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초(空超) 오상순(吳相淳·1894~1963)은 1894년 서울 장충동에서 태어났으나 대구와 인연이 매우 깊은 시인이다. 공초는 세 차례에 걸쳐 근 20년을 대구에서 살았다. 첫 번째는 1927년 남산동의 한 여관에 머물면서 고월 이장희, 상화 이상화, 목우 백기만 등과 어울려 다녔고, 두 번째는 1938년 남성로에서 어묵집 '아시아'를 경영하며 대구의 문인들과 교유했으며, 세 번째는 6·25 때 염매시장 안 '상주집'에 기거하며 피란생활을 했다. 따라서 공초는 대구의 문인이라고 불러도 대과가 없다 하겠다. '불교의 공사상(空思想)'을 초월하고 싶은 염원에서 호를 공초(空超)라고 붙인 모양이나 담배를 워낙 좋아해서 많은 사람들이 그를 '꽁초'라고 불렀다. 공초는 하루 평균 20갑의 담배를 피웠다고 한다. 결과적으로 그의 호 공초는 본인의 정신적 지향과 육체적 특성을 가장 잘 나타낸 가장 인상적인 '최고의 호'라 부를 만하다.
남성로의 어묵집 '아시아'는 상화가 밑천을 대고 공초가 경영한 술집으로 상호는 공초의 대표작 '아시아의 마지막 밤 풍경'에서 따왔다. 서야동에서 남성로 쪽으로 들어가는 들머리에 주점 '아시아'가 있었는데, 바로 옆에 '안동옥'이란 주류도매상이 있어 그 집에서 정종을 가져다 팔았다. 주점 '아시아'는 공초의 명성 덕분에 주객들의 호기심을 끌어 장사가 제법 되었고 공초가 죽치고 있고 상화가 수시로 들락거리는 바람에 찾아오는 문화예술인들이 꽤 많았다.
학교가 파하자 교남학교(대륜학교 전신) 교사로 근무하던 이상화 선생과 서동진 선생이 주점으로 들어왔다. 영업시간 전이라 아직 주모가 출근하지 않았는지 부엌에선 아무런 기척이 없었다. 방문을 열자 담배연기를 연방 뿜어대며 낡은 노트를 뒤적거리고 있던 공초가 마치 그들을 기다리기라도 한 듯 술상을 차려놓고 있었다. 공초는 늘 하던 대로 '반갑고 고맙고 기쁘다'는 말로 그들을 맞았다. 목욕이라도 다녀온 듯 공초는 말끔한 얼굴에 단정한 차림이었다.
"공초 선배, 오늘 웬일이요? 뭔 날이요? 해가 서쪽에서 뜨겠네!"
서동진 선생이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너구리 잡는구먼!"
상화가 환기나 좀 시키자며 창문을 조금 열었다. 그렇지 않아도 휑한 방에 찬 공기가 엄습했다. 상화가 불 좀 낫게 넣으라고 소리쳤다.
"방이 이리 썰렁해서 손님이 오겠나!"
"자, 그만하고 백묵이나 좀 씻어내라고."
공초가 사발을 돌리고 막걸리를 쳤다. 서울 보성학교에서 교편을 잡은 적 있는 공초의 이력이 묻어나는 말이었다. 세 사람은 거의 본능적으로 잔을 부딪치고 막걸리 한 사발을 깨끗이 비웠다. 빈 사발을 놓기가 바쁘게 목우 백기만이 바람같이 나타났다. 목우는 생활이 어려워 상주 등지에서 탄광 일을 보다가 그것마저 여의치 않자 북만주로 가려고 준비 중이었다. 목우가 합류하자 술자리가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공초 선배, 오늘 뭔가 수상한데? 색시 만나고 오셨나? 인물이 훤하네. 여기서 신방을 차려도 되겠소."
목우의 우스갯소리에 공초는 대꾸도 하지 않고 애꿎은 담배만 빨아댔다. 공초가 말을 아끼자 셋이서 대화를 이어갔다.
"상주 탄광 일이 시원치 않던 모양이지? 만주는 좀 나은가? 거기도 전쟁 통이라 어려울 텐데…."
