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움이 가장 힘들었어요. 사람 냄새가 그리웠거든요. 컴퓨터를 통해 남을 도울 수 있어 기쁘고, 인터넷을 통해 나를 찾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이 뿌듯합니다. 내가 존재한다는 증거니까요."
오영택(53·대구시 달서구 성당동) 씨는 경추를 다쳐 혼자 힘으로는 꼼짝할 수 없는 중증 장애인이다. 올해로 침상 생활 36년째. 그의 옆에는 컴퓨터와 마이크가 늘 한 몸처럼 놓여 있다. 그는 손가락 끝 남은 감각으로 키보드를 누르며 인터넷 음악방송을 운영하고 있는 인기 DJ이다.
하지만 오 씨가 네티즌들에게 알려진 더 큰 이유는 따로 있다. 그가 음악방송에 필요한 세팅과 PC시스템의 문제를 원격으로 관리하고 해결해주는 기술자이기 때문이다. 방송인생 14년으로 접어든 지금, 시청자들의 방송참여는 물론 원격조정 요청도 끊이지 않아 요즘은 우리나라는 물론 미국, 일본 등 해외에서도 그를 찾는 이가 많다.
음악방송은 대부분 라이브로 진행되기 때문에 갑자기 음질 등 세팅에 문제가 생기면 운영자들은 당황하기 마련. 이럴 때 원격으로 수리를 해주는 해결사가 바로 오 씨이다.
오 씨가 진행하는 'TV소리(http://tvsori.com) 음악방'에는 동시 접속자가 50, 60 명에 달한다. 40, 50대가 대부분으로 트로트와 발라드 등 다양한 음악을 부르고 함께 듣는다. 오 씨는 "온라인의 특성상 채팅과 목소리로 회원들과 만나기 때문에 음악으로 친구가 될 수 있어 좋다"고 말했다.
그의 노래실력도 수준급이다. 제1회 전국장애인가요제에서 본선 진출을 한 경험도 있다. 한 때 그의 목소리에 반해 병상에 있는 그와 살겠다며 찾아 온 여성들도 있을 정도라고 한다.
오 씨의 운명을 바꾼 것은 1975년 여름에 당한 사고 때문이다. 군 입대를 앞둔 어느 날 스카이다이빙을 하다 경추를 크게 다쳤다. 19세 때였다. 3년 간을 병원에서 보냈으나 차도는 없고 침대와 휠체어에 의존해야만 했다. 그는 절망했다. 술로 세월을 보냈고 주변사람들을 힘들게 하면서 15년을 허송했다.
병원비로 가세가 기울자 어느 날 정신이 번쩍 들었다. 돈을 벌어야겠다고 결심했다. 3년 간 명리학을 공부해 철학관을 차렸다. 누운 채 손님을 맞았고 자료정리 등은 컴퓨터로 해결했다.
그러다 우연한 기회에 구청의 장애인 정보화 파견 도우미에게서 컴퓨터 시스템에 대해 배울 수 있었다. 자신감이 생긴 그는 철학관을 접고 본격적으로 PC에 빠져 들었고, 꾸준히 몰입한 결과 지금의 음악방송 전문가로 거듭났다.
그는 "음악방송은 주로 저녁에 하지만 원격 조정은 온 종일 하는 편이에요. 밥을 먹거나 잠을 자다가도 요청이 들어오면 도움을 줘야 하니까요. PC가 말썽을 부리면 얼마나 답답하겠어요. 사실 몸이 아프고 많이 힘들지만 고맙다는 말에 기분도 좋아지고 보람이 생겨 계속하게 되네요" 라고 웃었다.
그의 생활은 힘겹다. 매월 국가보조금 58만원을 받지만 월세 33만원을 내고 각종 세금을 떼면 남는 게 없는 셈이다. 원격 수리는 서비스일 뿐이다. 간혹 고맙다며 소액을 보내주거나 농산물을 보내주는 사람이 있을 정도다. 물리치료를 제 때 받지 못해 3년 전부터는 몸도 더 굳어버려 휠체어조차 타지 못하고 누워 있어야 한다. 욕창까지 생겨 고생하고 있다. 하지만 그의 얼굴은 환하다. "살아있는 동안 이 일을 계속 할 겁니다. 사람들이 저를 찾지 않았다면 내 삶이 얼마나 삭막하고 우울했을지…몸은 힘들어도 즐겁고 행복합니다."
글·사진 최영화 시민기자 chyoha618@hanmail.net
멘토: 우문기기자pody2@msnet.co.kr
댓글 많은 뉴스
문재인 "정치탄압"…뇌물죄 수사검사 공수처에 고발
이준석, 전장연 성당 시위에 "사회적 약자 프레임 악용한 집단 이기주의"
[전문] 한덕수, 대선 출마 "임기 3년으로 단축…개헌 완료 후 퇴임"
대법, 이재명 '선거법 위반' 파기환송…"골프발언, 허위사실공표"
민주당 "李 유죄 판단 대법관 10명 탄핵하자"…국힘 "이성 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