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인과 한국인 사이에는 친해지려고 한 행동이 오해를 부르는 경우가 적지 않다. 첫 만남에서 한국인은 서로를 알기 위해 적극적으로 정보를 교환한다. 일본인은 상대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기 위해 사생활에 관한 이야기는 피한다. 한국인은 정말 친한 사람에게는 마음을 완전히 열지만, 일본인의 마음속에는 아무리 친해도 타인에게 침범받고 싶지 않은 자신만의 영역이 있다. 서먹서먹한 일본인과 무례한 한국인은 자신과 타인의 경계를 긋는 방법이 다르기 때문에 친해지면서도 아귀가 맞지 않는 부분이 있다.
한국인 친구와 처음 식사를 할 때였다. 한국인 친구가 두 개의 요리를 시켜서 "같이 먹자"고 하는 순간 나는 멈칫했다. 일본에서는 연인이나 친구 사이에도 음식은 각기 주문을 하고, 상대방에게 "한입 먹어도 돼?"라고 양해를 구한 다음 상대방 접시의 요리를 먹는다. 나의 할머니는 접시에 담긴 요리를 자신의 젓가락으로 집을 때도 타액이 묻지 않게 하기 위해 젓가락의 반대쪽을 이용한다. 나도 그렇게 교육을 받아왔다. 나는 무의식적으로 내 젓가락이 타인의 입으로 들어가는 음식물에 닿으면 안 된다는 것이 몸에 배어있다. 다른 음식에 젓가락이 닿지 않도록 신중을 기하고 있는데, 한국인 친구는 대담하게 "이쪽이 맛있으니까 먹어"라며 자기 젓가락으로 한 움큼 음식을 나눠 주었다. 한 접시 안에 존재하고 있던 나와 그의 경계가 갑자기 사라져 버렸다. 같이 먹는 것으로 상대방과의 거리가 가까워진 느낌이 들었다. 한국식 경계 허물기이다.
한국인은 친해지면, 오빠, 형, 이모 등 가공의 가족관계를 맺는다. 한국인이 자신과 친한 사람과 경계를 확실히 하지 않는 것은, 한국인의 인간관계에는 근본적으로 가족주의가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한국인의 인간관계는 가족관계의 확대판이다. 그렇기 때문에 친한 상대와는 영역을 나눌 필요가 없다. 한편, 일본인은 가족과 가족 이외의 사람을 대하는 태도가 확실히 다르다. 가족에게는 자기의 본심을 드러내고 뭐든 말하지만 그 외의 상대에게는 겉치레가 필요하다. 바깥 세계에서 가면을 쓰고 겉치레를 잘하는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한 스트레스는 가정에서 자아를 폭발시키는 가정폭력(DV:Do mestic Violence)이나 데이트 폭력을 낳는다. 가정과 외부에서의 인간관계가 크게 다르기 때문에 일본인은 겉과 속이 다른 두 개의 얼굴을 가진 이중 인간처럼 보이기도 한다.
한국에서 택시를 탔을 때 앞 유리창 앞에 휴대전화가 5개 놓여 있었다. 운전 중에도 걸려오는 전화 응답으로 기사는 꽤나 바빠 보였다. 일본인 이상으로 한국인에게도 휴대전화는 없어서는 안 될 물건인 듯하다. 언뜻 보기에는 근대적 생활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지만 밤과 낮, 공과 사를 따지지 않고 하루 종일 울려 대는 작은 기계에 구속되어 있는 것 같았다. 용건이 없어도 해야 하는 안부전화도 휴대전화가 없던 시대에는 관계유지를 위한 의무가 아니었다. 언제나 누군가와 연결되어 있지 않으면 불안을 느끼는 한국인을 관계중독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휴대전화나 문자에 의존하는 사람은 자신과 타인 사이에 경계가 생기는 것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이다.
경계는 인간 사이에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최근, 일본과 중국, 일본과 러시아는 센카쿠열도와 북방영토문제로 심각한 상황을 맞았으며, 한국과 북한도 군사경계선을 사이에 두고 긴장이 이어지고 있다. 원래 하나였던 영토에 선을 그어 무리하게 나눈 탓에 일어나는 분쟁이다. 국경이라는 경계가 지뢰가 되어 버렸다. 그것을 밟으면 세계를 뒤흔들 만한 폭발이 일어날 수도 있다.
경계의 위치를 잘못 알거나 경계의 존재 자체를 모르는 사람은 언젠가 지뢰를 밟는 잘못을 범할 우려가 있다. 인간의 경우, 서로 다른 사람이 하나가 되려고 서로의 경계를 허물어 마찰이 생긴다. 가치관이나 환경이 다른 곳에서 성장한 사람뿐만 아니라 가족이나 친한 사람 사이에도 경계를 어디에 두어야 기분 좋게 지낼 수 있을지를 탐색할 필요가 있다. 자신과 타인의 경계를 완전히 없애는 것은 불가능하며, 그럴 필요도 없다. 경계의 저편에 있는 상대를 존중하면서 공존해야 한다.
요코아야 유카(일본 도호쿠대학 박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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