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안다. 내가 좋은 미술평론가나 영화평론가가 될 가능성은 크지 않다. 그런데도 또 다른 쪽으로 욕심이 있다. 잡지평론가가 되고 싶은 바람이 있다. 세상에 그런 평론가가 없다면 내가 1호겠지만 어딘가에 있을 것 같다. 이런저런 잡지를 구하는 여정 끝에 닿은 종착역은 헌 책방이다. 여기서 나는 잡지가 아니라도 온갖 책들을 둘러싼 별의별 일을 겪는다.
무엇보다 중고 서점을 통해 얻는 가장 큰 기쁨은 구하기 힘든 책을 찾았을 때의 반가움일 거다. 몇 해 전, 리안 갤러리가 찍어낸 알렉스 카츠의 도록을 발견했을 때도 그랬다. 오천 원을 주고 샀을 거다. 그때나 지금이나 나는 다른 갤러리로부터 귀한 책자를 선물 받을 위치에 있지 않다. 그렇기에, 그토록 탐나는 도록을 갖다 판 매정한 사람이 누군지 궁금했다.
이따금 실망도 한다. 아무리 좋은 책이라도 학번과 이름을 책 모서리에 큼지막하게 써 놓았으면 사고 싶은 마음이 사라진다. 내가 가지고 있었지만, 더글라스 호프스태터가 쓴 '괴델 에셔 바흐'에 그런 식의 표식이 있었다. 과연 이 매혹적인 책을 수학과에서, 미술학과에서, 음악학과에서, 아니면 어떤 수업에서 교재로 썼을까, 얼굴 모르는 강사가 존경스러웠다.
내가 쓴 책을 발견했을 때에도 기분이 묘하다. 그런 책들이 헌 책방에 꽂혀 있을 때(그것도 항상 구석에 박혀 있다)의 심정은 마치 내가 공들여 키운 자식이 왕따 취급받는 걸 보는 것과 같을까. 물론 책이라는 문화 상품은 공공재로서의 특성을 가지기에 어느 한 사람의 뱃속으로 들어가면 끝인 떡볶이와 달리, 여러 사람이 반복해서 그 효용가치를 소비할 수 있다. 그렇지만 말이다. '윤규홍 글은 정말 재밌어. 나 혼자 읽기엔 아까운데 딴 사람도 읽을 기회를 줘야지.' 음, 설마….
한심함의 결정판은 가지고 있는 책을 또 사는 경우다. 서재의 책이 만 권을 넘어가니 감당이 되지 않는 부분이 있다. 그렇지만 이건 터무니없는 책 욕심에, 처음 샀던 책을 제대로 읽지 않았다는 잘못이 분명하다. 내 서재 어딘가에 뤼시앙 골드만의 '루카치와 하이데거' 두 권이 사이좋게 꽂혀있다. 이런 한심함은 비열함까지 불러왔다. 내게 있는지 없는지 알쏭달쏭한 책이 있을 땐 남들 손이 닿지 않는 곳에 보물 상자를 숨기듯 슬쩍 끼워둔다. 지면을 빌려, 다시는 안 그러겠다고 공언한다.
헌 책을 접할 때 겪는 일 가운데 마지막 하나는 좀 아련하다. 없어진 옛 서점의 꼬리표가 맨 뒷장에 붙어있는 경우다. 대구서적, 신우서점, 분도서원, 마가책방, 하늘북, 지금은 사라졌지만 대구의 지식인들에게는 자긍심 어린 고유명사다. 책이란 물건은 글자와 문장의 집합체 그 이상의 의미를 품고 있다.
문화평론가 윤규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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