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계산논단] 투명한 정보는 신뢰의 원천

,442,057,367,029.28. 9월 2일 현재 미국의 나라빚 금액이다. 미국 재무성은 공식 홈페이지에 매일 센트 단위까지 국가부채를 공표한다. 다양한 부채 내역을 포함한 엄청난 양의 정보를 제공하고 있기도 하다. 연간 국가부채 자료는 1791년부터 제공하고 있으니 실로 놀랄 만한 일이다.

우리가 1년에 딱 한번 4월이나 되어야 지난해 국가부채 수준을 발표하는 것에 비하면 대단한 정성이다. 그런데 우리는 어떠한가? 최근 10년 동안 국가부채는 정부가 관리하고 공개하는 정보 중에서 최대의 관심 대상이자 논쟁 대상이었다. 보증채무, 공기업부채, 연금부채 등등이 국가부채에 포함되는 지에 대한 논란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을 정도이다. 외환위기와 글로벌 금융위기라는 두 번의 경제위기를 겪는 과정에서 재정건전성 유지가 중요한 국정운영 과제가 되었고 이 과정에서 국가부채의 범위와 증가 속도는 핵심 정보였다.

우리가 알고 싶은 정보는 국가 부채만이 아니다. 사실 정보는 없어서 못주는 것과 알고도 못내놓는 것, 두가지로 구분된다. 그런데 조사와 수집이 안 돼 없어서 못주는 정보가 더 큰 문제이다. 몰라서 못주는 정보 중에 대표적인 것이 사회보험 재정과 관련된 것이다. 국민연금은 이대로 가면 언젠가 기금이 고갈된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지금 현재 국민연금이 안고 있는 잠재부채가 얼마인지를 아는 국민은 없다. 민간 보험상품의 경우 보험금 지급을 위해 적립해야 하는 준비금의 개념인 책임준비금을 주요 관리 대상지표로 사용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의 국민연금은 전혀 그 비슷한 지표를 조사하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공개하지도 않고 있다. 민간 보험회사의 재무건전성에 대한 규제는 강화시켜왔으면서 정작 정부 스스로 운용하고 있는 4가지 사회보험인 국민연금, 건강보험, 고용보험, 산재보험에 대한 재무상황 정보는 투명하지 않은 것이다. 심지어 건강보험은 공공기금에서 제외시켜 국회에 보고조차 하지 않고 있다. 건강보험 재정적자가 심각한 수준이라는 우려만 있을 뿐 지금 적자와 잠재부채가 얼마이고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이라는 정보는 없다. 건강보험의 적자가 발생하면 그만큼 국민세금으로 메워야 하는데도 말이다.

최근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는 지방정부와 지방공기업 재정 현황도 마찬가지이다. 행정안전부가 지자체로부터 수집하고 관리하는 지방정부와 지방공기업의 재정 정보는 지극히 제한적이면서 일관성이 부족하다. 명확하고 표준화된 지방재정 정보수집관리 지침이 없고 또 지자체로부터 수집된 정보를 사후 검증하는 체계도 갖추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나라빚에 당연히 포함되어야 하는 지방정부의 빚 역시 제대로 파악, 관리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사실 행정안전부로서는 정보 수집에 한계가 있다. 지자체 예산을 배정하고 지원하는 수단을 갖고 있는 기획재정부가 통합해서 관리하는 것이 바람직한 것도 이 때문이다.

알고도 못주는 정보 중에서 대표적인 것이 세금과 관련된 정보이다. 선진국이 세금관련 정보를 공개하는 범위와 양을 비교하면 우리의 세금정보 공개 수준은 지극히 저조하다고 할 수 있다. 세금 정보의 공개는 사회적으로 불필요한 불만과 갈등을 야기할 수 있다는 차원에서 늘 제한되고 있다. 특히, 소득계층별로 세금을 얼마나 내는 지에 대한 정보는 계층간 위화감을 조성한다는 차원에서 공개되지 않고 있다. 그러나 공개하지 않음으로써 불만과 갈등이 더욱 커질 수도 있음을 인식해야 한다. 학계에서의 연구를 통해 소득계층간 세부담의 공평성 관련 정보는 다른 통계자료로부터 추정하여 공개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정부는 늘 이러한 학계에서의 연구결과를 토대로 공개되는 계층간 세부담에 대한 언론보도에 대한 해명자료를 내는데 급급할 따름이다.

과거에 비하면 투명성은 개선되었다고 할 수 있다. 청문회를 통해 공개되는 각종 인사정보로 총리와 장관후보가 낙마하는 사례가 점차 늘어날 정도까지 되었다. 그러나 그것으로는 부족하다. 청문회 전에 후보자들의 인사정보들은 수집관리되고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불투명성의 정도는 정부가 보유하고 있는 정보량과 국민에게 공개된 정보량의 차이로 결정된다고 한다. 그래서 늘 이 차이를 좁혀가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한다.

투명성은 신뢰의 기본이고 신뢰를 잃은 정부는 그 어떤 정책도 성공시킬 수 없다. 정부가 내놓는 정보가 투명하다는 인식이 국민들에게 심어질 때 비로소 각종 정책이 국민들의 호응 속에서 효과를 발휘할 수 있는 것이다.

안종범(성균관대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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