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목숨은 하늘에 달렸지요. 하지만 어린 학생들을 위험에 내버려둘 수는 없지 않습니까?"
구미시 도량2동 주민 신상길(53)씨는 도송육교 부근 위험한 도로 한복판에서 학생들의 등하교 교통봉사활동을 하고 있는 인간신호등이다. 신씨는 2005년 6월부터 했으니 벌써 6년째 접어들었지만 부인 임미영(44)씨는 교통사고로 다리가 불편한 남편을 도와 지난해 12월부터 시작한 아직 새내기 인간신호등이다.
신씨가 육교 부근 작은 네거리에서 스스로 인간신호등이 된 것은 한 어린학생이 교통사고로 다리를 다쳐 병원에 실려 가는 것을 보고나서다.
자신도 대구 직장생활 중이던 1990년 교통사고로 6개월간 병원 신세를 진 경험이 있는데다 2004년부터 시작한 새마을교통봉사대 활동으로 판단력이 부족한 학생들의 교통사고 위험 가능성에 대해 느낀 바가 많았기 때문이었다.
도송육교 부근은 야은초교와 도량초교, 도송중학교 학생들의 등하굣길이다. 또 출근길 시민들이 육교 이용보다는 무단횡단을 자주 하고 출근·통행 차량들도 뒤섞여 늘 위험천만한 상황이었다. 등하교 때마다 목격하는 아찔한 순간과 교통사고 현장을 목격하면서 그는 스스로 인간신호등이 되기로 작정했단다.
신씨는 새벽까지 이어지는 가게 영업에도 불구하고 학생들이 등하교하는 날에는 어김없이 매일 아침 부인 임씨와 함께 7시35분에서 8시35분까지 그리고 오후에는 홀로 3시30분부터 4시30분까지 2시간 동안 새마을교통봉사대 복장에다 호루라기, 신호봉을 들고 근무를 한다.
처음엔 욕도 많이 먹었다고 한다. 육교를 이용하지 않고 무단횡단하는 사람들에게 잔소리를 하자 사람들이 "왜 간섭하냐"며 못마땅해 했단다. 그래도 신씨는 굽히지 않고 왕복 4차선 한 가운데 한 뼘 조금 넘는 공간에서 인간신호등 역할을 계속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학생들과 주민 그리고 차량들이 신씨의 수신호에 따라주기 시작했고 육교 대신 무단횡단하던 사람들도 조금씩 사라졌단다. 이제는 거의 모든 사람들이 육교를 이용하고 있단다.
상주에서 태어나 대구에서 교통사고를 당한 뒤 1996년부터 구미에 정착해 99년부터 가게를 운영하던 남편을 만나 3년 전 결혼한 부인 임씨도 남편의 아픔을 알고 지난해 12월부터 아침시간 교통봉사에 동참했다. 하지만 임씨는 안타깝게도 올 4월에 차량에 부딪쳐 골절상을 입고 4주 동안 병원신세를 지기도 했다.
"안타깝고 미워 죽겠다"는 어머니(77)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신씨는 "목숨은 하늘에 달렸다"며 교통봉사를 계속하고 있다. 남편 가게에서 자신과 함께 일하시는 시어머니와 친정 어머니(70)의 걱정에도 부인 역시 남편과 함께 교통봉사를 하겠단다. 그야말로 부창부수다.
신씨는 교통봉사를 계기로 몇 년 전에는 학생들을 돕는 인근 학교 녹색어머니회와 학생선도단 사람들이 고생하는 것을 보고 500여만 원을 들여 컨테이너 사무실도 마련해 쉴 수 있도록 했다.
신씨는 알고 있는 도량동 김휴진 동장은 "신씨는 홀어머니를 모시고 있어서 그런지 해마다 동네 홀몸 어르신 및 노인정 어르신들을 위해 백숙이나 음식 대접도 하고 있다"고 귀띔해 줬다. 신씨는 "아버지가 어려운 사람을 돕는 것을 봤던 영향이 아니겠느냐"고 했다.
교통봉사 활동이 알려지면서 동사무소 감사패와 교육청, 경찰로부터 표창장을 받기도 했던 신씨는 "제가 하는 일이 이런 것을 받을 만한지 모르겠다"며 머쓱해 했다. "매일 서는 도로 가운데 작은 그 공간이 바로 내 집"이란 신씨의 말이 더욱 의미심장하게 들린다.
가슴에는 빨간색 열정을 안고 얼굴에는 희망의 노란색 미소를 물고 스스로 안전한 초록불이 되는 인간신호등 부부. 그들의 인생이 온통 푸른 행복으로 빛나는 듯 하다.
매일신문 경북중부지역본부· 구미를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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