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메디컬 프런티어] 경북대 외과 최규석 교수

대장경 복강경 수술만 1700례 이상 성공 '국내 최고'

경북대병원 외과 최규석(48) 교수는 자타가 공인하는 대장암 및 직장암 수술 전문의사다. 2005년부터 중국 및 유럽을 포함한 국내외 대장항문학회, 복강경학회 우수 논문상을 휩쓸다시피했다. 대장암 관련 복강경 수술만 1천700례 이상을 성공해 국내 최고 수준에 올라섰고, 최 교수를 포함한 다빈치로봇수술팀은 지방 병원 중 최초로 3월 초 300례 수술을 달성하는 쾌거를 이루기도 했다.

의사가 된 이유부터 물었다. 거창한 이유를 밝힐 줄 알았더니 엉뚱한 답이 돌아왔다. "재미있어서요. 저는 희생하는 의사는 싫습니다. 일을 즐길 줄 알아야 진정 환자도 위할 수 있습니다." 의과대학 연구실에 어울리지 않게 그의 방에는 클래식 기타가 5대나 있다. 클래식 기타리스트인 존 윌리엄스의 사진도 한쪽에 자리 잡고 있다. 대학 시절 클래식 기타 동호회인 '현우회'를 통해 처음 기타를 접했다. 병원과 집밖에 모르는 그가 인생을 즐기는 방법 중 하나가 바로 기타다.

◆인생의 활력소는 '재미'

대장항문을 전공한 이유가 궁금해졌다. "1988년 레지던트 1년차 때 전수한 교수님이 '가족성용종증'(직장암 중 1%밖에 안 되는 질환으로 전체 대장을 다 잘라내는 대수술이 필요함) 수술하는 모습을 지켜보게 됐습니다. 이런 큰 수술은 교수님도 저도 처음이었죠. 어떻게 보면 행운이었고, 저로서는 인생의 전환점이 된 사건입니다."

당시만 해도 대장암은 서구 암이었다. 그만큼 환자가 많지 않았다. 하지만 당시 전체 암 중 5위였던 대장암은 현재 2, 3위다. "식습관도 바뀌었고, 대장내시경 등을 통해 검진을 자주 받기 때문이죠. 대장암은 생존율이 75~80%에 이릅니다. 조기 발견만 되면 완치가 충분히 가능합니다. 50세가 되면 5~10년에 한 번 검진을 받으라고 권고하는데, 저는 3~5년마다 받으라고 권하는 쪽입니다."

인터뷰 내내 '재미'라는 단어가 곧잘 튀어나왔다. 그에게 재미는 새로움이자 다름에 대한 도전이다. 서울대 및 연세대병원과 비슷한 숫자의 대장암 수술이 경북대병원에서 이뤄진다. 수술이 있는 날이면 하루 6, 7명씩 수술을 집도한다. 인터뷰 전날도 오전 3시까지 수술실을 지켜야 했다. "잘 지치지않는 것이 유일한 장점"이라는 최 교수의 겸손한 표현대로 그는 지칠 줄 모른다.

대장암 복강경 수술의 최고답게 2007년 새로운 수술법도 발표했다. 복강경 수술을 해도 잘라낸 대장을 꺼내려면 4, 5㎝ 절개가 불가피했다. 그는 남성의 항문과 여성의 질을 통해 대장을 빼내는 수술법을 학계에 발표했고, 지금은 전세계 의사들이 그의 수술법을 따라하고 있다. 절개 부위가 적다는 것은 그만큼 회복이 빨라진다는 뜻이다.

◆국내 최초로 대장암 복강경 수술

사실 최 교수는 대학 시절 복강경을 구경조차 못했다. 그저 의학저널을 통해 접했을 뿐. 1992~1996년 상주적십자병원에서 공중보건의로 재직하던 중 처음 복강경을 만났다. 원장에게 간곡히 부탁해 기계를 도입했고, 첫날부터 동물 실험을 시작했다.

당시만 해도 복강경은 담낭 수술에 국한돼 있었다. 세계 최초로 이뤄진 대장암 복강경 수술이 1990년이었고, 최 교수는 1992년 국내 최초로 그 수술을 해냈다. 대학병원도 아니고 공중보건의가 지방 병원에서 이뤄낸 쾌거. 처음에 의학계는 '미쳤다'는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그는 충분한 준비가 돼 있었다. 1996년 7월 경북대병원에서 '가족성용종증' 수술을 복강경으로 성공한 경험도 있었다. 기존 수술법은 30㎝나 배를 갈라야 했지만 복강경 덕분에 4㎝로 수술부위는 작아졌다. "상주적십자병원에서 첫 대장암 복강경 수술을 했을 때만 해도 10시간이 걸렸습니다. 물론 환자에게도 충분히 수술에 대해 알려줬습니다. 이후 대장암에 본격 도전하는 계기가 됐죠."

경북대병원으로 돌아와서 처음 대장암에 국한된 수술은 직장암으로 옮겨갔고, 지금껏 3천500례 수술을 해냈다. 수술실 2곳을 번갈아 오가며 집도하고 있다. 이 정도 경지에 올라섰으면 한숨 돌릴 법도 하지만 그는 여전히 지칠 줄 모른다. 로봇(다빈치)을 이용한 대장암 수술은 한국이 세계 최고이자 최다 사례를 갖고 있다. 그는 요즘 '과연 로봇 수술이 얼마나 유용한가'라는 주제로 데이터를 모으고 있다. 손떨림이 없는 정교한 로봇 수술이 많은 장점을 갖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에 대한 근거 자료는 부족하기 때문이다.

◆역할이 변화하는 의사

병원에서 환자와 보내는 시간이 많을수록 가족들은 외로워진다. 그는 고3 딸과 중2 아들이 있다. 최 교수는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가족에게 가장 미안해진다"며 "주말에는 가족과 보내야지 결심해도 실제로 약속을 지킨 경우는 별로 없다"고 겸연쩍어했다. 외래 진료를 보는 날은 하루 환자만 180여명. 수술과 논문 준비 때문에 편하게 노는 것은 꿈도 못 꾼다.

"오히려 환자들에게 미안하죠. 환자가 밀려들다 보니 진료시간에는 따로 충분히 설명해드리지 못합니다." 대신 그는 수술 전후 환자들을 상대로 따로 교육시간을 갖는다. "우리나라 병원 중에 유일할 겁니다. 어떤 질환이고, 어떤 수술법을 쓰며, 어떻게 회복해야 하는지 꼼꼼하게 알려줍니다. 환자들의 만족도는 물론 의사에 대한 신뢰도 높아집니다."

오전 7시 30분쯤 출근하지만 퇴근시간은 모르겠다는 최 교수. 어떤 의사가 되고프냐는 물음에 "역할이 변화하는 의사"라고 답했다. 젊어서는 부지런히 배우고, 성숙하면 열심히 일하고, 나이가 더 들면 가르침을 전하는 의사. 그러면서 뜬금없이 '이탈리안 레스토랑'을 열고 싶다고 했다. "가끔 시간이 나면 가족들에게 스파게티, 스테이크, 김치찌개를 해 줍니다. 요리하는 것도 즐거운 재미 중 하나입니다." 온통 머릿속에 환자만 생각하는 그가 남긴 당부 한마디. "대장암 2, 3기 환자의 경우 30~40%가 재발합니다. 그 중 75%는 2년 안에 재발하죠. 그렇기 때문에 그동안은 부지런히 검진 받아야 합니다. 정기 검진도 빼먹지 말고 꼭 받으세요."

김수용기자 ks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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