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1월, 교육청에서 실시하는 수능 후 논술교실 진행을 하고 있는데 학부모 한 분이 방문했다. 아이가 ○○고에 다니고 있는데 수능을 망쳤단다. 그래서 논술이 필요해서 신청하지도 않고 찾아왔다고 했다. 담임선생님과 상의해 보라고 하니 바로 학원 전화번호를 가르쳐 주더라고 했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학교논술교육에 최선을 다하고 있는 일부 선생님들에게는 정말 죄송하지만 이것이 학교논술교육의 현재이다.
통합교과형 논술이 광풍을 일으킨 적이 있었다. 대학입시에 통합교과형 논술을 반영한다는 교육부의 발표 이후, 언론이 광풍의 확대에 가세했다. 언론은 나아가 논술교육이 사교육을 조장한다는 비판을 쏟아냈다. 고액 논술과외가 도마 위에 오르기도 했다. 지금 이 시간에도 그런 현상이 일어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언론의 보도는 분명 문제가 있었다. 한국에서 가장 맹목적이고, 비이성적이고 비합리적인 집단이 '수험생을 둔 엄마'라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평상시 무척 합리적이고 사리분별력이 있는 사람조차도 내 자식만 통과하면 그만이라면서 무모하고 저돌적인 모습을 보인다. 그들에게 있어 고액 사교육에 관한 언론의 보도는 문제를 비판하려는 의도와는 달리 오히려 사교육을 더욱 심화시키는 상황을 만든다. 아무리 비용이 들어도 그렇게 하지 않으면 내 아이에게 불이익이 돌아갈지도 모른다는 심리 말이다.
그러면 학교교육은 무엇을 하고 있었던가? 서울시교육청을 비롯한 각급 교육청에서도 일제히 논술교육을 대비하기 위한 준비에 들어갔다. 학교논술 동아리로 대표되는 학교 논술교육이 이루어졌고, 교사들의 연수가 전국적으로 줄을 이었다. 대구에서도 각 학교에 논술교육동아리가 만들어졌고 다양한 방식으로 논술교육이 이루어졌다. 학교가 논술교육을 일정 부분 담당하면서 논술 사교육 시장은 주춤했다. 타산을 맞추지 못한 논술 관련 사교육 시장은 언어영역을 비롯한 다른 부분으로 이동했다. 그런데 몇몇 일간지를 제외한 대부분의 매스컴은 그러한 학교 교육의 노력에 대해 별로 관심을 두지 않았다. 만약 논술교육에 최선을 다하고 있는 학교를 지속적으로 탐방하고 그 과정을 집중해서 보도하려는 노력을 언론이 보여줬다면 현재 학교논술교육의 풍경은 달라졌을 수도 있다.
그런데 2009년 입시부터 정시논술이 거의 사라졌다. 그 영향은 아주 컸다. 언론매체는 앞 다투어 논술이 이제는 필요 없다는 인식을 확산시켰다. 논술은 학생이나 학부모의 관심, 나아가 학교에서조차 조금씩 멀어졌다. 그러고 있는 사이, 대구의 입시 성적은 계속 곤두박질을 쳤다. 수학능력시험이 절대적 기준인 정시모집전형에 집중하면서 수시모집전형을 위한 준비가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수시모집 대학별 고사에선 논술의 비중이 아주 높다. 올해 논술을 실시하는 대학은 34개 대학에 이른다. 당연히 최근 학교에서 논술을 소화해 달라는 학부모들의 요구가 아주 높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교에서의 논술교육은 여전히 답보상태이다. 수업 자체가 교사에게 부담스럽기도 하고, 교과목이 아닌 탓인지 논술교육의 필요성에 대한 인식의 변화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학교논술교육에 대한 가장 정확한 방법은 없다. 실시하는 학교마다, 가르치는 교사마다 방법이 다르다. 그러나 짧은 시간에 집중적인 투자를 한다고 해서 바로 결과가 도출되는 것도 아니다. 논술교육의 성패는 지속성에 달려있다. 다양한 교과목에 대한 지식과 정보, 그것을 통합하는 능력을 요구한다. 그것이 바로 논술이라는 영역이 지닌 얼굴이다. 오히려 이러한 점 때문에 학교 논술은 사교육에 비해 훨씬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다. 모든 교과목의 교사들이 있고 그들의 능력은 대단히 우수하다. '평가'라는 약간은 강제적인 시스템을 동원할 수 있는 힘도 갖추고 있다. 남은 것은 교사들의 관심과 열정, 그리고 그 열정을 제대로 평가해줄 수 있는 학교 시스템이다. 한준희 (대구통합교과논술지원단, 경명여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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