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대혁명 이후 부르주아 혁명에 의해 '프랑스 국민의 왕'이 됐으나 다시 노동자 계층 혁명에 의해 왕위를 내놓아야 했던 이가 루이 필리프 1세(1773~1850)이다. 프랑스 공작가문에서 태어났으나 극단적 왕권주의에 반대했던 그는 아버지와 함께 프랑스대혁명에 참가했다. 그러나 자코벵당의 미움을 사 미국 등지에서 망명생활을 하던 중 나폴레옹 사임 후 귀국해 혁명 중 잃은 재산보상법에 의해 가장 큰 혜택을 입으면서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진 루이 16세의 동생 샤를 10세에 의해 왕실군단 사령관이 됐다. 샤를 10세는 구제도로의 극단적인 반동정책을 펴다 1830년 금융귀족들이 '7월 혁명'을 일으켜 쫓아내고 하원의회를 통해 루이 필리프 1세를 왕으로 내세웠다. 유럽 각국 왕궁은 이런 그를 '폭동왕' '시민왕' 등으로 비꼬았다.
하지만 지지층의 한계가 분명했던 루이 필리프 1세는 치세기간 동안 금융'수공업 부르주아들의 편에 서서 그들이 빠르게 부를 쌓아가도록 했으나 노동자 계층에 대한 배려가 없어 도시빈민화한 노동자들은 극도로 비참한 생활을 이어가야 했다. 결국 1848년 오늘 분개한 노동자들이 '2월 혁명'을 일으키면서 그는 권좌에서 밀려났고 프랑스 정치는 다시 제2공화정의 시대를 맞았다.
우문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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