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논바닥에 핏물 '흥건'…"숨을 쉴 수 없어요"

구제역 매몰지 긴급점검

안동시 일직면 국곡3리 구제역 매몰지에서 침출수가 흘러내리고 있다. 엄재진 기자
안동시 일직면 국곡3리 구제역 매몰지에서 침출수가 흘러내리고 있다. 엄재진 기자

구제역으로 가축을 묻은 매몰지가 허술하게 조성되면서 붕괴 우려와 침출수 및 가스 배출 등 환경오염 가능성이 높다. 상당수 매몰지는 산비탈면이나 하천 인근에 조성돼 봄날 날씨가 풀리면서 오염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는데다 일부 지역은 매몰지에서 가축들을 꺼내 다른 곳으로 옮기는 등 지자체들이 뒤늦게 허둥대고 있다. 안동과 영주지역 매몰지를 찾아 그 실태를 점검해 봤다.

◆금방이라도 무너져 내릴 것 같아요

8일 오후 안동시 일직면 국곡리 A농장 인근 산비탈. 가축 매몰지는 금방이라도 사면이 쏟아져 내릴 것 같았다. 이곳에는 1만1천400여 마리의 돼지들이 6단으로 조성된 비탈 매몰지에 묻혀졌다.

그나마 암반층이 구덩이를 둘러싸고 있지만 봄철이 시작되는 3월, 해빙기를 맞으면 얼어붙었던 토질이 녹으면서 머금고 있던 물기가 오히려 윤활유 역할을 해 사면 붕괴를 앞당길 것으로 보였다.

이곳 매몰지는 대부분 30~40도에 이르는 가파른 경사면에 조성돼 있어 붕괴 우려가 높고, 매몰지 바로 앞으로는 낙동강으로 유입되는 미천 지류인 소하천이 흐르고 있어 자칫 수질오염으로 이어질 수 있다.

더 심각한 것은 벌써부터 폐사돼지들이 소석회와 뒤섞여 부패하면서 생겨난 침출수와 가스들이 배관을 타고 곳곳으로 흘러내리면서 비탈 사면에는 누런 오염 침출수 띠를 형성해 놓고 있어 심각한 악취와 함께 환경오염을 가속화시키고 있다.

안동지역에는 이 같은 비탈 사면에 설치된 매몰지들이 상당수 있어 발 빠른 대책 마련이 없을 경우 '봄철 환경 대재앙'이 초래될 것으로 전문가들은 우려하고 있다.

안동대 토목공학과 백승철 교수(환경연구소장)는 "무엇보다 시급한 것은 매몰된 상태와 지질 상태를 파악해야 한다. 특히 봄철을 맞아 토양 온도가 올라가면서 매몰지 지반 침하와 전체 경사지질의 붕괴가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9천여 두의 소와 돼지가 묻힌 안동 풍산읍 죽전지구 매몰지는 하천과 맞닿아 있었다. 낙동강 지류인 상리천 한 줄기인 하천과 1m 정도의 둑 하나를 사이에 두고 조성돼 침출수에 의한 수질오염이 우려되고 있다.

이 지역 토질은 점토질에 비해 지하수가 빠르게 흐르고 있는 사질토 성분이 강해 해빙기, 우수기와 맞물릴 경우 지하수는 물론 하천까지 오염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

안동대 환경공학과 김영훈 교수는 "안동시가 그라우팅 공법의 차수막을 설치한다고 하지만 완벽하게 침출수를 막기는 어렵다"며 "차수막 설치 이후에도 관정을 밖으로 꺼내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해 지하수와 수질이 오염되지 않도록 살펴야 한다"고 했다.

구제역 첫 발생지역인 와룡면 서현양돈단지에 설치된 매몰지는 바로 인근 낙동강 상류 안동호와 접하고 있는 등 상당수 매몰지가 하천과 인접해 상수원을 비롯한 수질오염이 우려되고 있다.

◆숨을 쉴 수가 없어요

8일 오후 영주시 안정면의 한 축산농가. 텅 빈 돈사에는 먼지 바람만 가득했다. 자식 같은 가축을 땅에 묻은 70대 노부부는 "파묻은 돼지 사체에서 새어나온 악취까지 맡아야 하니 더 고통스럽다"고 했다.

돼지를 매몰한 집 앞 논은 포탄을 맞은 것처럼 큰 구덩이가 파져 있었고 그 속은 매몰한 가축의 핏물(침출수)로 가득해 살처분한 가축의 수를 예상케 했다.

농장주 황모(74) 씨는 "논 바닥을 파고 가축을 묻었지만 침출수가 흘러나와 다시 파내서 액비저장탱크로 옮겼다"며 "기존 매몰지에서 흘러나오는 침출수는 하루 3차례 분뇨수거차량으로 퍼내 하수종말처리장으로 옮기고 있다. 악취가 심해 사람이 숨을 쉴 수가 없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황 씨는 "구제역 바이러스가 감염된 가축을 옮길 수도 없고 있는 자리에 매몰해야 하다 보니 어쩔 수 없었다"며 "앞으로 날씨가 풀리면 어떤 문제들이 닥쳐올지 걱정이 태산 같다"고 말했다.

이곳 농장은 지난 1월 14일 구제역이 발생, 돼지 2천900마리를 살처분해 집앞 논 바닥을 파고 매몰했다. 하지만 지하수 오염과 구제역 바이러스가 다시 확산될 우려가 제기되자 영주시는 긴급 예비비 2천만원을 투입해 액비저장탱크를 건립한 뒤 기존 매몰지에 묻었던 가축을 꺼내 다시 옮겨 놓았다.

매몰지 근처에는 사람이 서 있지도 못할 정도로 악취가 풍겼고 어디서 흘러나오는지조차 모를 침출수가 인근 배수로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시 관계자는 "침출수를 방지하고 악취를 제거하기 위해 액비저장탱크를 건립해 기존의 매립 가축을 옮겨 놓았다"며 "미생물을 넣고 분해시켜 2차 오염을 방지해 자치단체 매몰방식의 모범사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1차 매립에 실패한 이유는 지방자치단체가 방역에 급급한 나머지 환경지침을 어기고 산비탈 등 토양유실 위험이 크거나 침출수 유출 가능성이 높은 농가나 농지, 하천주변 등에 가축을 대량 매몰했기 때문이다.

영주시는 구제역 파동으로 현재까지 103개소에 돼지 5만8천705두와 소 6천470두, 사슴 35마리, 염소 175마리를 살처분해 매몰처리했다. 하지만 당장 매몰지 정비사업을 벌여야 하는 곳이 13곳으로 조사됐다. 시 관계자는 "예산이 확보되면 가축 매몰지에 대한 정비사업을 벌일 것"이라고 했다.

조광현(51) 경상북도축산기술연구소 한우실장은 "매몰과정에 얇게 묻었거나 시트지 등을 사용해 보강공사를 제대로 하지 않은 매몰지는 가스가 솟아오르거나 침출수가 흘러내려 하천이나 지하수를 오염시킬 수 있고 부패가스 등 오염원을 배출할 수 있다"며 "조속한 시일 내 문제가 있는 매몰지에 대해 보강공사를 서둘러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안동·엄재진기자 2000jin@msnet.co.kr

영주·마경대기자 kdma@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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