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이규리의 시와 함께] 강도에게 주는 시 / 오장환

어슥한 밤거리에서

나는 강도를 만났다.

그리고 나는

웃었다.

빈 주머니에서 돈 이 원을 꺼내 들은

내가 어째서 울어야 하느냐.

어째서 떨어야 하느냐.

강도도 어이가 없어

나의 뺨을 갈겼다.

…이 지지리도 못난 자식아

이같이 돈 흔한 세상에 어째서 이밖에 없느냐.

오 세상의 착한 사나이, 착한 여자야.

너는 보았느냐.

단지 시밖에 모르는 병든 사내가

삼동 추위에 헐벗고 떨면서

시 한 수 이백 원

그 때문에도 마구 써내는 이 시를 읽어보느냐.

왜 분노해야 할 시점에서 피식 웃음이 나오는가. 돈 이 원을 내미니 강도가 어이가 없어 도리어 뺨을 갈기더라는 이야기는 또 얼마나 시적인가. 식민지 시대뿐만 아니라 오늘날에도 시인은 여전히 가난하다. 여기저기서 뺨을 맞는지도 모른다. 봄꽃에게 맞고, 이별에게도 맞고, 천박한 자본주의에게 더 세게 맞을 게 뻔하다.

시인이 가난한 이유는 돈이 안 되는 것들만 사랑하기 때문이다. 초사흘 벼린 달을 사랑하고,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의 둥그런 눈을 사랑하고, 세찬 바람만 끊임없는 겨울 밭둑을 사랑하고, 지는 노을 앞에 하염없이 서 있는 시간을 사랑한다. 달이, 소가, 바람이, 노을이 어떻게 돈을 준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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