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 리 밖까지 볼 수 있는 안력(眼力)을 뜻하는 천리안(千里眼)은 한계를 뛰어넘고 싶어하는 인간 욕망의 표현이다. 인간의 눈으로 서울에서 부산까지 거리인 400㎞ 밖을 본다는 건 불가능한 일. 천리안이란 말은 중국 위나라 양일이 부하를 시켜 곳곳의 정보를 시시각각으로 모아 먼 곳의 일까지 알았다는 실제 사실에서 유래했지만 신화나 설화에는 비현실적 능력이 곧잘 등장한다.
중국 어부들이 믿는 물의 신 마조(媽祖)는 바다에서 위난에 빠진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천 리 밖까지 보고 듣는 천리안과 순풍이(順風耳)를 시종으로 거느렸다고 한다. 그리스 신화에도 땅속의 광맥까지 꿰뚫어 보는 천리안 린케우스(Lynceus)의 이야기가 나오는 걸 보면 시력의 한계를 벗어나려는 욕망은 동서를 가리지 않는다고 하겠다.
인터넷 등장 이전에 폭발적 인기를 누렸던 우리나라 PC통신의 첫 서비스 명칭은 천리안이었다. PC를 가진 사람들이 통신망을 통해 전국 각지의 사람들과 편지를 주고받고, 실시간으로 대화를 나누고, 자료까지 공유할 수 있다는 사실은 서비스가 시작된 1985년 당시로는 충격이었다. 천 리 밖을 보고 싶은 욕망을 일부라도 채울 수 있었으니 서비스명은 안성맞춤이었다.
지난달 27일 발사돼 12일 최초의 기상영상을 보내온 통신해양기상위성의 이름인 천리안은 국민 공모를 통해 선정됐다. 5천 개 넘게 응모된 이름 가운데 천리안이 뽑힌 이유도 마찬가지 의미일 것이다. 하루 24시간 내내 우리나라의 기상과 해양을 관측해 하늘(天)에서 이로움(利)과 안전함(安)을 준다는 뜻을 담았다는 설명에도 고개가 끄덕여진다.
천리안 위성이 갖는 의의는 한둘이 아니다. 무엇보다 우리나라 상공인 동경 128.2도의 위치를 선점해 한반도가 한가운데에 있는 지구의 영상을 언제든 볼 수 있다는 점이 뿌듯하다. 세계 최초로 해양 관측 센서를 달아 한반도 주변 해양 환경을 실시간 관측할 수 있다는 점, 위성 개발과 위성통신 기술 도약의 계기가 된다는 점도 빼놓을 수 없다.
천리안이 떠 있는 곳은 지상 3만6천㎞. 대붕이 큰 날개를 치고 날아올라 여행하는 거리인 9만 리 높이다. 대붕의 눈으로 우리나라에 이로움과 안전함을 주는 큰 역할을 기대해 본다.
김재경 특집팀장 kjk@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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