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무조건 싼값에 납품" 압력…제품하자는 업체 책임으로

[두 얼굴의 대형마트] ①PB상품의 진실은

"싼게 비지떡?" 주요 대형마트들이 잇따라 PB상품 강화를 외치고 있는 가운데 품질관리에는 손을 놓고 있다는 지적이 계속되고 있다. 심지어는 중량을 줄이고, 주요 성분을 저가로 대체해 사실상 '저렴한 가격에 질 좋은 상품'을 판매한다는 본연의 취지와는 동떨어진 채 중소 납품업체들만 옥죄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매일신문 자료사진

지난달 22일 식품의약품안전청에 대한 국회 국정감사에서 보건복지위 소속 유재중 의원은 신세계 이마트, 홈플러스, 롯데마트 등 국내 주요 대형마트가 독자적으로 개발한 브랜드(PB:Private Brand) 제품 중 다수가 불량식품인 것으로 드러났다고 지적했다. 유 의원은 "식약청으로부터 제출받은 '대형마트 PB제품 식품관련 이물 신고, 수거부적합 현황'(2008~2010.6) 자료를 분석한 결과, PB제품의 이물 사고와 부적합수가 갈수록 증가세에 있다"고 지적했다.

이 자료에 따르면 이마트가 총 32건의 이물 신고가 있었으며 홈플러스와 롯데마트가 각각 19건으로 나타났다. 수거·검사 부적합 제품 역시 이마트와 롯데마트가 각각 8건 등 총 2천730㎏이 발견돼 이 중 61%인 1천694㎏이 회수 조치된 것으로 밝혀졌다.

◆PB제품 품질 추락=대형마트 PB제품의 품질 문제는 이번 국감에서 지적되기 전부터 줄기차게 제기돼 온 고질적 사안이었다. 실제로 지난 5월 식약청은 S사가 생산한 신세계 이마트의 PB제품인 '이마트 튀김가루'에 쥐의 사체로 보이는 이물질이 발견된 데 대해 잠정 판매중지 및 회수 명령을 내린 바 있다. 검찰은 7월 이 사건과 관련, 이 제품을 만든 S사에 무혐의 처분을 내리긴 했지만 신고자 김모 씨 역시 블랙컨슈머(보상금을 노린 악성 민원 제기자)가 아니라며 무혐의 처분했다. 결국 이 사건은 영구미제로 남았을 뿐 대형마트 PB제품 품질의 안전성을 보장해주지 못했다. 당시 식약청은 해당 이물과 비슷한 종류의 쥐 사체가 공장 주변에서 발견됐다며, 최종 공정에서 이물 혼입이 될 가능성을 제시했다. 또 공장 출입구를 통해 쥐가 드나들 여지가 있다며 시설 개수명령까지 내린 바 있다.

쥐 사건이 발생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이마트가 일본 소지쓰사로부터 수입·판매하는 '자숙 냉동가리비살'에서 대장균군이 기준(10/g) 대비 18배(180/g)나 많이 검출돼 회수 조치됐다. 또 4월에는 롯데쇼핑㈜이 자체 브랜드를 부착한 '와이즐렉 프라임 쥐치포'와 '이마트 쥐치포' 제품에서 기준치를 넘는 황색포도상구균이 검출돼 회수됐다. 지난해 7월에는 '이마트 맛강정 스낵'에서 금속성 이물질이 발견돼 긴급회수 조치가 내려지기도 했다.

유 의원은 "자사 브랜드 제품은 대형 유통업체가 중소 제조업체와 직접 계약을 맺어 생산하면서 유통마진을 줄이는 데 주력할 뿐 품질관리가 소홀하다"며 "식품당국은 이들 제품에 대한 상시적인 수거검사를 실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싼값에 질 좋은 제품? 중소업체 목죄기=PB제품이 급격히 늘어난 것은 포화상태에 다다른 대형마트 업계의 상황과 무관치 않다. '가격 인하'를 지상과제로 내걸고 10원 경쟁에 목을 매면서 애꿎은 중소업체들만 피해를 보고 있는 것.

