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아직 할 일 남았는데…' 이동구 전 대구의료원장

김시장 만난 후 생각 바꿨어요

'개혁 전도사' '지방 공기업 최초 공채 CEO' '바늘로 찔러도 피 한 방울 나지 않을 사람'.

만성적자에 시달리던 대구의료원을 흑자로 돌려놓은 이동구(65) 전 대구의료원장에게 따라다니는 꼬리표다. 12년 동안 대구의료원장으로 재직하면서 그가 이룬 성과는 놀랍다. 지역거점 공공병원 경영평가 12년 연속 최우수기관 선정, 노사화합대상 수상, 부설 한의원 설립, 말기암 환자를 위한 완화의료센터 설치 등 대구의료원은 양적·질적 성장을 거듭했다. 겉으로 드러난 성과뿐 아니라 직원들이 가지게 된 자신감 등 내적인 성과는 측정할 수 없는 무형의 자산이 됐다. 숱한 화제를 몰고 다니며 늘 대구의료원과 함께할 것 같았던 그가 지난달 30일 임기를 마치고 대구의료원을 떠났다. 자연인으로 돌아간 그를 만나 못다 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왜 떠났나

언제부터인가 이 전 원장을 빼놓고 대구의료원을 이야기하는 것이 이상해졌다. 사람들 인식 속에 '대구의료원=이동구'라는 등식이 고정관념처럼 박혀버렸다. 그래서 그가 대구의료원과 결별했을 때 사람들은 의아해했다. 일을 잘 해 왔고 자신도 일을 계속할 생각을 갖고 있다고 여겼기 때문. 특히 직원들이 나서서 유임을 원한다는 서명운동까지 벌인 터였다. 하지만 그는 연임을 위한 공모에 지원하지 않았다.

"내년 3월 본관과 동·서관 리모델링 공사가 끝나면 1천 병상을 갖춘 대형병원으로 탈바꿈합니다. 리모델링 후 1, 2년은 대형병원으로 정상 궤도에 오를 수 있느냐를 가름하는 중요한 시기입니다. 그래서 임기 만료를 앞두고 지인들을 만나 진로에 대해 자문을 구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벌인 일을 마무리짓지 않고 물러나는 것은 책임 회피 같다는 의견을 제시해 봉사한다는 생각으로 한 번 더 일할 생각을 가졌습니다."

그런데 그는 김범일 대구시장과의 면담 후 생각을 바꾸었다고 했다. "통상 임기 만료 전에 임명권자인 시장님과 면담을 합니다. 제 판단이 잘못됐을 수도 있지만 면담 과정에서 시장님이 제 연임에 부담을 갖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동안 세 번 연임하면서 가졌던 면담에서는 느껴보지 못한 분위기가 감지돼 그만둘 결심을 했습니다."

면담 후 한동안 그는 굉장히 섭섭했다고 한다. '대구시에서 대구의료원 실상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건 아닌가' '개인적 욕심을 채우기 위해 자리에 연연하는 사람으로 보인 건 아닌가' 온갖 생각이 다 들었다. 이런 스트레스로 얼굴에 대상포진까지 생겼다. 병을 앓으면서 그는 마음을 비웠다. 하늘이 주신 휴식 기회라고 생각하고 받아들이기로 한 것.

대구의료원장 공모는 9일 마감됐지만 하마평은 이전부터 무성했다. 늘 그렇지만 소문은 소문으로 끝날 수 있고 사실일 수도 있다. 소문과 이 전 원장의 처신은 연관이 있을까. "소문을 가지고 이런저런 얘기를 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대구의료원이 정상 궤도에 올랐기 때문에 누가 오더라도 잘 운영될 것이라는 안이한 생각을 대구시가 가져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병원 사정을 가장 잘 아는 사람들은 직원들입니다. 직원들 입장에서 저는 좋은 원장이 못 됩니다. 보수를 줄이고 다른 병원들이 주5일 근무할 때 저는 주6일 근무시켰습니다. 그런 직원들이 저의 연임을 원한 이유는 아직까지 대구의료원이 안정 궤도에 들어섰다고 자신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비록 몸은 떠났지만 대구의료원을 향한 마음은 여전하다. 그는 "후임자는 누가 봐도 저보다 뛰어난 사람이 와야 합니다. 병원장으로 풍부한 경험을 쌓은 사람, 저의 부족한 면을 채워줄 수 있는 유능한 사람이 와서 대구의료원을 한층 더 발전시켜주기를 바랍니다"고 했다.

