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목이 뻣뻣하고 머리가 깨질 듯이 아픈데 어디로 갈까?" "허리가 송곳으로 찌르는 것처럼 아픈데 어디로 갈까?" "가끔씩 다리가 결리는데 어디로 갈까?" 의료 담당을 맡은 뒤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이 바로 이것이다. "어디로 갈까?"
아프면 병원에 가야 한다. 배 고프면 밥을 먹어야 하는 것처럼 너무나 당연한 명제다. 답이 너무 뻔한 질문을 우리는 자주 한다. 기자도 그렇다. 얼마 전에 "내비게이션을 사려는데 어디로 갈까?"라고 지인에게 물었다. 모 선배는 "인터넷 전화를 개통하려는데 어디로 갈까?"라고 물어오기도 했다. 그런데 이런 질문에다 '병원' '차량용품점' '전화국'이라고 답했다가는 뺨 맞기 딱 좋다.
사실 '어디?'라는 의문사가 담고 있는 의미는 무척 광범위하다. 동시에 매우 구체적인 자료를 원하는 이중적 의미도 지녔다. 하지만 광범위와 구체성을 한데 담아 뭉뚱그려보면 한마디로 이렇게 정리할 수 있다. "도대체 믿을 수 있는 데가 어디야?"
여기서 '믿는다'는 말은 '속이지 않는다'와 일맥상통한다. 논리의 사슬을 연결하다 보니 깜짝 놀랄 결론에 이르게 된다. "여기저기가 아픈데, 속이지 않고 치료하는 데가 어디야?"라는 질문이 성립된다. 의사가 환자를 치료하는데 무얼 속이고, 무얼 숨긴단 말인가. 의사에게 진료받는 게 좋은 물건을 보다 싸게 사는 것과는 다르지 않은가? 그런데도 많은 사람들은 '어디로 갈까'라고 물어온다.
기자는 의사들을 만나며 조금씩 이유를 알게 됐다. 가만 둬도 나을 수 있는 중이염에 한 달 넘게 줄기차게 항생제를 주는 의사, 고관절에 이상이 생겨 허리와 무릎이 아픈데도 원인은 찾을 생각을 않고 허리와 무릎에 메스부터 대는 의사, 난치병인 '염증성 장질환' 때문에 설사가 나는 줄도 모르고 죽어라고 약만 처방하는 의사, 증상이 호전되지 않아 다른 병원에 한 번 갔다 오면 '왜 나를 믿지 못하냐?'고 짜증부터 내는 의사, 콧속에 들어간 비닐 조각 때문에 냄새가 나고 누런 콧물이 나오는데도 콧속 한 번 들여다보지 않고 염증 때문이라며 약부터 처방하는 의사(실제로 기자가 아이 때문에 만난 의사다). 오랜 시간 고통받은 환자들은 예외없이 이런 경험을 갖고 있다.
이 때문에 뒤늦게라도 제대로 된 의사를 만나 적합한 치료를 받고 나면, 앞서 겪었던 일들을 떠올리며 '속았다'고 생각하게 된다. 이유는 여러 가지다. 건강보험이 책정한 의료수가가 낮아서 과잉진료를 하기 때문에, 의사들의 진료영역이 점차 세분화하면서 다른 진료분야를 잘 모르기 때문에, 의사 스스로 자기계발 노력이 부족하기 때문에 이런 일이 생길 수 있다.
도대체 언제부터 환자와 의사가 속고 속이는 사이가 된 걸까? '속인다'는 말에 대해 "우리가 사기꾼이라는 말이냐?"며 의사들은 핏대를 세우겠지만, 적어도 환자들은 몇몇 의사들이 정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물론 의사보다 소문을 더 믿는 환자 책임도 있다. 의료진에 대한 세세한 정보가 부족한 탓도 있다. 환자와 의사가 서로 정서가 안 맞아서 갈등과 오해를 불러오는 경우도 있다.
그런데 언제까지 누구 탓만 할 것인가. 뻔한 크기의 건강보험 재정을 두고 앞으로 더 많은 의사들이 나눠먹어야 한다. 보험료를 올리는 것도 한계가 있다. 심지어 한 대학병원 교수는 의대 진학을 꿈 꾸는 아들의 장래를 두고 심각한 고민을 하고 있다고 했다. "앞으로 의사해서 먹고살 수 있겠느냐?"는 푸념까지 나오는 지경이다. 의과대학 정원을 절반으로 줄여야 한다는 말도 나온다.
모든 문제를 해결하려면 너무 복잡해진다. 신뢰회복부터 해야 한다. 모르면 모른다고 말할 줄 아는 의사의 용기가 필요하다. '어디로 갈까'라는 질문은 기자도, 동네 사람도, 아는 친척도 아닌 의사에게 해야 한다. 오히려 환자가 물어오기 전에 '여기로 가보세요'라고 의사 스스로 추천할 수 있어야 한다. 심지어 시장 상인도 자기가 팔지 않는 물건은 '저기로 가보라'고 말해준다.
김수용 사회1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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