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성악과 김인혜 교수의 제자 폭행 논란과 관련 서울대 징계위원회가 지난달 28일 김 교수에 대해 파면 결정을 내린 가운데 다양한 반응이 나오고 있다. '대학교수가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는 일반인들의 반응과 달리 음대 졸업생들과 교수들은 '알려진 정도라면 별 것도 아니다. 이보다 더한 일도 있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 생각보다 심각한 폭력적 언행
한 지역 음대 졸업생은 "연습 중에 교수가 실수한 학생을 향해 지휘봉을 집어던지거나 들고 있던 악보를 바닥에 패대기치는 것은 흔히 있는 일" 이라며 "성악과의 경우 여자 교수가 등 뒤에서 두 손으로 여학생의 배를 꽉 움켜쥐며 발성연습을 시키거나 머리를 쥐어박는 일은 예사롭다"고 말했다.
또 다른 졸업생은 "기악의 경우 실력이 없으면 4학년이라도 2학년보다 푸대접을 받고 뒷자리에 앉기 일쑤며, 실력이 없으면 후배들조차 선배를 무시한다" 며 "그런 상황을 막기 위해 교수들이 연습을 강요하고, 학생들도 악착같이 연습을 한다"고 말했다. 폭행 논란과 관련해서도 음대생들은 "폭언과 폭행이 근래에 크게 줄었다고 하지만 학교 내 군기와 서열은 여전하다"며 "10여 년 전까지만 해도 후배들이 선배들로부터 방망이로 얻어맞기도 했다"고 귀띔했다.
한 음대 교수는 "김 교수가 시어머니 생일잔치에 제자들을 동원했다고 하는데, 스승이 주최하는 잔치에 전공 제자들이 참석해 축가를 부르는 것이 죄악처럼 여겨지는 것은 납득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이는 일반인의 인식과는 거리가 있다는 지적에 대해 이 교수는 "스승으로부터 배운 지식, 자신이 가진 재능을 스승 주최의 잔치에서 펼쳐보이는 것이 죄악이라면 너무 야박하다"고 했다.
◇ 무료출연·티켓 강매 다반사
티켓 강매, 무료 출연 등이 만연해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지역의 음대 성악과를 졸업한 한 학생은 "대학을 졸업한 지 10년이 지났고, 나이가 30대 중후반이 됐지만 지금도 지도교수가 기획하는 공연에 무료로 출연하는 게 현실" 이라며 "학창시절부터 지금까지 여러 차례 지도교수가 기획하거나 연출하는 공연에 출연했지만 출연료를 받아본 적은 없다"고 말했다. 이 성악가는 "출연료 문제에 대해 이야기를 꺼낼 분위기가 아닐 뿐만 아니라 교수 중에는 '출연시켜 주는 게 어디냐?'라는 인식을 갖고 있는 사람도 많다"고 덧붙였다.
이 같은 문제는 비단 음악대학에 국한된 문제는 아니다. 몇몇 민간 오페라단의 경우 출연료를 지급하지 않거나 턱없이 적은 출연료를 지급하기도 한다. 또 출연자에게 티켓을 내주며 그것을 팔아서 절반은 출연료로 하고, 절반은 공연제작비로 보태라고 요구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 음대와 공연계의 구조적 문제
이 같은 현상은 음대의 도제식 교육 전통에서 기인한다는 게 음악인들의 견해다. 학생 몇 명을 한 교수가 졸업할 때까지 지도하는 구조인데, 일단 교수 눈 밖에 나면 졸업한 후에도 설 자리가 없기 때문에 '죽은 듯이 지내야 한다'는 것이다. 해외유학을 다녀와도 지도교수가 자리를 알아봐 줘야 하는데 마음에 들지 않으면 시간강사조차 맡지 못한다는 얘기다. 그래서 졸업하고 20년이 지나도 음악계에서 살아남자면 스승의 날, 명절 등을 그냥 지나치지 못한다. 교수의 눈에 들기 위해 공연티켓 구입, 선물, 교수가 음반이나 책 출간 때 대량 구입 등이 비일비재하다는 것이다. 심지어 제자들에게 악기를 소개해주고 리베이트를 챙기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공연티켓 강매는 기본적으로 오페라나 음악회의 공연제작비가 많이 든다는 데에도 원인이 있다. 한 오페라 제작자는 "만약 작품 제작비를 근거로 티켓 값을 매긴다면 5만원짜리, 3만원짜리 그랜드 오페라 티켓은 있을 수 없다. 티켓 값이 최소한 20만원 이상은 돼야 제작비를 맞출 수 있다" 며 "제작비는 많이 들고, 시민들은 제작비에 준하는 티켓 값을 지불할 준비가 돼 있지 않은 탓에 그 부담이 음악대학 학생들이나 출연자들에게 돌아가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 새 학기 대학가, 변화 여부에 촉각
3월 대학 신학기가 시작되면서 김 교수의 제자 폭행 논란이 캠퍼스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음악계는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학생 폭행, 티켓 강매 등 음악계와 음대의 관행에 대해 사회적 지탄이 이어지면서 음악계에는 '새학기부터는 분위기에 다소간 변화가 불가피하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한 음악계 관계자는 "음악인들 사이에서 김 교수의 사례는 평범하게 여겨질 정도로 일반화된 것"이라면서도 "음악대학에서 그렇지 않아도 학생과 학부모들의 크고 작은 항의가 잇따르고 있는 가운데 이 사건이 주목을 받으면서 지금까지의 관행을 바라보는 학생들의 시각이 달라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는 특히 아직 음악대학의 분위기에 익숙하지 않은 신입생들을 중심으로 변화가 있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음악인들은 "이번 사건을 논란이 일고 있는 김 교수만의 문제로 본다면 이 같은 관행은 계속 이어질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했다.
조두진기자·최세정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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