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이웃사랑] 식물인간 아들 돌보다 간암 걸린 이병철씨

교통사고로 식물인간이 된 아들을 돌보고 있는 이병철 씨. 자신의 몸에도 암세포가 자라고 있지만 아들이 병석에서 일어날 때까지 이 씨는 자신의 몸을 돌볼 겨를이 없다.
교통사고로 식물인간이 된 아들을 돌보고 있는 이병철 씨. 자신의 몸에도 암세포가 자라고 있지만 아들이 병석에서 일어날 때까지 이 씨는 자신의 몸을 돌볼 겨를이 없다.

손수건을 쥔 이병철(54) 씨는 아들의 입가에 흐르는 침을 닦았다. 올해 28살인 아들 창인 씨는 갓난아기처럼 아버지의 손에 모든 것을 의지했다. 창인 씨는 아기처럼 울 수도, 소리를 지를 수도 없다. 4년 전 교통사고를 당해 식물인간이 된 창인 씨. 그런 창인 씨 곁을 지키는 아버지는 아들 병 수발을 들다가 간암에 걸렸다. 그런데도 이 씨는 아들을 생각하며 웃는다.

"기적이 일어나기 때문에 기적이라는 단어가 생긴 거 아닙니까. 우리 아들은 꼭 일어날 겁니다."

? ◆불러도 대답 없는 아들

대구 동구 신천동 세동병원의 한 병실. 내 머리맡에는 아버지가 붙여놓은 사진 한 장이 있다. 유도복을 입고 있는 중학교 시절 내 모습. 아버지는 매일 그 사진을 바라보며 내 이름을 부른다. "창인아, 우리 창인아."

중학생 시절 내 꿈은 국가대표 유도선수가 돼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는 것이었다. 중학교 3학년 때 대구시장배 유도대회에 나가서 준우승을 한 날 아버지는 나를 끌어안고 눈물을 흘렸다. 나도 엉엉 울었다. 나를 버리고 떠난 엄마에게도 보란듯이 자랑하고 싶었다.

하지만 유도선수 생활은 길지 못했다. 날이 갈수록 체력이 떨어졌고 시합에서 지는 날도 늘어났다. 연습량과 실력이 비례하지 않았다. 결국 도복을 벗었다. 선수 생활을 접을 때 아버지는 "엄마가 있었으면 음식도 잘 챙겨줬을 텐데"라며 오히려 미안해했다. 유도보다 더 잘할 수 있는 일을 찾고 싶었다. 마음을 다시 잡은 곳은 연극판. 성인이 된 뒤 대구의 한 연극 극단에서 배우로 활동했다. 모 방송에 '대구의 연극 유망주'로 소개될 만큼 열심히 했다.

식물인간으로 누워 지낸 것은 예기치 못한 사고 때문이었다. 2007년 8월 16일 오전 3시 대구 남구 대구교대 삼거리에서 마주 오는 차를 피하려다 가로수를 들이받았고 내가 탄 차는 뒤집어졌다. 내 심장은 그곳에서 불타는 차와 함께 멎었다. 하지만 생명줄은 쉽게 끊어지는 게 아니었다. 그때 찾아간 대학병원의 의료진은 나무토막 같은 내 몸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들은 1시간 동안 심장 충격기로 내 가슴을 눌렀고 그렇게 다시 세상으로 돌아왔다. 지금 나는 생각할 수도, 느낄 수도 없는 식물인간이다.

? ◆아들은 나의 마지막 희망

그날 새벽에 받았던 전화 한 통. '아들이 죽었다'는 아들 친구의 목소리였다. 곧장 병원으로 향했다. 응급실에서 아들의 몸은 수십 번 튀어올랐다. 멈춰버린 심장을 되돌리려 전기 충격은 1시간가량 이어졌다. 1시간 동안 울며 기도했다. '신이 있다면 제발 창인이 목숨만 살려달라'고.

모두가 체념하고 있을 때 기적이 일어났다. 아들의 심장이 다시 뛰었다. 그러나 의료진은 "언제까지 살 수 있을지 모른다"고 했다. 살더라도 식물인간으로 살아야 한다고 했다.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기적이 또 일어날 것이라는 희망을 가졌다.

하나뿐인 아들에게 믿음직한 아버지가 되고 싶었다. 아들을 간병하는 게 아비로서의 마지막 책임이라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평일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무료 간병인이 아들을 보살피면 나머지 시간은 온전히 내 몫이다. 수시로 가래를 뽑고 몸을 뒤집어줘야 하기 때문에 병상을 떠날 수 없다. 그래서 해오던 장사도 접어야 했다. 나는 줄곧 길에서 장사를 해왔다. 4살 때부터 앓아온 소아마비로 다리를 절었기에 일반적인 직장에 다닐 수도 없었다. 군밤을 굽고, 풀빵과 과일을 팔았다. 그렇게 아들을 먹이고 입혔다.

아들이 입원하고 병수발을 들면서 장사를 그만둔 지도 4년째다. 기초생활수급자로 입원비 혜택은 받고 있지만 물리치료 등 여러 명목으로 부담하는 병원비는 45만원가량. 기초생활수급비 40만원으로는 무리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36㎡(10평 남짓)짜리 영구임대아파트 관리비와 방세가 밀린 지도 오래다.

몸에도 이상이 생겼다. 올해 4월 간암 선고를 받은 것이다. 행정기관과 주변의 도움으로 운좋게 수술은 받았다. 하지만 금세 암세포는 번져 나갔다. 이달 초에 몸이 아파 다시 병원을 찾았더니 임파선암이라고 했다.

?◆이들이 꼭 살아야 하는 이유

이 씨는 "꼭 살아야 한다"고 거듭 말했다. 자신의 수명을 연장하기 위해서가 아니라고 했다. 순전히 아들 창인 씨 때문이라고 했다. 이 씨는 최근 욕창이 나서 등이 썩어가는 아들의 몸을 본 뒤 더 부지런히 몸을 뒤집고 휠체어에 태우고 바깥 공기를 쏘이게 한다.

몇 년 전 존엄사와 안락사 논쟁이 사회에 한창 퍼질 때 이 씨도 생각을 많이 했다. 이 씨는 "하늘이 선택해서 이 땅에 태어난 것인데 어떻게 내 마음대로 포기하겠느냐"고 말하며 창인 씨의 따뜻한 손을 꼭 잡았다.

이 씨 주변에 "이제 그만 포기하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런 소리를 들을 때마다 이 씨는 이렇게 말한다. "이 녀석은 꼭 일어날 거요. 멈췄던 심장이 다시 뛰었던 그날처럼." 창인 씨는 이 씨를 살아가게 하는 유일한 희망이다.

황수영기자 swimming@msnet.co.kr

※이웃사랑 계좌는 '069-05-024143-008(대구은행), 700039-02-532604(우체국) ㈜매일신문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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