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신작 영화 리뷰] 블라인드 사이드

사람들 대부분은 있는 재능도 펴지 못한다…왜일까?

몸무게가 155㎏이나 되는 거구의 18세 흑인 소년 마이클 오어(퀸튼 아론).

아빠는 살해당하고, 엄마는 마약 중독이고, 누구의 피인지도 모르는 형제들은 뿔뿔이 흩어지고, 입양되어도 도망치기 일쑤인 불우한 아이다. 맞는 옷이 없어 비오는 추운 날에도 반팔 티셔츠만 입고 다닌다.

몸은 육중하지만 어떤 공이라도 다룰 줄 아는 재주를 가지고 있다. 어느 날 상류층 백인들만 다니는 사립고등학교에 입학한다. 그의 엄청난 체격과 남다른 운동신경을 탐낸 이 고등학교의 미식축구 코치에 의해 영입된 것이다. 그러나 성적이 모자라 퇴학당할 위기에 놓인다.

잘 데가 없어 학교 체육관을 전전하는 그가 어느 날 리앤(산드라 블록)의 눈에 띈다. 그녀는 지역 사회에서 백인 최상류층 주부. 비를 맞고 걸어가던 그를 집으로 데려오면서 마이클의 삶이 180도 바뀌게 된다.

15일 개봉한 '블라인드 사이드'는 가족도, 집도 없는 흑인 소년과 그에게 엄마이자 따뜻한 보호자가 되어준 리앤 투오이의 감동적인 이야기를 그린 영화다. 2009년 프로미식축구 리그 NFL 1차 드래프트에서 지명돼 현재 볼티모어 레이븐스에서 활약 중인 26세의 스포츠 스타 마이클 오어의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

'블라인드 사이드'(Blind Side)는 미식 축구에서 쿼터백이 볼 수 없는 사각지대를 말한다. 우리 사회가 눈 돌리지 못하는 어두운 곳이란 의미도 담고 있다. 영화에선 거대한 몸으로 리앤 가족을 지키는 마이클과 그의 사각지대를 감싸주는 가족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블라인드 사이드'는 긍정의 힘으로 세상을 보게 하는 영화다. 주위의 시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흑인 소년을 돌보는 최상위 백인 계층과 그들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게 희망을 일구고 또 그들을 지켜주는 불우한 흑인 소년의 이야기가 최선의 아귀로 맞아떨어지는 이야기다. 이웃에게 눈을 돌리고 그들에게 헌신하는 것이 가장 큰 미덕인 미국 사회의 작은 기적이다.

'블라인드 사이드'는 미국내에서만 2억5천만달러가 넘는 흥행 수익을 올렸다. 2천900만달러의 제작비로 9배에 가까운 흥행 수익을 올리는 기적도 일궈냈다.

이 영화는 국내 개봉이 불투명했다. 다분히 미국적인 감동 스토리에 영화적 갈등도 약하고 우리에게 낯선 미식 축구에 산드라 블록을 빼놓고는 스타도 없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산드라 블록이 올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여우 주연상을 수상하는 바람에 간신히 개봉할 수 있었다.

이 영화에서 산드라 블록의 역은 대단히 사랑스러우면서도 힘이 넘친다. 마이클을 뒤에서 후원하다가도 긴급한 상황에서는 코치를 제치고 우락부락한 미식축구 선수들을 휘어잡는다. 부유한 백인 친구들이 "네가 마치 킹콩에게 납치된 제시카 랭 같다"고 놀리자 "부끄러운 줄 알라"며 면전에서 되받아친다.

치맛바람을 일으키면서도 마이클에 대한 사랑을 감추며 몰래 눈물 흘리는 여성스러움도 보여준다. "당신이 그 아이를 변하게 했어요"라는 선생님의 말에 "아니요, 그 아이가 나를 변화시켰어요"라는 등 진정성이 담긴 내공이 있는 연기를 선보인다.

산드라 블록은 연기 외에 이 영화에 또 크게 기여했다. 다름 아닌 마이클 오어를 두고 스카우트 경쟁을 벌이는 장면에서 실제 미국 대학 미식축구 코치들이 대거 등장한 것이 그녀의 힘이라는 것이다. 스케줄이 바쁜 그들이 그녀를 만날 수 있다는 이유로 촬영 승낙을 하고 기꺼이 달려와 주었다는 것이다.

산드라 블록 외에 깊은 상처를 지녔지만 순박한 천성을 지닌 마이클의 내면을 잘 표현한 퀸튼 애런도 칭찬받을 만하다. 앤의 아들 역할을 맡은 제이 헤드도 보석 같은 연기를 보여준다. 지금은 어리지만 언젠가 큰 연기자가 될 재능이 보인다.

갈등구조가 약하기 때문에 영화적 재미는 약하지만 선한 성품의 관객이라면 2시간 내내 흐뭇한 웃음을 지을 수 있는 영화다. 실제 인물 마이클 오어는 "나보다 더 큰 재능을 지닌 사람들이 많지만 대부분 꿈을 펼치지 못한다. 나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가 누군가에게 기회를 주면 그 사람에겐 희망이 생긴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라며 영화의 메시지를 대신 전했다. 감독은 '킹 아서'를 연출한 존 리 행콕. 12세 관람가. 러닝 타임 128분.

김중기 객원기자filmton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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