◆대구의료원 얼마나 방만했나

흔히 공공부문 경쟁력 약화의 원인으로 방만한 경영을 꼽는다. 실제로 이 전 원장이 취임할 당시 대구의료원 경영은 어떠했을까. 이에 대해 이 전 원장은 "처음 부임했을 때 전년도 적자가 9억4천700만원이었습니다. 그런데 매점·자판기 운영 등에서 발생하는 부수입은 병원 적자 메우는 데 사용되지 않고 친목회를 통해 직원들이 나누어 갖고 있었습니다. 누구 하나 적자를 걱정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적자는 대구시가 메워 주겠지 하는 생각이 만연했습니다. 이건 대구의료원에 국한된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나라 공기업 가운데 상당수가 이런 문제를 안고 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이 전 원장은 친목회를 해산하고 부수입을 병원 수입으로 전환하는 것을 시작으로 병원 개혁에 들어갔다. 퇴직금 누진제도를 폐지하고, 연공서열에 안주하는 분위기를 바꾸기 위해 간부들을 대상으로 연봉제도 도입했다. 이 과정에서 임금 삭감도 이루어졌다. 직원들이 반발한 것은 당연한 일. 하지만 그의 개혁 의지를 꺾지는 못했다.

"열심히 일하지 않으면 호봉과 임금이 오르는 일은 없다고 선언했습니다. 언제까지 세금으로 적자를 메울 수도 없고 우리가 변한 모습을 보여줘야 세금 지원을 받더라도 부끄럽지 않다고 설득도 했습니다." 그는 직원들의 의식 변화를 위해 자신의 솔선수범이 필요하다고 판단, 운전 기사와 업무추진비를 없앴다. 심지어 엘리베이터도 타지 않았다. 차츰 직원들이 이해하며 따라주기 시작했고 흑자 전환과 8년 연속 노사평화선언이라는 결실로 이어졌다고 했다.

◆12년 세월을 돌아보면

강산이 한 번 변하고도 남을 세월 동안 이 전 원장은 앞만 보고 달려왔다. 그는 자신이 원하던 목표를 이루고 대구의료원을 떠난 것일까. "첫 목표는 경영정상화였습니다. 이를 위해 직원들 의식을 개혁하고 조직을 개선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일단 경영정상화 목표는 달성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의식 개혁과 조직 개선은 늘 해야 하는 일이기 때문에 미완성입니다. 지금 흑자 상태라고 방심하면 적자로 돌아서는 건 시간문제입니다."

그는 전문경영인으로 자신에게 점수를 매긴다면 열정에는 높은 점수를 줄 수 있지만 성과는 자신의 공이 아니라고 했다. "저 혼자 잘해서 좋은 결과를 일궈낸 것이 아닙니다. 많은 사람들이 도와주지 않았으면 불가능했습니다. 특히 직원들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직원들이 원하는 봉급 인상과 주5일 근무를 들어주지 못한 채 떠나서 미안하고 아쉽습니다."

그동안 이 전 원장은 칭찬도 많이 받았지만 욕도 참 많이 먹었다. 부임 초기 동료 의사들로부터 비난을 받은 것은 떠올리고 싶지 않은 기억 중 하나다. "계약제로 전환할 때 제가 실적을 내기 위해 후배 의사를 핍박한다는 비난을 받았습니다. 의약분업 문제로 의사들이 파업할 때 청진기를 놓지 않아 의료계 공적으로 내몰렸습니다. 대구 서구의사회 회장을 업무방해 혐의로 고발한 사람으로 지목되기도 했습니다. 세월이 흘러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났지만 당시에는 마음의 상처가 컸습니다."

하지만 그는 전체적으로 행복한 시간을 보냈고 행복한 사람이었다고 했다. "제가 가진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기회를 가졌고 좋은 사람들과 함께했기 때문에 진료 의사의 길을 포기하고 전문경영인의 길을 선택한 것에 후회가 없습니다."

◆앞으로의 계획

시간을 분 단위로 쪼개 쓰며 바쁘게 살았던 이 전 원장은 요즘 시간이 흘러넘친다. 어떻게 하루를 보내고 있을까. 인터뷰를 위해 집을 방문했을 때 그는 부인 김세경(63) 씨와 함께 여행 계획을 짜고 있었다. "재충전도 하고 가족들과 여행도 하면서 당분간 쉴 계획입니다. 최근 제대한 막내 아들과 함께 제주 올레길도 걸어보고 아내와 함께 일본, 호주 여행도 다녀올 생각입니다."

그는 가을부터 다시 일을 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벌써 여러 곳에서 스카우트 제의가 들어왔다는 것. "낮은 곳으로 임할 생각입니다. 대구의료원장보다 더 높은 직책은 맡지 않을 생각입니다. 제 인생 계획표의 마지막 퍼즐은 한적한 중소도시 작은 병원에서 병리과장으로 재직하면서 의사로서 마지막 봉사를 하는 것입니다."

이경달기자 sarang@msnet.co.kr 사진·정운철기자 woon@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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