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기 절반을 지난 이명박 대통령의 행보에서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적극적인 여론 반영'이다. 유명환 외교통상부 장관의 전격적인 '경질'이 단적인 예로 꼽힌다.
유 장관은 딸 문제가 확산되자 4일 사의를 청와대에 전달하고 이 대통령이 이를 수용함으로써 물러났다. 유 장관이 두 달여 앞으로 다가온 G20 서울회의의 주무 부처를 맡고 있고, 대외 위상과도 관련이 있다는 점에서 이 대통령의 이같은 신속한 결정은 이례적으로 받아들여진다. 임기 초반 여러 가지 비판에 '마이 웨이'를 고집하던 모습과 확연히 달라졌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배경이다.
이 대통령이 민심의 흐름을 즉각 반영하는 것은 임기 후반기에 접어들면서 공공연하게 흘러나온는 레임덕 논란과 무관치않아 보인다. 이 대통령으로선 8·15경축사를 통해 '공정한 사회'를 천명한 만큼 스스로 모범을 보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기도 하다. 이 대통령은 유 장관 문제와 관련, "보통 때 같으면 오래된 관습이라면 어쩌면 통과될 수 있는 문제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공정사회를 기준으로 보면 용납할 수 없는 사안이다"라고도 했다.
권력 누수 현상은 이미 공직사회에 재빠르게 번져나가고 있다는 게 청와대의 시각이다. 청와대 참모들은 공무원조직의 일하는 속도가 정권 초기에 비해 많이 떨어지고, 일부에서는 벌써부터 차기 유력 대권주자에 줄서기를 한다고 비판하고 있다. 이 대통령이 5일 장차관 워크숍에서 공무원 사회를 강하게 질타한 것도 '최후 경고'로 해석된다.
청와대는 이 대통령의 이 같은 변화가 플러스가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 대통령도 5일 "화가 복이 되는 기회를 만들어야 한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정치인 출신인 임태희 대통령실장, 정진석 정무수석이 이 대통령의 변화를 이끌어내고 있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이 대통령은 최근 참모들의 건의에도 부쩍 관심을 보이는 것으로 전해졌다.
정치권에서는 한편 유 장관 사례를 계기로 정치인을 포함한 고위공직자들에 대한 대대적인 사정이 추진될 것으로 보고 있다. 청와대는 "공정 사회와 사정은 관계 없다"고 선을 긋고 있지만, 이 대통령이 "공정사회는 기득권자에게 매우 불편하고 고통스러운 일"이라고 밝힌 만큼 조만간 고위층 비리 척결이 진행될 가능성은 높아보인다.
이상헌기자 davai@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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