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법 개정 전 SSM 기습개점" 골목상권 곳곳 충돌

입점하고 나면 제재 못해 현행법 맹점 교묘히 이용

8일 오전 대구 수성구 지산동 목련시장 앞
8일 오전 대구 수성구 지산동 목련시장 앞 '홈플러스 익스프레스'에서 목련시장 상인회 상인들과 홈플러스 직원들이 대치하고 있다. 우태욱기자 woo@msnet.co.kr

롯데유통, 홈플러스, GS리테일 등 대형마트가 기업형 슈퍼마켓(SSM)을 내세워 골목상권과 전통시장을 무차별 잠식하면서 영세 상인들이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SSM이 기존 중·대형 슈퍼마켓을 인수해 우선 입점부터 하고 보자는 식의 '새벽 기습 입점'으로 일관하는 데다 이를 규제할 관련 법령까지 차일피일 미뤄지면서 SSM 입점을 막을 법적 장치도 없다.

상인들은 정부가 나서서 공룡 슈퍼마켓의 독식을 막아달라고 요청하고 있지만 정치권은 사실상 손을 놓고 있다.

8일 오전 8시 50분쯤 대구 수성구 지산동 목련시장 앞에서 홈플러스의 SSM '홈플러스 익스프레스' 개점이 시도되자 목련시장 상인회 소속 20여 명의 상인들이 물품 반입을 막으며 홈플러스 직원들과 대치했다. 이곳 상인들은 며칠 전부터 SSM 입점이 예상된다며 조를 짜 입점을 감시해왔다. 특히 이 일대는 최근 잇따라 3곳의 SSM이 입점해 주변 상인들의 긴장이 고조된 상태다. 올 3월 범물동 다인프라자 1층에 GS슈퍼가 들어섰고, 7월에는 지산동 지산4단지 지하 1층에 롯데슈퍼가 들어섰기 때문이다.

서강용 대구시 유통연합회 회장은 "국회에 계류 중인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안 처리가 지연되면서 SSM 측이 지역에 입점을 서두르고 있다"며 "국회가 법률 개정에 소홀해 우리가 직접 나설 수밖에 없었다"고 하소연했다.

법령 개정 전 입점부터 하고 보자는 SSM 측의 전략은 상인들의 감시가 소홀한 새벽 기습 개점으로 이어진다. 개점을 하고 나면 이들을 제재할 방법이 딱히 없기 때문이다. 현행 법령에 따르면 슈퍼마켓조합 등에서 SSM 입점 전 중소기업중앙회에 사업조정 신청을 하면 관할 지자체가 영업 일시정지 권고를 할 수 있지만 SSM 측이 이를 받아들여야 할 의무는 없다.

실제 올 5월 문을 연 GS슈퍼 상인점의 경우 인근 상인들의 반대로 설비와 물품을 제대로 갖추지 못한 채 영업했다. 그러나 일단 입점은 마친 상태. 이에 대해 대구시가 7월 '설비와 물품 등 부족'을 이유로 영업 일시정지 권고를 내자 GS슈퍼 측은 부당하다며 국민권익위원회에 행정심판을 청구했다. 대구시는 "영업 일시정지 권고는 제재를 가할 수 없는 권고여서 영업이 계속 이뤄지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대구시에 따르면 현재 대구에는 모두 34개의 SSM이 운영 중이다. SSM은 2007년부터 폭발적으로 증가해 롯데슈퍼가 15곳, 홈플러스 익스프레스 11곳, GS슈퍼가 8곳이다. 앞으로도 SSM이 300㎡ 이상의 기존 중·대형 슈퍼를 인수해 간판만 바꿔 달 경우 법적으로 제한할 방법은 없다. 상인들의 집단 실력 저지가 그치지 않는 이유다.

상인들의 저지로 입점이 무산되거나 잠정 연기되는 경우도 있다. 지난해 8월 남구 봉덕동 효성타운 인근에 들어설 예정이었던 홈플러스 익스프레스의 경우 상인들의 대규모 집회 등 집단 반발 이후 SSM 측이 올 5월 입점 의사를 철회했다. 동구 신서동 홈플러스 익스프레스의 경우 지난해 11월부터 상인들과 SSM 사이의 자율 조정이 진행중이다. 그러나 서로 입장이 달라 시설만 완비된 채 8개월간 개업을 못하고 있는 상태다.

상인들의 몸부림이 이어지고 있지만 관련 법률은 언제 통과될지 미지수다. 지난달 26일 국회 본회의에서 유통산업 관련법안 처리가 무산됐기 때문이다. 개정안에는 전통시장 반경 500m 이내에 SSM이 들어서는 것을 제한한다는 것이 주내용이다.

김태진기자 jin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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