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권영재의 행복칼럼] 나의 산

나는 돈도 없고 명예도 없다. 그런 까닭에 남들을 만나도 할 말 다 못하고 참고 살 때가 많다. 돈이 없으니 친구에게 술 한 잔도 제대로 대접 못해 늘 미안하다. 주제가 이러하니 남들을 돕거나 기부를 한다는 건 언감생심 엄두도 낼 수가 없다. 늘 남들이 하는 장한 행동을 부러워하며 살 뿐이다. 하지만 그런 내가 화병도 안 걸리고 용케도 이 풍진 세상을 잘 살아가고 있으니 그 까닭은 바로 아담한 하나의 산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나의 산은 높이가 660.3m로써 3개의 봉우리와 5개의 골짜기가 있다. 산은 자그만 해도 나무가 빽빽하게 자라고 있으며 골짜기에는 물이 가득 흘러 아기자기하고 참 예쁘다. 등산객 중에 기운이 모자라거나 병약한 분들을 위해 케이블카도 준비해 두었으므로 그 걸 이용하면 된다. 산이 작다고는 하지만 관리하기에는 나의 재력으로는 힘이 든다. 산골짝마다 밤 산책이나 산행하는 이를 위해 가로등을 달아 놓았고 케이블카도 운행하니까 전기료만 해도 만만찮게 들어간다. 또 나무에는 이름표도 달아 놓고 길도 청소를 하고 군데군데 깨끗한 화장실도 마련해두었다. 이런 시설을 운영하기 위해서는 일하는 사람도 필요하다. 전기료와 인건비 그리고 기타 물품비 등을 위해 큰돈이 들어간다. 나는 이런 경비를 부담할 여력이 없다.

하지만 고맙게도 이런 돈 드는 일은 딴 사람들이 다해준다. 전기료도 대주고 일꾼도 뽑아 봉급 주는 일까지 그 쪽에서 다 도맡아 해준다. 세상에 이런 고마운 일이 또 있을까? 산 속에는 종교, 문화, 역사, 체육 등에 관한 많은 시설과 부지가 잘 갖추어져 있다. 시설물만 해도 종교 쪽으로는 네 곳이 불교 사찰이 있고 두 곳의 시비와 세 분의 독립 운동가들의 동상이 있다. 그 외 낙동강 승전기념관, 충혼탑, UN참전 기념비와 골프 연습장, 수영장, 승마장과 청소년 수련원과 수련장이 있다. 내 자랑 같아서 좀 쑥스럽지만 나는 물욕이 없고 정이 많은 사람이라 내 산에 들어오는 이에게 입장료를 받지 않는다.

내가 비록 현재 꼴은 이러해도 몰락된 양반의 종손으로 어떻게 나의 집에 찾아온 손님에게 돈을 받을 수 있단 말인가? 돈도 받지 않고 산을 공짜로 시민들에게 개방하니 모두들 나를 숭배하는 것 같아 기쁘고 또한 행복한 일은 그것들을 대구시와 달성군에서 전부 관리해주는 것이다. 아예 이 산의 소유자를 대구시청과 달성군 이름으로 등기부에 올려 주었다.

세상 누구든 나의 산을 무료로 출입을 할 수가 있다. 골짜기 물소리와 나무 사이 바람소리에서 하나님의 설교를 들을 수 있고 부처님의 설법을 들을 수가 있다. 그러므로 어떤 불행한 환자라도 이 산에 들면 그 불행이라는 병은 금세 살아진다. 누누이 말하지만 난 착한 사람이 되어 입산료를 받지 않거니와 그 불행병 치료비도 받지 않는다. 전부 공짜다.

권영재 대구의료원 신경정신과 과장·서구정신보건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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