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성병휘의 교열 斷想] 순종의 삶

"사랑은 사랑이 계시될 때 알 수 있고 사랑이 계시될 때 사랑은 인간에게 그의 인생의 의미를 분명하게 밝혀준다. 사랑은 아름다움과 진리 안에서 드러난다. 인간 사랑에 대해 흥미를 갖는 것에는 사랑을 '아름다운' 것으로 보는 관심이 들어 있다. 따라서 사랑에는 사랑의 '진리'와 그 '선' 모두를 참을성 있게 추구하는 것이 포함된다."(가톨릭 제2차 바티칸공의회 문헌 '기쁨과 희망' 중에서)

부부 사이에 주고받는 '고맙다' '미안하다' '사랑한다'는 표현이 암 예방과 노화 방지에 효과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세대 사회복지학과 김재엽 교수는 '고맙습니다' '미안합니다' '사랑합니다'라는 표현을 자주 써서 가족 관계를 개선하는 프로그램을 개발해 치료 효과를 검증했다고 한다. 프로그램에 참여한 그룹에서 우울 증상이 개선됐으며 스트레스 대처 능력과 관련된 지표인 심박동 변이(심장 박동의 규칙성 정도)도 약 15% 향상됐다고 했다.

모든 생명은 참으로 살려면 제대로 쉬어야 한다. 숨을 쉰다고 할 때의 쉼은 숨을 죽이는 것이 아니라, 숨을 살리는 것이다. 사람도, 모든 생물도, 땅도, 장기(臟器)도 쉬어야 한다. 쉼은 틈, 여유, 여백, 비움이다. 빈틈이 없는 사람은 친구도 없고 비우지 않으면 욕심에서 해방될 수도 없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울 때가 있고 웃을 때가 있으며, 슬퍼할 때가 있고 기뻐 뛸 때가 있다. 찾을 때가 있고 잃을 때가 있으며, 간직할 때가 있고 던져 버릴 때가 있다. 또 침묵할 때가 있고 말할 때가 있으며, 사랑할 때가 있고 미워할 때가 있다.

이처럼 세상의 일에는 순리라는 게 있다. 순리(順理)는 도리나 이치에 순종함을 뜻한다. '순종'(順從)은 순순히 따르는 것을 말한다. "아버지가 근심 있어 뵈면 명랑하게 설치던 유치한 반항도 자연스러운 순종으로 변해 갔다."로 쓰인다.

'순종'과 비슷한 의미로 '순명'이 있다. '순명'(順命)은 명령에 복종하다, 천명에 순종하다라는 뜻으로 "옮기는 발자국마다 피가 고여 엉겼지만 단연코 피하려 하지 않는 이 뜨거운 마음은 진정 소명에의 순명이었다."로 쓰인다.

'순종'은 자발적이고 주체적이어서 좇아서 따르는 것이고, '순명'은 타율적이고 강제적인 측면이 강해 명령을 따르는 것으로 이해하면 될 것이다.

보름여 남은 2010년을 보내며 부부 사이뿐만 아니라 내 주변 사람에게도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를 꼭 해보자. 누군가의 요청에 의해 순명하기보다 순종하며 서로 사랑스런 눈길을 보내는 것도 한 해가 저물어가는 이 시점에서 의미가 있지 않을까. 지금은 미워할 때가 아니다.

교정부장 sbh126@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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