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경제칼럼] 950원의 경제학

설을 앞두고 높은 물가로 시민들의 시름이 깊어만 간다. 이런 시절에 시내버스 요금을 올린다는 이야기가 연초부터 계속 나오고 있다. 시내버스 요금 인상은 단순히 생각하면 이용자 혹은 수혜자 부담 원칙에 따라 정당해 보인다. 매년 시내버스 적자로 인해 대구시에서 지원금이 투여되고 있고 그 증가분도 상당하다. 올해는 시내버스 적자로 인한 대구시의 지원금이 1천억원가량 예상된다고 한다. 시민 1인당 약 4만원을 부담하는 셈이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시내버스 요금을 15% 정도 올려 연간 300억원가량의 지원금을 줄이겠다는 계산이다.

하지만 시내버스 요금을 인상해서 이용자 부담을 합리적인 수준으로 늘리고 지방정부의 지원금을 줄이겠다는 논리는 틀렸다. 이렇게 문제를 풀려면 대구시는 대중교통 정책의 실패를 인정하고 대중교통 포기선언을 한 후 사회적 합의를 구하는 절차를 거쳐야 한다. 대중교통 포기선언을 하면 도시철도 3호선 공사도 당연히 중지되어야 한다. 수조원의 예산을 들여 도시철도를 건설하는 것은 대중교통 이용을 활성화하기 위해서이기 때문이다.

보다 자세히 이야기하면 다음의 이유들로 요금 인상 정책은 틀렸다. 우선 대구시가 보도자료를 통해 밝힌 시내버스 재정적자의 가장 큰 원인은 무료 환승 체계 때문이다. 대구시는 이를 두고 교통복지라고 부르며 많은 시민들이 혜택을 누리고 있다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무료 환승 체계는 시혜성의 교통복지 정책이 아니라 시내버스나 도시철도와 같은 대중교통 이용을 활성화하기 위한 정책수단의 하나로 활용한 것이다. 무료 환승 정책으로 예상한 만큼 대중교통 수요가 늘어나지 않아 시내버스 이용이 활성화되지 못했다. 여기에 무료 환승이라는 정책 계획과 실행 과정에서 예상하지 못한 규모의 비용 부담이 발생했다. 발생한 비용을 보전하기 위한 방안도 마련하지 못한 채 매년 금액이 늘어만 간다.

휴대폰 회사로 비유하면 고객을 늘리기 위해 문자 무료 서비스를 제공했는데 신규고객은 없고 기존 고객의 문자 사용량이 너무 많아져서 회사의 적자가 늘어나자 기존 이용자들에게 통화료를 올리겠다고 나서는 꼴이다. 아마 휴대폰 회사라면 이런 계획을 세운 담당자나 담당부서는 계획을 집행조차 못했거나 집행했더라도 대단한 문책을 받았을 것이다.

그러니까 문제의 핵심은 무료 환승이라는 당근 정도로는 기존의 자가용 이용자들이 시내버스로 돌아서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러면 자가용 이용자들이 혹할 당근을 더 주거나 자가용 이용이 불편하도록 채찍질하는 것이 해결책이다. 요금을 올리겠다는 발상은 채찍도 당근도 아니다. 이도 저도 아닌 땜질 처방은 예산은 예산대로 들어가면서 정책으로서의 효과는 볼 수 없다.

그러면 대중교통 이용도 활성화하고 지원금도 줄일 수 있는 해법은 없을까? 우선 당근정책을 펼 예산이 없으니 채찍 정책밖에는 쓸 수 없겠다. 채찍 정책을 통해 재원을 마련할 수 있다. 가장 손쉬운 예를 들어 보자! 시민들에게 시내버스 이용에서 가장 불편한 점을 물으면 불법주정차 문제를 든다. 아무리 단속을 해도 버스전용차로를 비롯해 버스정류장의 레드존까지 불법주정차 차량이 장악하고 있다. 이들만 제대로 단속해도 벌금으로 엄청난 재원을 마련할 수 있다.(하루 1천 대 정도 단속하면 연간 250억원 정도의 재원을 마련할 수도 있다.) 시내버스 재정적자를 착한 시내버스 이용자가 아니라 불법 자가용 이용자가 부담하게 하는 방법이다.

이렇게 못하고 버스 요금 인상을 고집한다면 대구시는 요금 인상으로 시내버스 지원금 300억원을 줄일 수 있다는 약속에 대해 책임져야 한다. 정책에 대해 분명한 책임이 필요하다. 그런데 대구시는 과연 300억원의 예산을 절감할 수 있을까? 950원과 1천100원은 심리적으로 상당한 거리가 있다. 선의의 시내버스 이용자를 자가용으로 돌아서게 할 수 있는 금액이다. 사람들이 9천900원의 가격에 혹하는 이유가 그것이다. 이미 대구시는 하차 후 30분 이내 무료 환승 체계로 변경하면서 단거리 이용자보다 장거리 이용자에게 혜택을 주는 정책을 선택했다. 하지만 시내버스는 장거리 이용에는 매력이 없다. 이미 시내버스 주이용객들의 마음을 반쯤 뺏어갔다. 여기에 가격 정책까지 가세한다면 시내버스 이용 승객은 줄어들 것이라고 장담한다. 그래서 대구시가 정히 시내버스 요금을 올리겠다면 300억원의 지원금을 줄이겠다는 약속을 이행하는 선에서 인정할 수 있다. 만일 실패한다면 제대로 책임져야 할 것이다. 시민들이 지켜보고 있다.

안재홍 녹색소비자연대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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