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의 상부상조가 21세기엔 기프티콘.'
어려울 때 서로 일손을 돕고 필요한 물품을 주거나 빌려 주는 조선시대의 상부상조(相扶相助). 계, 두레, 향약, 품앗이 등이 대표적이다. 이런 정신들이 시대의 변화와 더불어 사라졌을까? 수백년이 지난 2010년 현재는 최첨단 기술이 동원된 형태로 이뤄지고 있다. 바로 기프티콘(Gifticon)이다. 컴퓨터에 나타난 선물가게 화면을 보며 클릭 몇번, 휴대폰 버튼 몇번만 누르면 내가 주고자 하는 상대의 휴대폰으로 선물이 전달된다. 신기할 정도로 빠르고 정확하다.
한 여대생이 '오빠! 도서관에서 공부하는데 맛있는 커피 부탁해'라고 문자메시지를 남자친구에게 날리면 'OK'라는 답 문자와 동시에 휴대폰에 스타벅스 카라멜 마끼아또 커피 그림이 뜨고 바코드가 찍힌 기프티콘이 도착해 있다. 가까운 스타벅스에서 휴대폰만 보여주면 기분 좋게 커피 한잔을 마실 수 있다.
시대의 변화는 이렇다. 내 손안에 종합 선물세트가 들어 있는 셈. 선물 아이콘인 기프티콘만 해당 가게에 들고 가면 연인 또는 친구, 직장동료 등이 보내준 선물을 받을 수 있다.
◆온라인이 오프라인으로 이어지는 선물
'동서 생일인데 멀리 떨어져 있다면 어떻게 맘을 전할까' '사랑하는 연인인데 남자는 서울에서, 여자는 대구에서 근무한다면 문자메시지만으로는 뭔가 허전하지 않을까' '여자 친구와 영화를 보러 가고 싶은데 친한 친구가 영화표를 사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지방 출장을 간 형이 부모님과 함께 사는 동생을 통해 부모님이 먹고 싶어하는 케이크를 사주고 싶은데'.
마음은 있는데 현실적인 여건, 특히 거리상의 문제로 인해 제대로 그 마음을 표현하지 못할 때 안타깝다. 이를 일정 부분 해결해 주는 해결사가 바로 기프티콘이다. 기프티콘 시장에서 부모나 친구, 연인이 원하는 선물을 자신이 결제한 뒤 문자와 함께 기프티콘을 첨부해 보내주면 선물 전달 끝. 주는 사람도 간편하고 받는 사람도 편리하다.
직장인 공은혜(41)씨는 "얼마 전 동서 생일에 네이트온 기프티콘 시장에서 생일 케이크를 사서 보냈는데 동서가 너무 좋아했다"며 "한달에 2, 3번씩 특별한 날에 이용하는데 참 편리하다"고 말했다. 이상민(34·회사원)씨도 매월 휴대폰 이용료 외에 기프티콘 이용료로 5만~10만원을 쓰고 있다. 이씨는 "친구가 영화 보러 갈 때 1만5천원으로 2장의 표를 구매해 보내주면 너무 고마워한다"며 "다음에 친구에게 부탁할 일이 생기니까 서로 기분 좋게 계산해주고 나중에 돌려받는 시스템인 셈"이라고 말했다.
프리랜서 강사 최운경(32)씨는 지난 8개월간 가족·친구·수강생 등에게 1천만원에 이르는 기프티콘을 보냈다. 그는 "지난해 말부터 올해까지 가게에 가서 선물을 사본 적이 거의 없다"며 "문득 떠오르면 친구나 가족, 지인에게 몇천원짜리 기프티콘을 보낸다"고 했다.
◆갈수록 늘어나는 기프티콘족
대구 반월당 동아쇼핑 내 배스킨라빈스 31. 젊은 여성 두명이 2만3천원짜리 '핑크 큐피트 베어' 아이스크림 케이크를 달라고 하더니 휴대폰을 꺼냈다. 휴대폰에 있는 바코드를 찍으니 계산 끝.
배스킨라빈스 박정우 점주는 "총 매출액의 5~10%가 기프티콘으로 결제되고 있다"며 "20, 30대 젊은 층을 중심으로 기프티콘이 활성화되고 있으며, 지난해 말부터 눈에 드러나게 사용 고객이 증가하고 있다"고 했다.
이처럼 기프티콘은 20, 30대 소비자들이 예전처럼 선물을 직접 구매·전달하지 않고, 휴대폰으로 '상품 메시지'를 전송하는 새로운 트렌드를 불러오고 있는 것. 휴대폰이 익숙한 젊은 세대는 번거롭게 선물 고르는 절차를 생략하고 간편한 선물 전달방법으로 휴대폰을 택했다.