"그래도 여기보다는 안 낫겠나? 거기는 땅이 넓잖아. 마침 지인이 북만주에서 농장을 하고 있어서 그리 가서 세상 돌아가는 것도 알아볼 겸, 경험도 쌓을 겸, 겸사겸사 가보려는 것이지. 시라는 것이 새로운 경험을 먹고사는 거 아니겠어."
"맞아 맞아! 왜놈들이 중일전쟁을 일으키고 대동아공영권을 만들겠다고 선전하는데 세계 정세가 도대체 어떻게 돌아가는지 바깥 소식을 수시로 들어볼 필요가 있다고. 후유! 도대체 우리의 독립은 어떻게 되는 거야? 우리 지식인이 글이나 쓰며 술이나 퍼마시는 것이 과연 최선일까? 직설적인 것도 아니고 겨우 은유와 상징으로 몇 자 적어 놓고 저항 아닌 저항을 하는 것으로 위안을 삼으면서 이렇게 술로써 암울한 현실을 잊으려는 우리가 과연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다하는 것일까? 내 시가 저항시가 맞긴 맞나? 나의 침실로,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이따위 시가 우리나라의 독립에 과연 도움이 되는 건가?"
상화는 격앙된 톤으로 술상을 가볍게 쳤다.
"그렇다고 모두 다 만주로 가서 총 들고 독립운동을 할 수는 없잖아? 현실이 비록 암울하고 힘들지만 자기 자리를 열심히 지키다 보면 좋은 날이 안 오겠나? 지금 왜놈들 잘나간다고 큰소리치지만 세상이란 게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아. 미국과 같은 강대국을 우리 편으로 만들어 일본을 친다면 의외로 우리의 독립이 빨리 올 수 있어. 그때까지 자기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한 번 살아보자. 우리 희망을 갖고 큰 꿈을 꾸자. 폐허를 받아들이는 데 머물지 말고 이를 극복하여 초인으로 거듭나자. 참다운 창조는 참담한 폐허 속에서 싹트는 거야."
담배만 열심히 빨던 공초가 상화의 말을 받아 조용하면서 비장한 어조로 위로하자 세 사람은 눈을 크게 뜨고 자세를 바로잡았다. 평소의 공초답지 않다고 목우가 중얼거렸다.
"자네들 같은 수재들이 이렇게 암울하게 살아간다는 것은 폐허이지만 그래도 그림을 그리고 시를 쓰고 동포를 가르친다는 것은 창조야."
공초가 단호하게 말을 이어가자 한동안 진지한 분위기가 흘렀다.
"공초 선배 말이 맞아. 동트기 전이 가장 어둡다고 하잖아. 지금은 칠흑 같은 밤이지만 머지않아 닭이 울고 찬란한 아침이 올 거야. 자, 거국적으로 건배 한 번 하고 힘내자!"
상화가 분위기를 바꾸려고 건배를 선창하며 잔을 들자 모두 힘차게 잔을 부딪치며 '대한민국 만세!'를 외쳤다.
그때 광야의 시인 이육사가 성큼성큼 걸어 들어왔다. 뜻밖의 반가운 손님으로, 인사를 나누느라 좌중이 한동안 떠들썩했다. 대구에 왔다가 공초 선배가 주점을 냈다고 해서 일부러 찾아왔다고 했다. 의연한 강골 이육사도 엄한 세월에 치여 얼굴이 많이 상해 보였다. 목우가 '후래자 삼배'(後來者 三盃) 하라며 육사에게 연거푸 세 잔을 돌렸다. 육사는 싱긋 웃고는 목우가 주는 대로 세 잔을 가볍게 비웠다. 험한 세상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의연한 육사의 기개는 유학의 대종 퇴계의 13세손다웠다. 그는 시인이라기보다 오히려 독립투사에 가까운 풍모를 지니고 있었다. 요즘은 주로 서울에 거주하면서 문학 활동에 열중하는 편이라고 근황을 전했다. 육사는 술이 조금 오르자 자리에서 일어나 자신의 시 '광야'를 장엄하게 낭송했다. 육사가 물꼬를 트자 공초도 자신의 시 '방랑의 마음'을 낭송했고, 상화도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를 낭송했다. 이렇게 되자 목우도 자신의 시 '가엾은 청춘'을 낭송했다. 그 다음 순간 모두 소허에게 시선이 집중되었다. 소허 서동진은 서양화가였기 때문이다. 소허도 벌떡 일어나 이장희의 시 '봄은 고양이로다'를 낭송했다. 모두 큰 박수를 치며 좋아했다. 그때 공초가 일어나 비장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우들, 오늘이 무슨 날인지 아나? 오늘은 내가 그토록 사랑했던 아우 고월 이장희의 기일이야. 우리 여기 모인 김에 그의 제사나 같이 한 번 지내줌세."
