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사람과 맺지 못해 가슴 아린 사람, 사업하다 망해서 죽고 싶은 사람, 직장에서 진급을 하지 못해 우울한 사람, 아내에게 괄시받고 살아 슬픈 사람, 계 하다 깨어져 화병 난 사람 등등으로 불행한 사람들은 나가사키를 한번 가보시라. 일본 규슈 섬에 있는 자그마한 항구도시 말이다. 잘 모르는 사람은 2차대전 말기에 미국 원자탄 맞아 박살난 그 도시라면 알겠지.
나가사키는 일본이 서양 문물을 받아들이던 입구였다. 개항 전부터 배도 많이 만들고 바다 물고기도 많이 잡아 문명과 부를 한꺼번에 거머쥐고 살던 도시였다. 그 덕에 태평양전쟁 전에는 동서 문화가 섞여 동화처럼 아름답던 도시였다.
그러나 어느 날 갑자기 불행한 도시가 되고 말았다. 아비규환의 지옥이 됐다. 1945년 8월 9일 오전 11시 2분 미국 비행기 B-29에서 떨어뜨린 원자탄 한 방에 3만5천 명(혹은 7만 명)이 갑자기 죽었다. 3천900℃의 열과 시속 1천㎞의 후폭풍에 사막과 같은 폐허가 됐다. 후에도 추가로 8만 명이 더 죽었다. 겨우 살아남은 사람도 많은 이들이 화상을 입고 온몸이 부스러져 장애인이 됐다. 지금도 수업받던 의과대학생들이 그림자처럼 땅바닥에 물들어져 죽은 자리도 보존돼 있다.
그 비극의 나가사키가 지금은 천국으로 변했다. 새벽 바닷가에서 산책을 하노라면 맑은 바다는 기름 한 방울도 떠 있지 않고 향긋한 내음을 풍겨 기분이 상쾌해진다. 커다란 조선소가 있고 수많은 여객선이 드나드는 항구임에도 청정 해역이다. 낮에 그림처럼 아름다운 '글로버 공원' 언덕에 앉아서 시내를 내려다보면 마치 한 조각 꿈의 세계를 들여다보는 기분이다. 외래문화가 처음 들어온 곳답게 나가사키는 일본 최초가 많다. 짬뽕, 카스텔라 등이 그곳에서 시작됐다. 오페라 나비부인의 무대였던 덕에 도시 한쪽에는 푸치니와 그 오페라 주인공들이 도들새김된 긴 동판이 있어 진한 서양 예술의 향기를 느낄 수 있다. 밤에는 잠을 잘 수가 없다. 이 산 저 산에 빼곡히 박힌 보석 같은 수많은 항구의 등불들이 찬란한 빛을 내고 있기 때문이다.
나가사키에서 '미국의 만행'에 대해 데모했다는 소리를 들어본 일이 없다. 여러 번 갔어도 한 번도 미국 욕하는 사람을 본 일이 없다. 일부러 물어봐도 대답을 하지 않았다. 그 침묵 속에서 응어리진 슬픔을 전달받았다. 그들은 설움과 원한을 승화시켜 아귀지옥을 무릉도원으로 바꾸었다. 이제 그들은 앞으로 또 다른 계획이 있을 것이다. 모든 것은 침묵 속에서 진행되고 있다. 자신이 불행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나가사키를 꼭 한 번 가볼 일이다. 배를 타고 가면 경비도 크게 들지 않는다.
권영재 대구의료원 신경정신과 과장·서구정신보건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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