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탄절을 맞아 경산의 한 사찰에서 3대 종교인들이 모인다. 단순히 종교화합 차원이 아니다. 평소 소외된 경산의 다문화가족들과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격려의 시간을 갖기 위해서다. 대한불교조계종 제10교구 경산 안흥사는 25일 사찰 안에서 산자연학교 교장 정홍규 신부와 복민교회 조규천 목사를 초청해 다문화가족들과 만남의 자리를 갖는다고 밝혔다.
안흥사 대웅 스님은 "당초 법당에서 미사와 예배를 함께 진행하려고 했는데 논란의 소지가 있을 것 같아 다문화가족들을 격려하는 시간을 갖기로 했다"고 말했다.
다문화가족 100만 명 시대다. 다문화가족에 대한 사회적 관심은 해가 다르게 높아지고 있지만 여전히 빈약하다. 이런 가운데 종교계의 다문화가족에 대한 관심은 어느 곳 못지 않게 뜨겁다. 특히 최근 불교계에서도 다문화가족에 대한 지원에 정성을 쏟고 있다. 지역에서도 다문화가족에 남다른 사랑을 실천하는 스님들이 적잖다. 안흥사 대웅 스님과 구미 대둔사 진오 스님이 대표적이다.
안흥사에서의 이번 행사는 다문화가족의 요청에 의해 이뤄졌다. 매주 일요일마다 경산의 다문화가족 70명가량이 이곳 사찰을 찾는데 그들 대부분의 종교가 천주교나 기독교다. 그렇다 보니 성탄절에 사찰에서 미사와 예배를 하도록 원했던 것이다. 그들에게 이곳 사찰은 종교 장소가 아닌 쉼터이기 때문이다. 대웅 스님은 "다문화가족들에게 포교 활동은 전혀 하지 않는다"며 "그들의 고민거리를 들어주거나 법률이나 진료, 2세 교육 등 생활 자문을 주로 한다"고 말했다.
대웅 스님은 오래전부터 다문화가족에 대해 '자비'를 실천하고 있다. 스님이 다문화가족에 눈을 돌린 것은 2002년 일본에 갔을 때였다. 당시 재일교포 할머니가 안내를 맡았는데 그녀의 입을 통해 재일교포의 힘든 삶을 전해들었다. 스님은 "재일교포가 일본에 7, 8만 명 정도가 있는데 일본에 귀화하지 않으면 교육을 받을 수 없어 열악한 환경에서 살고 있다"며 "일본에 가면 나 또한 이방인인데 국내 다문화가족도 그렇게 느낄 거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후 군종장교로서 전국을 돌아다니면서도 다문화가족에 대한 관심을 놓지 않았다.
스님은 앞으로 다문화가족을 대상으로 교육 부문에 총력을 기울일 생각이다. 2세들의 경우 자신이 한국 사람이라는 정체성이 약해 매사 자신감이 떨어지기 때문에 교육을 통해 아이들에게 정체성과 자신감을 갖도록 하겠다는 것. 자투리 공간을 이용해 2세들을 위한 한글교실이나 한문서당 등을 운영할 계획이다.
진오 스님도 다문화가족들에게는 '사랑의 전도사'다. 스님은 현재 구미에 외국노동자상담센터 '마하붓다센터'와 폭력 피해를 당한 이주 여성들의 쉼터 역할을 하는 '죽향쉼터' 등을 운영하면서 외국 노동자와 결혼 이주여성들 돕기에 전념하고 있다. 스님은 "5년 전 한 이주여성 노동자가 임신하면서 비참한 생활을 하는 모습을 보고 여성 노동자들을 보호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이주 여성들은 갈 데가 없어 주위로부터 폭력이 누적된다"고 말했다. 올 5월에는 이주여성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하기 위해 각국의 음식을 한국인의 입맛에 맞게 만들어 판매할 수 있는 아시안푸드전문점 '다-존'(多-zone)을 열기도 했다.
전창훈기자 apolonj@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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