그리고는 주모를 불러 준비해둔 제사상을 내오라고 했다. 순식간에 술상을 물리고 제사상을 들여왔다. 공초는 갑자기 곡을 하며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그 모습이 어찌나 슬펐던지 그 자리에 있던 주모까지 눈물을 글썽거렸다. 한참 곡을 하던 공초가 초헌을 하자 상화가 아헌을 하고 목우가 종헌을 하였다. 이를 지켜보던 소허와 육사도 따로 술을 올리고 재배했다. 고월 이장희를 유별나게 좋아했던 공초는 그의 기일을 잊지 않고 제사를 준비해둔 것이었다. 목욕재계까지 한 공초가 새삼 다시 보였다. 누구에게도 얽매이기 싫어 평생 독신으로 유랑해온 영원한 자유주의자 공초 오상순, 그는 암울한 시대를 참지 못하고 요절한 천재시인 고월 이장희를 위해 그가 사랑했던 자유를 조금 양보하는 자유를 누렸던 것이다. 얼음 같은 지성과 풍부하고 여리디여린 감수성으로 일제 하의 암울한 현실을 내면에서 삭이지 못한 채 스스로 죽음의 길을 택했던 고월에게서 공초는 어쩌면 자신의 처연한 모습을 발견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고월의 제사가 끝난 후 좌중의 이야기에 끼어들지 않고 술을 마시며 쉼없이 담배를 피우며 우두커니 듣고만 있던 공초는 제 자리에 앉은 채 방석 위에 방뇨를 했다. 무르익은 분위기를 깨는 것이 너무 싫어서 그냥 쌌다고 했다. 분위기를 깨고 나올 용기가 없어서 그냥 쌌다고 했다. 공초의 눈가에 눈물이 살짝 비쳤다. 누구도 지린내를 탓하며 자리를 뜨지 않았다. 그날은 아무도 화장실에 가지 않고 모두 그 자리에서 그냥 쌌다. 지린내가 진동했으나 그들은 알 수 없는 희열에 중독되어 벌겋게 달아있었다.
"우리가!"
"남이가!"
주점 '아시아'는 파는 술보다 그냥 마시는 술이 더 많아 개업 몇 달 만에 거덜났고 주류도매상 '안동옥'에 외상만 잔뜩 지워놓은 채 문을 닫아버렸다. 이에 따라 상화는 투자한 금액을 다 날렸다. 공초는 '안동옥' 외상값을 광고용 카피를 써 주는 것으로 대신했다. 음습하고 오연한 공초의 또 다른 면모를 엿보게 한다.
"거품과 같은 인연이다. 어둡고 헛되이 살 것인가.
불안한 세상을, 짧은 인생을 웃으며 명랑하게 살자.
새봄이다. 명랑한 인생이다.
브라보, 희망의 잔을 비워라.
강하고 즐겁게 짧은 인생을 즐기자."
술이 당긴다. 송강의 '장진주사'가 절로 입가에 새어나온다.
공초의 유별난 고월 이장희에 대한 사랑은 고양이 사랑으로 이어졌고 기르던 고양이가 죽자 몸소 상복을 입고 곡을 하며 정중하게 장례절차를 밟아 장사지냈다. 이는 당시로서는 매우 파격적인 행동이었다.
공초 오상순은 운명하던 날 구상 시인에게 "자유가 인생을 구속하였구나"라는 말을 남겼다고 한다. 공초의 수유리 묘비에는 그의 행적이 간명하게 적혀 있다.
"1894년 8월 9일 서울에서 태어나다.
1963년 6월 3일 돌아가다.
폐허의 동인으로 신문학운동에 선구가 되다.
평생을 독신으로 표랑하며 살다.
몹시 담배를 사랑하다.
유시집 한 권이 남다."
오철환(소설가·대구시의원)
그림:김영대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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