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효부상 받은 대구 베트남 며느리 레티 훼 씨

"한국인 엄마로 당당히 살아요"

16일 가정복지회 주관
16일 가정복지회 주관 '손순자 효부상'을 수상한 레티 훼 씨가 시상식장에서 남편으로부터 축하의 키스를 받고 있다. 우태욱기자 woo@msnet.co.kr

베트남 최고 명문대를 나온 여성이 '대한민국의 효부'가 됐다.

화제의 주인공은 레티 훼(33·여·대구시 북구 산격동) 씨. 그녀는 16일 가정복지회가 주관하는 '손순자 효부상'을 받았다. 시부모를 잘 섬기는 대한민국 '효부'들에게 수여되는 상이다.

그녀는 지난 2007년 치매에 걸린 시어머니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도 남편 권동희(47) 씨를 따라 한국에 시집왔다. 그녀는 베트남에서 '엘리트'로 통하는 여성이었다. 베트남 최고 대학인 하노이대학교 영어영문학과 출신에, 모교에서 영어 강사로 활동했다.

대학시절부터 그녀는 한국에 관심이 많았다. 한국어도 미리 배웠다. 한국인 유학생에게 '영어를 가르쳐 줄 테니 한국어를 가르쳐 달라'는 조건을 걸고 일대일 과외를 받았다. 한국 문화는 드라마로 배웠다. 2004년 드라마 '풀 하우스'를 보며 한국 남녀의 사랑 이야기에 매혹됐다.

한국을 접하고 한국말을 익힐 무렵 2006년 가을, 그녀에게 사랑이 찾아왔다. 아는 사람 소개로 만난 남자는 그녀보다 14살이 많은 한국인이었다. 어설픈 한국어로 대화를 몇번 나눴을 뿐인데 마음이 통했다.

같은 불교 신자라는 것도 마음에 들었다. 한국 식당에서 주방장으로 일했던 남편 권 씨는 베트남행 비행기에 6번 몸을 실었다. 레티 씨의 마음을 얻기 위해서였다. 반대는 레티 씨 가족 쪽에서 터져나왔다.

"3남4녀 중 막내로 자라 베트남 최고 명문대를 졸업한 우리 딸을 어떻게 14살 많은 외국인에게 줄 수 있느냐." 부모는 완강했지만 결혼하고 싶다는 딸에게 결국 백기를 들었다. 2007년 1월 27일 레티 씨 부부는 베트남에서 결혼식을 올리고 한국으로 옮겨왔다.

한국 사회에서 베트남 여성의 고학력은 큰 도움이 되지 못했다. '못사는 나라에서 시집온 결혼 이민자'라는 편견이 그녀를 짓눌렀다. 하지만 부부는 사람들의 불편한 시선 앞에서 태연해지는 법을 배웠다.

"다른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해도 상관없어요. 우리도 평범한 '한국 부부'일 뿐이니까요." 레티 씨는 식당을 개업한 남편을 대신해 가사에 전념했다. 치매를 앓는 시어머니의 대소변을 받아냈고, 남편에게 배운 솜씨로 한국 음식을 만들어 시어머니께 대접했다.

"시어머님은 이가 없어서 말랑말랑한 음식을 해 드려야 해요. 떡국과 잡채는 제가 제일 잘 만드는 한식이에요." 이렇게 단련한 음식 솜씨로 올해 8월 대구의 한 대학에서 열린 '다문화가족 요리경연대회'에서 우수상을 받기도 했다.

레티 씨는 평범한 한국 여성이 되길 원했다. 주변에 있는 외국인 여성들이 수시로 그에게 전화를 할 만큼 한국식 제사를 지내는 데 베테랑이 됐다. 2008년 예쁜 딸(규리·3)도 낳아 어엿한 엄마가 됐다. 한국에 온 지 4년 만에 귀화해 지금은 주민등록증이 나오기만을 기다리는 중이다. 진짜 한국인이 된 것이다.

레티 씨는 한국 사회에서 이루고 싶은 꿈이 있다. "한국에 시집 온 베트남 여성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쳐 주고 싶어요. '결혼이민자'가 아닌 '한국인 엄마'로 살 수 있도록 말이죠."

황수영기자 swimmin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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