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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활의 고향의 맛] 곤드레 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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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드레의 정식 이름은 고려 엉겅퀴다. 엉겅퀴는 느낌 그대로 엉설궂게 키가 크며 줄기와 잎은 질기고 빳빳한 털이 나 있어 별로 볼품없는 식물이다. 그런 곤드레가 요즘 들어 별미 음식으로 각광받고 있으니 사람뿐 아니라 나물 팔자도 알 수가 없나 보다. 곤드레란 이름은 바람에 흔들리는 잎사귀의 모양이 술 취한 사람처럼 흐느적거린다고 해서 어느 싱거운 녀석이 '곤드레만드레'라고 갖다 붙인 것이 오늘까지 전해 내려오고 있다.

#'맛 좋더라' 입소문에 식당가 새 메뉴로

도시에 곤드레 밥 전문이란 간판이 나붙은 지는 불과 몇 년이 안 된다. 강원도 영월 평창 지역을 다녀온 등산객과 관광객들 사이에 "곤드레 밥 맛이 좋더라"는 입소문이 나기 시작하자 그것이 바로 식당가의 새 아이템으로 등장한 모양이다.

천산(千山)대학 1학년인 2000년대 초반 때다. 은퇴 후 죽을 때까지 '일천 개의 산을 오르자'며 고교 동창들 몇몇이서 결성한 모임이 바로 천산대학이다. 매주 한 번씩 산행을 하면 1년에 50개씩 20년이면 천 개의 산을 오를 수 있다는 판단에서 등록금 한 푼 내지 않고 입학했다.

어느 날 팔공산을 내려오면서 "우리도 강원도 쪽으로도 한 번 가보자"는 발의가 바로 다음 주 실행으로 옮겨졌다. 내친김에 산행만 고집하지 말고 상원사, 월정사는 물론 김삿갓 어른의 묘소에도 들러보고 효석의 메밀밭 구경도 하자는 의견이 만장일치로 채택되었다.

익숙한 곳에서 벗어나 낯선 곳으로 탈출한다는 것은 분명 경이로움이었다. 그 경이는 수다와 웃음을 몰고 왔고 분위기는 행복감에 젖어들었다. 우리는 가을이 한창 머물 때 찾아오지 못한 지각생들이었다. 절집의 주변 풍광은 화장을 하지 않은 맨 얼굴에 잎새마다 칠해져 있던 립스틱마저 지워버려 화려한 감은 없었지만 나무들이 옷을 벗어가는 소박미는 오히려 최고였다.

#잠자리 정하고 봉평 특산 음식 시식

흐드러지게 메밀꽃을 피웠던 효석의 생가 터 주변도 다를 바 없었다. 메밀밭은 추수가 끝났거나 서리를 맞아 제물로 자지러졌고, 밭둥천에 서있는 허수아비들도 '이젠 쉬고 싶다'는 표정이 역력했다. 거랑(川) 주변에 흰 포장을 치고 꽹과리를 두들겨 대는 품바 각설이 팀의 공연만 없었어도 우린 메밀밭 주변 펜션에서 1박할 계획을 아예 접어버렸을지도 몰랐다.

비수기 펜션은 텅 비어 있었다. 잠자리 걱정을 덜고 나니 '밥을 해먹자'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봉평의 특산 음식을 먹기로 했다. 주민 몇 사람에게 물어보니 "가벼슬 식당이 최고래요"라는 대답이었다. 메밀밭 끝자락 산 밑에 있는 그 식당을 찾아가 허리끈을 느슨하게 풀었다. 이곳 '가벼슬'이란 이름은 희망과 열매 그리고 흥을 의미하는 뜻으로 어느 스님이 지어 준 것이라고 했다. 가벼슬이라.

우리는 여행의 피곤을 음식으로 풀 요량으로 토종닭 한 마리에 곤드레 밥을 시켰다. 밥에 따라 나오는 고사리나물, 콩나물, 배추나물 삼합은 참기름을 좋은 걸 썼는지 맛이 기가 막혔다. 거기에다 묵은지 김치와 막장 맛도 특이했다. 어느 누가 "사돈어른 청할 때 쓰려고 감추어두었던 꼬냑을 갖고 왔다"며 뿅! 하고 코르크 마개를 땄다. 엄나무 백숙에 꼬냑의 궁합이 어찌 그리 잘 어울리던지 나중에는 "소주 한 병 더요"로 이어졌다.

그날 밤 흥을 주체하지 못한 몇몇은 품바타령 옆 포장마차를 찾아가 입가심 맥주를 취하도록 마셨다. 돌아올 땐 모두가 '메밀꽃 필 무렵'의 허생원이 성씨네 처녀를 만나 하룻밤을 머문 물레방아 옆 밤 개울을 흐느적거리며 건넜다.

구활(수필가 9hwal@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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