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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산책] 매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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꾸며낸 품격이 아니라 진정 고결한 품성을 지닌 이들은 나를 매혹(魅惑)시킨다. 세속에 함빡 발 담고 있어도 마치 묵언서원(默言誓願)이라도 한 수도사처럼 깊고 서늘한 시선으로 매사와 사물을 대하는 사람, 경건한 자세로 경전을 베껴 썼다는 고대의 필경사(筆耕士)처럼 자신의 일에 묵묵히 오래 매진하는 사람은 또 나를 매혹시킨다.

반면 세간에 떠도는 우스개처럼 우아한 자태를 유지하기 위해 물밑 작업을 심하게 해대거나, 우화(寓話) 속 까마귀처럼 남의 깃털로 자신을 치장해대는 사람들은 나를 서글프게 한다.

불혹(不惑)을 넘길 나이가 된 지금도 위선(僞善)을 묵시(默視)해야 할 때는 괴롭고, 위악(僞惡)을 대해야 할 때는 스스로가 비루하고 불온해지는 느낌이 생기는 까닭이다.

아니다. 어쩌면 이 가름 또한 지극히 사변적이며 의미 생성의 가변성을 무시한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문득 든다. 불완전한 기시감과 직관만으로 인식해 낸 것이 모두 옳다고 주장할 순 없는 것이다.

예전에 장 르노가 주연한 '레옹'의 한 장면에 매혹 당해 수없이 영화를 되돌려 본 후에 겪은 갈등(葛藤)처럼 말이다.

영화에서 냉혹한 킬러 레옹이 누런 봉투에 둘둘 만 관엽 화분을 안고 휘적휘적 내리막길을 걸어오던 장면 때문에 나는 봄이면 가끔 화분을 사서 종이봉투에 담아 들고 서늘한 봄길을 걷거나, 킬러에게 전혀 어울리지 않던 화분에 대해 상상하곤 했다. 슬프게 헤어진 애인과의 추억이 깃든 것일까. 돌아가신 어머니의 정원에서 몰래 들고 온 것일까.

그러다가 그 영화가 윤리적으로 지탄받는 로리타 콤플렉스에 바탕한 것이고, 킬러라는 주인공의 직업 또한 반사회성, 범죄성을 뛰어넘는 악마적이라는 데 생각이 미쳐 당혹스러워하며 그 매혹된 마음을 밀어내 버리곤 했다. 그러다가 곧 '영화니까' 또 매혹을 들어앉혔다가 밀어내고 들어앉히길 계속했다. 말 그대로 칡과 등나무가 일으키는 불화였다.

그 갈등은 결국 내게 '죄책감이 깃든 매혹'이란 살짝 느끼한 문구를 선사했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 위선, 위악이라는 말에 실린 그것과 별반 다르지 않은 것 같기도 하다.

아, 명쾌하게 결론 나지 않는 내 짧은 인식의 한계! 하지만 여전히 나는 물밑 작업과 치장을 심하게 하는 사람보다 고결한 품성을 지닌 경건한 사람이 좋으니, 매혹이란 말에 실린 이 인식의 끈을 새로 좇으며 설 연휴를 치열하게 보내 볼 생각이다.

박미영 시인'작가콜로퀴엄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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