SK텔레콤에서는 지난해 기프티콘 서비스 시작 후 200만건이 활용되었을 만큼 인기가 높으며 향후 활용할 수 있는 곳이 더 확대되면 종이로 발급되는 상품권을 대체할 수 있을 만큼 크게 성장할 것으로 보고 있다. 최근 호텔 숙박권이나 관광상품권 등까지 확대돼 활용성이 매우 뛰어나다. SK텔레콤 기프티콘·KT 기프티쇼·LG텔레콤 오즈기프트 등 휴대폰 3사의 이용자를 모두 합치면 이용자가 300만명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최근 온라인 쇼핑몰 11번가에서 제일 인기가 높은 기프티콘 상품권은 배스킨라빈스와 파리바게트 상품권으로 조사됐으며 금액은 1만원 내외가 많았다. 또한 봄철을 맞아 나들이족이 늘어나 '외식 e쿠폰' 인기가 급증하면서 레스토랑이나 뷔페뿐만 아니라 주변에서 쉽게 사용할 수 있는 편의점, 패스트푸드점 등 사용 범위가 다양해지고 있다.
온라인 쇼핑몰 디앤샵은 모바일 기프티콘의 매출이 전월 동기보다 약 3.5배 증가했으며, 케이크와 피자 등 간식류를 10~20%가량 할인된 가격으로 제공하고 있다. 디앤샵에서는 '파리바게뜨 기프티콘 5천원 교환권'과 '배스킨라빈스 교환권 기프티콘'이 인기 품목이다.
◆각종 신용카드와 현금카드 사라져
기프티콘으로 인해 지갑 속에 든 각종 카드의 사용 빈도가 줄어들고 있다. 기프티콘족은 휴대폰으로 결제하기 때문에 지갑에 이런저런 카드를 가지고 다닐 필요가 없다. 특히 서울대·연세대·중앙대·한양대 등 서울 소재 대학들의 경우 휴대폰을 학생증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해 도서관에 갈 때도 학생증이 필요없도록 했다. SK텔레콤은 사원증까지 휴대폰에 저장해 사용하고 있다.
이에 더해 신한카드, 하나카드 등과 같은 신용카드도 휴대폰에 저장 가능하다. 국민은행·농협·우리은행·우체국 등 대부분 은행은 휴대폰에 금융칩을 저장해 ATM기기까지 사용할 수 있도록 했다. 다 필요없고 휴대폰 하나만 들고다니면 되는 세상이 됐다.
여대생 안혜지(22)씨는 "스마트폰을 사용하게 되면서 이제 모든 게 휴대폰으로 가능해져 지갑을 따로 들고 다닐 필요조차 느끼지 못하고 있다"며 "복잡한 기능들이 하나로 통합되고 휴대폰이 모든 세상과 통하는 창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기프티콘족으로 대표되는 휴대폰 만능주의에 불편한 점도 적잖다. 자신도 모르게 기프티콘 문자를 지워버려 친구에게서 선물이 왔는지조차 모르고 넘어가는 경우도 더러 있다. 또 휴대폰을 집에 놓고 오거나 잊어버릴 경우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허수아비 인간이 되기 십상이다. 원하지 않는 사람으로부터의 기프티콘은 오히려 부담이 될 소지도 있다.
권성훈기자 cdrom@msnet.co.kr
사진·정운철기자 woon@msnet.co.kr
※기프티콘(Gifticon)=선물(Gift)과 이모티콘(Emoticon)의 합성어. 휴대폰 문자 메시지로 전송되는 바코드 형태의 온라인 선물 쿠폰을 말한다. 이를 이용해 선물을 구입한 사람이 기프티콘을 보내주면 받은 사람은 매장에서 실제 상품으로 바꿀 수 있다.
☞ 기프티콘 이용시 자주 문의되는 궁금증 세 가지
기프티콘족이 늘어나면서 이용방법에 대한 문의도 잇따르고 있다. 자주 문의되는 궁금증 세가지를 알아봤다.
1.기프티콘도 유효기간이 있나요.
-업체마다 다를 수 있지만 대체로 발행일로부터 60일 정도로 정하고 있다. 이 기간이 지나면 선물을 준 사람의 성의는 사라져 버린다.
2.기프티콘 메시지를 삭제하면 살릴 수 있나요.
-상대가 보냈는데 지워버리고 알지 못한다면 그냥 넘어가야 하지만 상대가 준 사실을 알고, 해당 통신사에 전화해 소정의 확인 절차를 거치면 사라진 기프티콘 문자메시지를 살릴 수 있다.
3.꼭 보내준 제품만 사야 하나요.
-해당 가게에 가면 다소 융통성이 있다. 5천원 상품권의 경우엔 마음대로 5천원어치를 살 수 있으며, 비슷한 가격대의 경우 업체에서 다른 메뉴나 상품으로 바꿔주기도 한다.
권성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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