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맙습니다. 이제야 마음이 홀가분합니다." 12일 오후 뒤늦은 결혼식을 마친 말기암 환자 이말희(51)씨는 수간호사에게 속삭이듯 이렇게 말했다. 결혼한 지 20년, 강산이 두번 바뀌도록 결혼식을 올리지 못한 게 내내 가슴이 멨다. 아내에게 미안한 세월이었다.
지난해 9월, 청천벽력같은 간암 말기 판정이 나왔다. 가슴 속 하늘이 무너져 내렸다. 영남대 병원을 수없이 드나들었다."내게 더 이상의 치료는 불가능한 것인가…."
영남대 병원 호스피스 병동으로 온 지 일주일째, 남편은 부인 김후자(50)씨에게 조용히 말을 꺼냈다. "드레스만이라도 차려입고 가족사진이라도 찍자." 아내는 울컥 눈시울이 붉어졌다. 20년을 기다린 남편의 배려였다.
안타까운 소식을 접한 병원 봉사단체인 보현회 회원들이 서둘러 결혼식장을 마련했다. 12일 오후 영남대 병원내 법당. 이관호 영남대병원장, 이경희 영남대병원 호스피스위원회 위원장을 비롯한 병원 관계자, 가족 친지 등 100여명의 하객이 이들을 축하했다. 하나뿐인 고교 2학년 딸아이도 조퇴를 받아 참석했다. 주례는 해봉스님이, 사회는 이은일 수간호사가 맡았다. 20년 만에 가진 정말 행복한 결혼식이었다.
부인 김후자씨는 현재 호스피스 병동에서 남편을 극진히 간호하고 있다. 며칠을 함께 할지 모르지만 마지막 그날까지 남편곁을 지킬 생각이다. 딸아이도 아빠의 현실을 담담하게 받아들여 무척 고맙다고 한다.
"인연이 얼마 남지 않았지만 결혼식을 올려준 남편이 정말 고맙습니다. 그리고 병원 관계자님께 감사드립니다."
김태형기자 thkim21@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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