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도 통하지 않고 문화도 많이 다른 나라에서 시집을 온 저를 친딸처럼 아끼며 사랑해 주시는 어머님! 정말로 고맙습니다."
어버이날인 8일 아침, 영천시 문외동 한 아파트에 사는 판티베녹(28)씨는 정성을 다해 직접 만든 카네이션을 시어머니 가슴에 달아드렸다. 감사의 편지와 함께 구슬 하나하나에 정성을 담아 꿴 비즈 공예 목걸이도 선물했다.
베트남에서 시집을 온 며느리의 정성 어린 편지와 선물을 받은 시어머니 이형례(78)씨는 며느리의 손을 꼭 잡으며 등을 토닥여줬다. 국경과 문화를 초월해 시어머니와 며느리 사이에 따뜻한 정이 흘러 넘쳤다.
◆고부 사이에 흐르는 사랑!
판티베녹씨는 지난 3월 네살배기 딸 미정이와 함께 한달 동안 베트남 친정에 다녀왔다. 고향에서 벼농사를 짓는 부모, 형제를 만나 일손을 도우며 오랜만에 가족의 정을 나눴다. 하지만 남편 오기옥(50)씨는 항공료를 마련하지 못해 처가에 가지 못했다.
시어머니 이씨는 며느리, 손녀가 베트남으로 떠난 뒤 집안이 온통 텅 빈 것 같아 채소를 가꾸기 시작했다. 아파트 앞 정원에 상추, 배추 등을 심어 싹이 트는 것을 보며 며느리와 재롱둥이 손녀를 보고 싶은 마음을 달랬다. 항상 웃으며 어른들을 잘 모시는 며느리와 함께 나들이 삼아 시장에 갔던 생각도 났다. 한국말을 잘해 평소 딸처럼 여기며 지내는 며느리와 세상 사는 이야기도 하고 싶었다. 베트남 사돈들 안부도 궁금했다.
며느리인 판티베녹씨의 시어머니에 대한 사랑도 살갑다. "부족한 점이 많은 저에게 항상 잘해 주시는 어머님, 건강하게 오래오래 사세요." 3일 며느리는 결혼이주여성 20여명과 함께 영천시 여성복지회관에서 어버이날 시어머니에게 드릴 감사의 편지를 썼다. 짤막한 내용이지만 또박또박 써내려간 글자 한자 한자에 시어머니에 대한 사랑을 가득 담았다. 카네이션과 목걸이도 직접 만들었다.
그녀는 한국어를 가르쳐준 시어머니가 '스승'이나 다름없다고 했다. 시어머니에게 한국 요리도 많이 배워 이젠 혼자 김치를 담글 정도라고 자랑했다.
◆"꿈이 있어 행복해요!"
판티베녹씨는 시어머니와 잦은 대화를 통해 한국어를 빨리 배웠다고 털어놨다. 딸에게도 한국말과 한글을 직접 가르치고 있다. 다른 다문화가정이 겪는 의사소통의 어려움을 일찍 극복한 것. 요즘엔 영천시 여성복지회관과 다문화가족지원센터의 한국어 강좌에 참여해 글쓰기 공부도 열심히 하고 있다.
판티베녹씨의 훌륭한 한국어 실력 덕분에 베트남 친구 부부가 이혼 위기를 벗어나기도 했다. 한국말을 잘 못해 부부싸움 후 이혼을 고려하고 있는 베트남 친구를 만나 통역과 상담으로 화해를 주선했다. 판티베녹씨는 베트남 친구 부부가 위기를 극복하고 잘사는 모습에 한국어를 열심히 공부한 보람을 느낀다고 했다.
지난해 11월엔 운전면허시험에 합격했다. 다른 결혼이주여성들이 2종 오토 면허증을 받은 반면 판티베녹씨는 1종 보통 면허증을 땄다. 자신의 아버지보다 두살이나 더 많은 남편이 트럭 행상을 하다 아플 경우 직접 운전을 하며 도와주기 위해서다.
그녀는 지난해 10월 중국, 필리핀, 베트남 등의 결혼이주여성 15명으로 구성된 다문화한마음봉사단원으로 참여해 어엿한 영천 시민으로 활동하고 있다. 처녀시절 베트남에서 의류회사, 신발공장, 보험회사 등을 다니며 일했다는 판티베녹씨는 한국에 와서도 억척스럽게 생활하고 있다. 얼마 전까지 새벽마다 우유를 배달하다 딸이 일어나 엄마를 찾는 바람에 그만뒀다. 요즘은 부업으로 집에서 자동차 부품 조립이나 색연필 끝마무리 손질을 하고 있다. 늦은 밤까지 해야 하는 일이지만 딸 우유 값에 보태기 위해 계속할 생각이다. 앞으로 한국어를 더 열심히 공부해 다른 결혼이주 친구들을 도와줄 수 있는 방문지도사를 꿈꾸고 있다.
◆아름다운 마음씨, 주위에서도 '칭찬'
트럭 행상을 하는 남편 오씨는 몇개월 전부터 다시 희망을 찾았다. 대형소매점에서 많이 취급하는 과일 대신 묘목을 팔아 지금은 장사가 잘되는 편이다. 영천, 금호, 하양 등 5일장을 돌아다니며 트럭 행상을 하는 오씨는 이달부터 고추, 오이, 호박 등의 모종을 판매할 계획이다. 계절별로 틈새시장을 찾아 다섯 식구의 생계를 꾸려나갈 계획이다.
판티베녹씨의 한국생활 적응을 돕기 위해 주위에서도 아름다운 손길을 보내고 있다. 의자매를 맺은 '언니' 이연화(47·대구 동구)씨는 "작은 것에도 감사하게 여기며 열심히 살아가는 동생이 너무 착하고 예쁘다"며 "다문화가족들이 건강하게 생활할 수 있도록 격려와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말했다. 이씨는 지난해 영천 은해사의 다문화가정 템플스테이를 주선해 결혼이주여성들의 사찰 체험을 돕기도 했다.
조경희 영천시 여성복지회관장은 "나이 든 남편을 위해 1종 보통 운전면허를 딴 판티베녹씨의 마음씨가 너무 아름답다"며 "그녀가 한국어 공부하러 올 때 타고 다닐 수 있도록 경품으로 받은 자전거를 선물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영천·민병곤기자 minb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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