대구소비자연맹 양순남 사무처장은 "같은 제품이라도 대형마트 브랜드만 갖다붙이면 더 저렴한 제품으로 변신한다"며 "분명 마트가 마진을 포기하지는 않을 것이고, 업체 역시 손해보고 장사를 할 수는 없는 입장에서 나머지 손실분은 PB제품이 아닌 일반 브랜드 제품을 사는 소비자들 부담 아니겠느냐"고 지적했다. 결국 대형마트로 인해 소비구조만 왜곡될 뿐, 정작 소비자들에게 그 비용이 고스란히 전가된다는 이야기다.

대형마트 브랜드만을 인쇄해두고 가격인하 압력만 행사할 뿐, 유통 대기업들은 PB제품 품질관리에는 손을 놓고 있는 실정이다. 문제가 터지면 하청업체의 잘못으로 떠넘겨 버리고 정작 자사브랜드 제품임을 강조했던 대형마트들은 책임을 회피하는 행태를 보여온 것. 양 사무처장은 "PB제품은 가격이 싸다는 점에서 분명 인기가 있지만 오히려 소비자들의 이의제기는 그 수가 적은 편"이라며 "제조업체의 문제로 떠넘기고 문제 해결을 요구하기 때문에 마트 제품이라는 것이 분명히 파악조차 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납품 과정에서 불공정 거래도 만연해 있다. 공정거래위원회가 대형 유통업체와 거래하는 1천233개 납품업체에 대한 서면 실태조사를 벌인 결과, 판촉행사 시 서면약정을 체결하지 않은 경우가 24.6%, 염가납품 및 사은품 제공 강요 행위가 있었다는 답변은 15.2%로 나타났다. 특히 판촉사원을 파견한 484개 업체 중 21%는 유통업체의 강요에 의해 파견했다고 답했다. 조사에서는 대형유통업체가 직접 관리하는 직원의 인건비를 납품업체에 전가한 사례도 있었다.

◆PB제품, 산업구조 왜곡 우려=현재 홈플러스, 이마트, 롯데마트 등 대형마트들은 2천 개 이상 많게는 1만 개에 가까운 PB제품을 보유하고 있으며 이러한 PB제품을 계속 늘려가겠다는 것이 대형마트들이 공식적으로 밝히는 계획이다. 이에 대해 PB제품을 생산하는 제조업체의 한 관계자는 "대형마트의 등장으로 유통업계의 힘이 너무 커졌다"며 "제조업체의 생산과 유통업계의 판매라는 공식이 무너지면서 유통업계만 남는 왜곡된 산업구조가 형성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여기에 최근 확대 시행된 '오픈 프라이스'(Open Price) 제도는 대형마트 업계에 힘을 더욱 실어주고 있다. 오픈 프라이스 제도는 권장소비자가격 표시를 금지하는 것. 기존에는 제조업체가 가격을 결정해 왔지만, 앞으로는 유통업체가 가격 결정권을 갖게 된 것이다. 구매력을 앞세운 대형 유통업체의 힘이 더욱 커졌고, 제조업체에 대한 가격인하 압력은 더욱 거세질 전망이다.

PB제품이 갈수록 늘어나면서 중소 제조업체들은 자생력을 잃고 대형 유통업체 의존성만 심화돼 가고 있다. 이런 현상은 결국 제조업체의 브랜드 경쟁력의 상실로 이어지면서 국가 산업 전반에 있어 큰 손실을 불러올 수밖에 없다. 유통업계 일각에서는 "PB제품은 왜곡된 산업구조의 전형적인 한 형태"라며 "대형 유통업체들은 제조업체의 생산구조를 좌우할 수 있다는 생각뿐 아니라 소비자들의 구매 행태 역시 조종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라고 밝혔다.

한국지방신문협회 공동취재단

한윤조기자 cgdream@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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