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낟알 먹으러 논 내려왔다 몽둥이찜질 당한 '야생너구리'

사람과 더불어 살 순 없나요…개체수 급격히 감소

18일 대구시 북구 학정동의 들녘에서 경북도농업자원관리원 근로자들이 벼베기를 하다가 우연히 발견한 야생 너구리를 한 곳으로 몰아 넣어 때려잡은 후 포대에 넣고 있는 모습이 카메라에 잡혔다. 우태욱기자 woo@msnet.co.kr
18일 대구시 북구 학정동의 들녘에서 경북도농업자원관리원 근로자들이 벼베기를 하다가 우연히 발견한 야생 너구리를 한 곳으로 몰아 넣어 때려잡은 후 포대에 넣고 있는 모습이 카메라에 잡혔다. 우태욱기자 woo@msnet.co.kr

"너무 배가 고파 낟알이라도 주워 먹으러 왔을 것 같은데…."

야생너구리가 도시 변두리 벌판에서 먹잇감을 찾아 헤매다 벼 수확 중인 인부들에게 두들겨 맞는 장면이 본지 카메라에 포착됐다.

18일 오후 1시 대구시 북구 학정동 경북도농업자원관리원이 운영하는 벼 원종 생산지. 가을걷이에 나선 한 무리의 일꾼들이 황금빛 들녘에서 분주히 일손을 놀리다 갑자기 발견한 너구리로 인해 한바탕 소동이 벌어졌다. 인부들은 마저 베어내지 못한 벼를 쇠파이프로 내리치며 토끼 몰 듯 너구리를 한 곳으로 몰아넣었다.

벼 속에 숨어 있던 너구리는 모습을 드러냈다가 인부들에게 몰매를 맞고 붙잡혔다. 일꾼들은 기자의 촬영을 제지하다 움직임이 멎은 너구리를 포대자루에 넣고서는 급히 현장을 떠났다. 이곳 관계자들은 "너구리가 죽지 않아 바로 방사해줬다"고 했다.

경북도농업자원관리원 노영균 계장은 "이번 일은 직원들이 아니라 기간제 근로자인 작업자들이 우발적으로 벌인 것"라며 "콤바인이 고장 날 수도 있고 사람에게 해가 될 수 있어 잡은 것"이라고 했다.

이곳은 인근 아파트 주민들의 산책로나 유치원생들의 벼 베기 견학 코스로 인기가 높은데 너구리같은 야생동물이 가끔씩 나타난다고 한다.

주민 배한상(44·북구 학정동) 씨는 "너구리는 원래 야행성인데 얼마나 굶주렸으면 대낮에 여기까지 왔겠느냐"면서 "농작물 피해는 이해가 가지만 몽둥이로 때려잡는 것은 보기에 좋지 않다"고 했다

너구리는 대구 두류공원에 40∼50마리까지 서식해 도심 속 인간과 공존하는 동물로 인식되기도 했지만 지난해부터 개체수가 현격하게 줄어 지금은 흔적조차 발견하기 힘든 상황이다. 두류공원 야생너구리가 차에 치여 중태에 빠졌다는 소식을 전한 '도심 너구리 로드킬'(2005년 7월 19일자 본지 1면)이 세간의 화제가 되기도 했다.

글·사진 우태욱기자 woo@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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