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가톨릭대병원 소화기내과 김은영(49) 교수는 내시경 분야에서도 최첨단으로 불리는 초음파 내시경을 다룬다. 위암뿐 아니라 흔히 조기 진단이 어렵다고 말하는 췌장암도 찾아낼 수 있다. "제 관심 분야는 초음파 내시경과 치료내시경, 염증성 장질환입니다. 초음파 내시경은 말 그대로 위장 벽뿐 아니라 점막 아래에 생긴 암세포를 정확하게 찾아내는 것이고, 이를 통해 췌장도 진단이 가능합니다. 치료내시경은 조기 위암의 경우 절제술까지 가지 않고 내시경으로 암세포를 제거하는 것이죠."
◆초음파 내시경의 전문가
염증성 장질환은 흔히 생각하는 장염과는 다르다. 젊은 나이에 주로 발병하는데 아직 원인조차 명확하지 않다. 자가면역 이상으로 신체 내 장기를 면역체계가 공격함으로써 생기는 질환. "대장에만 생기는 궤양성 대장염과 입에서부터 항문까지 생기는 크론병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국내에 2만 명 정도 환자가 있다고 추산합니다. 평생 안고 가야 하는 희귀난치성 질환이죠."
그만큼 환자에겐 경제적 부담도 크다. 김 교수는 대한장연구학회 보험이사로 활동하면서 최신 치료용 주사제를 평생 보험적용이 가능하도록 바꾸는데 큰 역할을 했다. 아직 환자들이 질환에 대해 잘 모르기 때문에 무작정 서울로 올라가는 경우가 많다. "안타까울 때가 많습니다. 약을 먹어도 병세가 파도치듯 자꾸 바뀌기 때문에 가까운 곳에서 꾸준히 진료받는 게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김 교수는 지역 환자들을 위해서 4월엔 제3회 크론병 동우회를 지역의 다른 의사들과 함께 개최할 예정이다.
초음파 내시경은 최근 들어 각광받고 있지만 제대로 배운 전문가는 그리 많지 않다. "재작년 제가 조사한 바로는 내시경을 많이 하는 대형 및 중소병원 57곳 중에 초음파 내시경을 하는 곳은 88%에 그쳤습니다. 내시경 전문병원조차도 초음파 진단없이 바로 치료내시경을 한다는 뜻이죠. 미국만 해도 초음파 내시경은 내과 전문의 3년, 펠로우 3년을 거친 뒤에 2년간 다시 배워야 가능한 분야입니다. 미국에서도 초음파 내시경 수련병원은 30곳이 채 안되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의사 그리고 여의사
김 교수는 1987년 의과대학을 차석으로 졸업했다. 하지만 내과를 전공하기까지 우여곡절도 많았다. "마침 졸업 동기 중에 저를 포함해 여학생 2명이 동시에 내과를 지원했습니다. 선배들이 매일 밤마다 불러서 혼냈죠. 어떻게 내과에 여의사가 2명이나 올 수 있느냐고. 겨우 내과 전공의가 되기는 했는데, 제가 원하는 소화기내과를 갈 수가 없었어요. 당시만 해도 여의사의 영역이 아니라며 오지 말라더군요. 마침 내분비내과 교수님이 연수를 가는 바람에 어부지리로 소화기내과를 택할 수 있었습니다."
지금은 내과 전공의 중 절반이 여의사다. 김 교수는 격세지감을 느낀다고 했다. 전문의가 됐지만 불러주는 곳이 없었다. 여자라는 이유였다. 역시 우여곡절 끝에 월급 의사가 됐지만 만족스럽지 못했다. "내가 왜 이러고 있나는 생각이 들었어요. 학회에 가보니 동기나 후배들이 훌륭한 의사로 성장해 있더군요. 이러려고 의사가 됐나 싶어서 많이 힘들었습니다."
그러던 중 인생을 뒤바꾼 한 사건을 만나게 된다. "말기 간경화 환자가 있었어요. 50대 남자환자였는데 제가 6년 정도 치료했죠. 결국 암까지 진행됐습니다. 수 차례 죽을 고비를 넘겼습니다. 수시로 응급실에 실려왔죠. 어느 날 밤, 응급실에서 그 환자가 왔다며 연락이 왔습니다. 혼수상태였죠. '더 이상 할 게 없다. 편안히 돌아가시도록 해달라'고 부탁하고는 안 나갔습니다."
며칠 동안 한밤중에 응급실로 불려간 탓에 몸이 녹초가 된 상태였다. 하지만 이튿날 새벽 마음이 달라졌다. 부리나케 응급실로 갔지만 결국 그 환자는 숨을 거두고 말았다. "그 환자의 부인이 저를 보며 울더군요. 저를 원망하진 않았습니다. 다만 남편이 마지막 숨을 거둘 때까지 응급실 문을 바라보며 제가 오기를 기다렸다고 하더군요." 이 말을 마치고 김 교수는 눈물을 훔쳤다. 벌써 10년도 더 지난 일이지만 아직도 마음이 아프다고 했다. 이 일을 계기로 의사를 그만 둘 결심까지 했다.
◆약점을 강점으로 바꾸다
1999년 그는 미국행을 결심했다. 대학 시절 우연찮게 땄던 미국 의사 자격증이 떠올랐고, 논문으로만 봤던 '초음파 내시경'을 배우고 싶었기 때문. 인터넷으로 전문 병원을 찾아 편지를 보냈고, 와도 좋다는 허락을 받았다. "제가 공부한 사우스캐롤라이나 대학병원은 나중에 알고 보니 초음파 내시경 분야에서 미국 3대 병원 중 하나였습니다. 운이 좋았던 거죠."
초음파 내시경을 '한다'는 것과 '제대로 한다'는 것은 큰 차이가 있다. 위벽을 넘어 췌장까지 진단할 수 있어야 하고, 내시경으로 췌장 조직을 떼어내 정확한 종양 진단까지 내릴 수 있어야 초음파 내시경 전문가라고 할 수 있다.
김 교수는 미국에서 초음파 내시경을 제대로 배웠다. 의사 자격증이 있었기 때문에 직접 환자 치료에도 참여했다. 2001년 대구가톨릭대병원으로 부임해 왔을 때 김 교수처럼 초음파 내시경을 전문적으로 배운 의사는 전국적으로 거의 없다시피했다.
그가 초음파 내시경을 보는 환자는 연간 600~650여 명. 500명 이상 보는 병원은 전국에서도 9곳에 불과하다. 지금도 그에게 배우기 위해 부산, 울산 등지에서 의사들이 매주 찾아온다. 최근 김 교수가 공동저자로 참가한 영문 내시경초음파 교과서 '엔도소노그라피'(Endosonography) 제2판이 출간됐다. 미국과 유럽을 비롯한 세계적인 교수들이 공동 저자로 이름을 올렸다.
"미국 연수 시절 지도교수님이 대표 저자인데 제게 '점막하 종양' 분야에 대한 저술을 부탁했어요." 김 교수는 비영어권 동양인 교수로는 유일하게 저자로 참여했다. 김 교수는 스스로 극복할 수 없는 3가지 약점이 있다고 했다. "첫째는 여자라는 것이고, 둘째는 지방대 출신, 셋째는 늦은 나이에 대학 교수가 됐다는 겁니다. 이를 넘어서려면 열심히 하는 수밖에 없어요." 의사들이 인정하는 의사가 된 김 교수는 이미 이런 약점들을 극복한 것이 아닐까? 그는 약점을 강점으로 바꾸는데 성공했다.
글·사진 김수용기자 ks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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