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엄원태의 시와 함께] 허무맹랑 / 박소유

입이 없으면 생이 가벼울 거라 생각했는데 먹자골목, 줄지어선 간판 불빛에 하루살이 떼가 까맣게 붙어 있다 막무가내 제 하루를 다 걸고 거래중이다 위험천만하다 입과 가까워진다는 건

치매 앓던 노인이 먹을 걸 이불 속에 감춰두었다 얼마나 깊이 감추었는지 자신도 잊고 가져가지 못한 게 죽은 뒤에 다 나왔다 아무리 긁어 먹어도 냄비 바닥에 굴러다니는 생선 눈알처럼 결국엔 남기고 갈 것을

입 하나에 매달려 살았나 며칠 금식을 했을 뿐인데 실밥이라는 말에도 사무친다 톱밥, 꽃밥, 실밥이라는 말은 나비 날개 놓아 주듯, 가볍게 밥을 놓아주는 일 아닌가 공중으로 밥을 채우고 저절로 공복이 채워지기를 바라는 것인데

젖통을 양쪽에 안고 살아도 아무 소용이 없다 금식하는 동안 내게 와서 표류하던 그 많은 밥때가 차곡차곡, 마른 나뭇잎처럼 쌓였다 부스럭, 자꾸 허기를 들추는 바람에게 모른 척 하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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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시인은 금식기도나 단식원에 들어갔던가 보다. 며칠 금식에 이토록 웅숭깊은 삶의 성찰에 도달한 걸 보면 역시 몸으로 겪어내는 체험이야말로 무서운 것. "입이 없으면 생이 가벼울 거"란 생각은 그야말로 생각에 지나지 않는다. 먹자골목 간판에 까맣게 붙은 하루살이 떼의 위험천만한 거래나, 치매 노인의 마지막 식욕 본능은 욕망의 허망함, 즉 '허무맹랑'이란 인식에 가 닿는다. 이건 다 며칠 금식 체험 덕분에 얻은 성과인 셈. 이렇듯 며칠 금식은 "입 하나에 매달려 살았나"싶게 실밥이란 말에도 새삼 사무치게 만든다. "젖통을 양쪽에 안고 살아도 아무 소용이 없다"는 시인의 언설은 그래서 더 삶의 곡진한 구체성을 담보하며, 생의 허기를, 먹는다는 문제를 통한 욕망의 허무맹랑함을 성찰하게 한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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