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위에 하얗게 부서지는 파도. 멀리
차오르는 수평선. 우리의 꿈은 오늘 유난히
푸르고 맑게, 풋풋하고 뜨겁게 달리고 있다.
동해 저 멀리, 태평양 높은 물결을 가르면서,
끝없이 일어서는 파도가 되고 있다.
이태수 시인의 의 한 구절이다. 마치 동일한 대상을 보듯 그림과 시 한 편이 잘 어울릴 때는 두 자매 예술이 서로를 지향한다는 말에 더욱 공감이 간다. 시인과 마찬가지로 화가에게도 바다는 붓을 들게 만드는 충동적인 모티프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감동을 재현하는 방식은 닮은 듯 서로 다르다. 시인의 언어가 불러일으키는 상상을 화가는 색채와 형태로 감각에 직접적으로 제시하기 때문이다. 이 그림은 구름이 몰려 흐르는 모양도 그렇고 바위에 부딪혀 부서지는 파도의 포말이나 거칠게 출렁대는 물결도 모두 하나같이 큰 운동감을 드러내며 생생하고도 매우 역동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붓질은 과감하고 단호하게 사용되어 비록 소품이지만 자신감 있게 적용된 작가의 기량과 감각을 짐작하게 한다.
화면의 전체적인 전개가 원근이나 양감 따위에 크게 신경 쓰지 않고 평면적으로 처리된 느낌을 주면서도 구름의 방향과 갯바위의 배치가 사선으로 혹은 중심을 향해 집중하고 있어서 공간감과 깊이를 동시에 산출한다. 채색 역시 제한적임에도 불구하고 검푸른 물색의 수평선은 무한한 넓이를 담고 펼쳐진 느낌을 주며 그와 대비되는 흐린 듯 투명한 하늘색의 변화는 가슴을 뭉클하게 할 정도의 서정성을 띤다.
강운섭의 초기 작품들은 대개 이렇게 사생에 바탕을 두고 있어서 즉흥적인 표현의 꾸밈없는 신선함이 먼저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별도로 표구하여 발표한 적도 없이 그냥 스케치북 속에 존재하는 그림들인데, 이런데서 오히려 작가의 재능이 자유롭게 잘 발휘된 것을 본다. 마무리의 개념이나 완성에 대한 관심이 덜 개입된 작품일수록 본능과 참신한 창안이 더 쉽게 발견되기 마련이다.
바다 풍경은 항해와 깊은 연관이 있던 네덜란드의 화가들이 사나운 파도와 싸우며 나아가는 범선과 함께 잘 그려왔다. 영국의 터너도 낭만주의적 사실주의의 바다 그림으로 유명하다. 지금 이 해경 작품의 감수성은 에밀 놀데의 양식을 다소 연상시킨다. 그의 후기 수채화들에 지배적인, 색채의 순수한 평면적인 사용으로 감정에 호소하는 특징처럼 이 그림도 그 만큼 표현적이고 격정적인 데가 있다. 그런 한편으론 또한 침묵과 평화로운 관조가 느껴지기도 한다. 주제와 무관한 자연의 모티프에서 능숙한 붓놀림에 의해 창조된 형태의 리듬과 선명하고 풍부한 느낌의 채색이 잘 어울려 깊은 울림을 자아내는 작품이다. 김영동(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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