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문화칼럼] 국화보다 아름다운 너

몇 해 전 봄, 청소년들에게 철학 강의를 해 달라는 초청을 받았다. 그런데 주제가 「나는 어떤 존재인가? 그러므로 어떻게 살 것인가?」였다. 강의 주제를 듣는 순간 가슴이 답답해졌다. '어린 아이들에게 어려운 주제를 어떻게 풀어야 할까? 하품이나 하지 않을까?'

며칠을 고민에 빠져 살았다. 그때 먼 산에서 소쩍새 울음소리가 들렸다. 그 울음소리가 내 마음에 천둥처럼 울렸다. 그리고 내 입가엔 미소가 피어올랐다. 드디어 '똘망똘망' 눈빛이 빛나는 아이들 앞에 섰다. 서정주 님의 라는 시를 낭송하는 것으로 강의를 시작했다.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나 보다.//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천둥은 먹구름 속에서/ 또 그렇게 울었나 보다.// (중략)// 노오란 네 꽃잎이 피려고/ 간밤에 무서리가 저리 내리고/ 내게는 잠도 오지 않았나 보다.

그리고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소쩍! 소쩍!" 소쩍새가 울었어요. "국화야, 이제 봄이 왔단다. 어서 겨울잠에서 깨어나 싹을 틔우렴." 국화는 소쩍새의 울음소리를 들으며 자랐어요. 그리고 여름이 왔어요. 국화가 걱정된 천둥은 먹구름 속에서 울었어요. "구름아, 햇볕이 너무 뜨거워. 국화가 마르지 않게 네가 햇볕을 막아 줘." 하지만 한여름이 되자 햇볕은 더욱 뜨겁게 내리쬐었어요. "구름아, 구름아. 국화가 타 죽겠어. 비를 좀 내려 줘." 구름은 온몸을 쥐어짜며 소나기를 뿌렸어요. 덕분에 국화는 쑥쑥 자라났어요.

무더운 여름의 꼬리를 물고 가을이 왔어요. 맑은 하늘에는 고추잠자리가 첫 비행을 하고 있었어요. 가을 햇빛이 반짝반짝 빛을 내며 국화를 부드럽게 쓰다듬었어요. "국화야, 이제 너도 꽃망울을 만들 때가 되었구나. 내가 밝은 빛을 줄 테니 예쁜 꽃망울을 만들렴."

완연한 가을이 되자, 꽃망울은 조금씩 자라기 시작했어요. 가을 햇빛이 국화에게 속삭였어요. "나의 따뜻한 햇볕으로 무지개처럼 예쁘고 선명한 꽃잎 색소를 만들렴." 가을 바람도 살랑살랑 불어왔어요. 국화는 날마다 따뜻한 햇볕을 쬐고 맑은 공기를 마시면서 예쁜 꽃망울을 몽글몽글 키웠어요.

어느덧 가을이 깊어지고 서리가 내렸어요. 국화의 잎사귀에 내려앉은 서리가 말했어요. "국화야, 이제 네가 꽃을 피울 차례야." 다음 날 아침, 국화는 예쁜 꽃을 피웠어요. 나비와 벌이 날아왔어요. "국화꽃에서 소쩍새의 노래와 천둥의 울음소리가 들려. 모양은 구름을 닮았고 색은 무지개를 닮았어. 국화 향기는 세상의 어떤 향과도 비교할 수가 없어. 국화는 우리의 우주야."

비록 한철에 피었다가 시드는 꽃이라도 그 꽃이 꽃으로 피어나기 위해서는 많은 신비한 힘이 필요했단다. 태양이 없고서야 어찌 국화가 필 수 있었겠니? 가을이 없고서야 또 어찌 국화를 피울 수 있었겠니?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서 봄이 있었고, 소쩍새가 울었고, 여름이 있었고, 천둥이 먹구름 속에서 울었고, 가을 햇빛과 가을 바람이 있었고, 서리가 내렸다면 국화는 우주만큼 소중한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국화보다 아름다운 너는 어떤 존재일까? 너를 위해 엄마와 아빠가 있고,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있고, 너를 위해 시간의 수레바퀴가 돌고, 지구와 태양과 우주가 도는 것은 아닐까? 그래서 너는 우주보다 소중한 존재가 아닐까? 그렇다면 국화보다 아름다운 너는, 우주보다 소중한 너는 어떻게 살아야 하겠니?

우리 아이들은 자라면서 두 번의 무법자 시기, 즉 반항기를 겪게 된다.

첫 번째는 자아가 싹트는 유아기 때이고, 두 번째는 자아 정체성의 혼란을 겪는 사춘기 때이다. 특히 자아 정체성의 혼란을 겪는 사춘기 때에 철학 교육이 필요하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떤 존재인가?'를 깨우쳐 줌으로써 정체성을 확립하고 자존감을 높여 주어야 한다. 그러면 '내가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답을 스스로 얻어 행동 양식이 달라지게 될 것이다.

어릴 때부터 철학 동화를 읽히는 것도 예방 주사가 될 것이다.

"우리의 삶을 모든 이들이 공부할 수 있는 열린 책이 되게 하라."

마하트마 간디의 금언처럼 우리 부모의 삶이 철학 교과서가 되었으면 좋겠다.

올해도 소쩍새 울음소리가 들린다. 소쩍새 울음소리에 국화 향기가 묻어난다.

류일윤 버터영어 / 글뿌리 출판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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