써낸 A씨이며, 11만원 차이로 원했던 차를 확보하게 됐다. '1등만 기억하는 경매'의 실상을 여실히 보여줬다.
아파트도 입찰경쟁이 치열했으며, 여성 입찰자가 대부분이었다. 한번 유찰된 경산 진량읍의 33평형 아파트(감정가 5천500만원)에는 11명이 응찰했으며, 4천780여만원을 써낸 사람이 낙찰했다. 대구 북구 침산동 34평형 아파트(감정가 1억6천만원)에도 9명이 참가했다. 한번 유찰돼 최저가가 1억1천200만원이었는데, 1억4천280여만원을 쓴 사람에게 돌아갔다. 감정가의 89% 수준이었으며, 차순위(2등)와 겨우 29만원 차이였다. 이 아파트 입찰에 참가한 김모(43·대구 북구 산격동)씨는 "이사 갈 집을 마련하기 위해 입찰했다. 시세와 집 주인(채무자) 등의 이사비용, 금융비용 등을 고려해 1억3천500만원을 써 냈는데, 낙찰가가 이렇게 높게 결정될지 생각도 못했다"며 당황스러워 했다.
현장에서 만난 한 공인중개사는 "아파트에는 실수요자들이 몰리면서 낙찰가율이 90%에 육박하고 있다. 때론 급매물과 비슷한 가격에 낙찰되는 일도 있다. 시세차익을 노리려는 투자자들에겐 아파트경매가 별 실익이 없다"고 말했다.
해프닝도 벌어졌다. 낙찰한 한 중년신사가 낸 입찰 보증금(최저가의 10%)이 터무니없이 많아 돌려받는 일이 생겼다. 집행관의 설명에 따르면 매각대금에 가까운 액수라는 것. 하 대표는 "입찰장에서 이런 실수들이 자주 발생한다. 심지어 자신이 생각한 입찰가액에 실수로 '0'을 하나 더 적는 사례도 있었다"며 "사소한 실수로 금전적 손해를 볼 수 있기 때문에 입찰표를 작성할 때 꼼꼼히 확인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한편 리빙경매가 대구지방법원 본원·서부지원 경매 현황을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아파트의 경우 평균낙찰가율은 1월 83.2%, 2월 87.5%로 나타났다. 지난해 같은 달 79.3%, 76.6%보다 높았다. 단독주택의 경우 평균낙찰가율은 1월 70%, 2월 79.2%로 이 역시 지난해 같은 달 61.2%, 68.9%보다 올랐다. 다세대주택도 마찬가지다. 1월은 76.7%(작년 75.9%), 2월에는 84.5%(작년 72.9%)를 기록했다.
김교영기자 kimk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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