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관광부 산하 한국문화정보센터(KCIS) 최창학(52) 소장은 '대단한' 이력의 소유자였다. 그 역시 "워낙 잡다한 일들을 많이 한 터라 사람을 기억하지 못할 때가 종종 있다"며 "교수님, 정보화담당관님, 국장님, 소장님 등 제게 어떤 호칭을 쓰는지를 보고 그 사람과의 인연을 짐작하곤 한다"고 했다.
이력서는 A4지로 4장 반이나 됐다. 1984년부터 올해 초까지는 전국 17개 대학에서 강사로서, 겸임교수로서 행정학을 가르쳤다. "석사 때부터 강의를 해왔는데 기회도 있었죠. 하지만 한 곳에 머무를 수 없는 성격입니다. 박차고 나가죠. 제 인생관도 '세상 떠날 땐 미련없이 가자'입니다. 모험을 워낙 좋아해서 아직도 할 일이 태산이죠."
강사 시절 어느 날 앨빈 토플러의 '제3의 물결', '미래의 충격' 등 사회 변동과 관련된 책을 접했다. 정보화와 행정학을 묶어서 생각하게 됐고 '새로운 정보기술이 기존의 행정체제를 어떻게 변화시킬까'라는 물음을 스스로에게 던졌다.
그 뒤 삶은 조금 다른 방향으로 흘렀다. "대구시에서 근무할 때인데 새벽에 경북대 전자계산소에서 GIS(지리공간정보시스템) 과정을 배웠습니다. 하루는 서울에서 열린 세미나를 다녀오는 비행기 안에서 우연히 조명희 경일대 교수와 옆 좌석에 앉게 됐습니다. 그 인연으로 한국지리정보학회의 전신인 대구경북GIS연구회를 함께 만들게 됐습니다."
그렇게 행정학과 정보기술을 접목한 뒤 그는 바빠졌다. 호주·네덜란드·핀란드·프랑스·네팔·베트남·파라과이 등 세계에 전자정부를 가르치러 다녔다. 워낙 돌아다니다보니 영어·일어·중국어·베트남어·러시아어·스페인어가 자연스럽게 입과 귀에 익었다. 1999년에는 공모를 통해 대구시 정보화담당관으로 일했고 모든 부서에 PC를 놓고 홈페이지를 만드는 등 전자정부 시스템의 시초를 열었다. 이 때 전국 최우수 정보화담당관에 뽑히기도 했다. 이후 그는 (재)대구디지털산업진흥원 이사와 파라과이 대통령실 전자정부 자문관을 거쳤고, 2003년부터 4년간 대통령 자문 정부혁신지방분권위원회 전자정부 국장으로 재직하기도 했다. "IT분야의 선두주자인 우리나라가 참여민주주의의 선봉에 있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앞으로도 정보화가 능률 면에서 뿐만 아니라 진정으로 국민이 주인이 되는 세상을 열어갈 것입니다."
고향에 대한 애정도 컸다. "대구경북이 자존심과 긍지가 아주 강하지만 변화에 대해서는 보수적이라는 것이 느껴집니다. 글로벌사회의 변화를 읽고 스스로 변화하고 혁신하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앞으로 주요 도시는 섬유든, 과학기술이든, 첨단의료든 컨센서스가 모이고 그것과 관련된 분야로 힘을 모아야만 발전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최 소장은 예천 출신으로 대륜중, 청구고, 대구대를 나왔다.
서상현기자 subo801@msnet.co.kr
댓글 많은 뉴스
문재인 "정치탄압"…뇌물죄 수사검사 공수처에 고발
이준석, 전장연 성당 시위에 "사회적 약자 프레임 악용한 집단 이기주의"
[전문] 한덕수, 대선 출마 "임기 3년으로 단축…개헌 완료 후 퇴임"
대법, 이재명 '선거법 위반' 파기환송…"골프발언, 허위사실공표"
野, '피고인 대통령 당선 시 재판 중지' 법 개정 추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