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이웃사랑] 조선족 김춘희씨의 애절한 사연

'펑' 폭발음과 함께 산산조각 난 '코리안 드림'

'희망'을 찾아 한국에 온 조선족 김춘희(31·여) 씨. 제 몸을 감싼 화상보다 엄마의 사고 소식을 듣고 상처 입을 딸(10)의 마음을 먼저 걱정했다. 정운철기자 woon@msnet.co.kr

"안녕하세요."

김춘희(31·여) 씨는 중환자실 침대에 누워 어색한 한국말로 인사를 건넸다. 춘희 씨는 중국인 조선족이다. 1㎝ 남짓한 짧은 머리칼보다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빨갛게 부어 오른 얼굴이었다. 얼굴뿐 아니라 그녀의 몸도 온통 화상으로 얼룩져 있었다. 왼손 새끼 손가락은 잘려 나갔고 발과 발가락에도 화상 딱지가 곳곳에 앉아 있었다. 온몸을 감싼 화상은 지난해 11월 생긴 가스 폭발 사고 때문에 생긴 상처다. 사고가 난 그날, '펑' 하는 소리와 함께 춘희 씨의 '코리안 드림'도 산산조각났다.

◆조선족, 또 다른 이방인

춘희 씨는 오랫동안 한국을 동경했다. 7년 전 남편과 이혼한 뒤 혼자 딸(10)을 키웠던 그녀는 돈을 벌어야 했다. 중국 심양에서 식당 일을 하는 것보다 한국 공장에서 몇 년간 열심히 일하는 편이 돈벌이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던 어느 날 기회가 찾아왔다. 지난해 심양에서 열렸던 '중국 글로벌 한상 대회'에서 봉사활동을 하며 한국행을 바랐던 그의 꿈은 현실에 한 발자국 다가갔다. 중국에서 태권도 법인체를 운영하는 김영철(가명·43) 씨를 대회에서 우연히 알게 됐고 한국에 가고 싶어했던 춘희 씨는 김 씨의 도움을 받아 한국행을 준비하게 됐다. 그리고 지난해 10월 배를 타고 인천에 첫발을 들였다.

춘희 씨의 첫 직장은 경기도에 있는 자동차 백미러 제조 공장이었다. 한국 생활은 생각만큼 녹록지 않았다. 한국말을 잘 못하는 그녀는 '조선족이 한국말도 못한다'는 비아냥을 들어야 했다. 공장 생활도 힘들기는 마찬가지였다. 하루종일 공장에 갇혀 부품을 조립하는 육체적 고단함보다 외로움이 더 견디기 힘들었다. 말이 통하지 않으니 공장에 있는 한국인 동료들과 말을 섞을 수도 없었다. 그는 단지 노동력을 제공하는 '이주 노동자'일 뿐이었다. 하지만 한 달 100만원을 벌기 위해 이 모든 것을 견뎌야만 했다.

◆폭발과 함께 사라진 '코리안 드림'

경기도에서 한 달간 일한 춘희 씨는 그곳을 떠났다. 심양에서 춘희 씨를 도왔던 김영철 씨의 정이 그리웠다. 단 한 사람이라도 의지할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대구로 직장을 옮길 수 있게 해달라"고 김 씨에게 부탁했다. 김 씨의 도움으로 춘희 씨는 대구에 있는 휴대전화 부품 조립 공장에 취업했다. 하지만 신분이 불확실한 이주 노동자가 방을 구하는 일이 그리 쉽지만은 않았다. 방 주인들은 매번 100만원이 넘는 '보증금'을 요구했고 김 씨가 보증인이 돼 주는 조건으로 월세 30만원짜리 방을 계약했다.

"이제 시작이다." 춘희 씨는 속으로 이렇게 결심했다. 하지만 돈을 많이 벌어 중국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희망은 가스 폭발과 함께 사라졌다. 지난해 12월 13일 오후 10시 집에서 담배를 피우기 위해 라이터에 불을 붙이자마자 '펑' 하는 폭발음이 온 건물에 울려 퍼졌다. '딸을 위해서라도 돈을 벌어야 한다'는 부담감과 타향살이의 외로움을 담배로 달랬던 것이 화근이었다. 대구로 온 지 딱 20일째 되던 날 발생한 사고였다.

이유를 알 수 없는 폭발 사고로 인해 춘희 씨는 빚더미에 앉았다. 경찰은 폭발 원인에 대해 여전히 수사 중이지만 건물 주인은 "춘희 씨의 과실로 인해 발생한 가스 폭발"이라며 건물 파손비 등 4천만원을 물어내라고 요구했다. 그 빚은 고스란히 보증인 김영철 씨에게 넘어갔다.

◆딸에게 전할 수 없는 이야기

사고 후유증으로 춘희 씨는 한동안 말을 잃었다. 따뜻한 정을 나눠줬던 김영철 씨에게 엄청난 짐을 떠넘겼다는 미안함과 화상(3도)으로 고통받는 자신의 몸 때문이었다. 희망을 찾으러 왔던 한국에서 오히려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졌다. 현재 춘희 씨 앞으로 청구된 병원비만 1천만원이 넘고 피부 이식술을 위해서 500만원이 더 필요하다.

또 춘희 씨는 중국의 딸 아이가 입을 마음의 상처를 걱정했다. 이 때문에 한국으로 떠난 엄마를 매일 그리워하고 있을 딸에게 사고 소식을 전하지 못하고 눈물만 흘리고 있다. 아버지에게 사고 소식을 알렸지만 가난한 아버지는 비행기 표를 살 돈조차 없어 발만 동동 구를 뿐이다.

몸 하나가 전 재산이었던 춘희 씨는 사고로 모든 것을 잃었다. 휴대전화 부품 조립은 손으로 하는 섬세한 작업이라 두손 모두 화상을 입은 그녀가 하기에는 힘든 일이다. 춘희 씨의 수술을 담당했던 의사는 "대학병원으로 옮겨서 화상으로 뼈가 드러난 부위는 성형수술을 받아야 한다"며 "퇴원을 하더라도 관절 기능 장애가 남아 앞으로 일하기는 힘들것 같다"고 했다. 하지만 그녀는 자신이 처한 상황을 받아 들이지 않았다. "퇴원하면 다시 공장에서 일해 돈 많이 벌어서 다시 중국으로 돌아갈 거예요." 춘희 씨는 이미 닥친 절망을 애써 부정하고 있었다.

황수영기자 swimmin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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