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신작 영화 리뷰] 파이터

무적의 챔프, 링 밖엔 더 센 상대 그 이름은, 가족…

영화 '파이터'는 조연이 빛나는 영화다. 주연인 31살의 복서 미키(마크 월버그)보다 그를 둘러싼 인물군들의 빼어난 연기가 극을 살린다. 형 디키 역의 크리스천 베일, 어머니 앨리스 역의 멜리사 레오, 여자친구 샬린 역의 에이미 애덤스 등은 물론이고, 아내에게 기를 못 펴는 아버지 잭 맥기 등 기가 막힌 캐스팅과 기가 막힌 연기로 관객을 사로잡는다.

이 중 세 명이 올해 83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조연상 후보에 올랐고, 둘이 수상했다. 2005년 '머시니스트'에서 불면증으로 말라가는 환자 역을 맡아 30kg까지 감량했던 크리스천 베일은 '파이터'에서도 14kg을 감량하고 열연해 남우조연상을 받았다. 멜리사 레오는 고집스럽고 괴팍하기까지 한 아홉 남매의 어머니를 완벽하게 연기해내며 골든글러브 여우조연상에 이어 이번에도 여우조연상을 따냈으며 미키의 여자친구로 출연한 에이미 애덤스와 여우조연상 경합을 벌였다.

데이비드 러셀 감독의 '파이터'는 실화를 바탕으로 한 복싱영화다.아일랜드 출신 미국인으로 '아이리쉬'라는 별명으로도 유명한 복싱 선수 미키 워드(1965~)의 성공과 그를 둘러싼 가족사를 그리고 있다. 미키는 1985년 프로에 입문해 2003년 은퇴할 때까지 51전38승13패의 전적을 가진 복서. 복서로는 한계를 넘긴 나이에 세계챔피언에 오른 전형적인 인파이터로 끈질긴 승부욕으로 많은 명승부를 남겼다. 라이트웰터급 세계챔피언이던 지난 2002년과 2003년 아르투로 가티와 3차례에 걸쳐 복싱사상 기념비적인 대결을 펼쳤다. 한 발도 물러서지 않으며 녹다운을 주고받는 난타전을 벌여 세 차례 모두 3년간 '올해의 명승부'에 선정되기도 했다.

그러나 '파이터'는 미키의 링 위의 성공만 그린 영화가 아니다. 가족과 갈등, 특히 형제의 애증에 포커스를 맞춰 이야기를 끌어간다.

한물간 31살의 복서 미키는 세계챔피언이 되는 것이 꿈이다. 그러나 가족들의 등살에 늘 시달린다. 트레이너인 형 디키는 한때 슈거 레이 레너드를 다운시켰던 복서로 미키에게는 우상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마약 중독에 경찰 사칭, 폭력, 절도 등으로 감옥을 들락거리는 대책없는 범죄자일 뿐이다. 매니저인 어머니는 시합보다 돈 벌이에 혈안이 돼 있다. 완패할 줄 알면서도 돈을 위해 아들을 링 위로 올려 보내 혹독한 매질을 당하게 한다. 그렇게 번 돈으로 9명의 남매가 살아간다.

미키는 술집 여종업원 샬린을 만나면서 자신을 찾게 된다. 가족들로부터 떨어져 제대로 된 훈련을 받을 기회도 얻는다. 그리고 경기에서 승승장구한다. 그럴수록 가족과의 갈등은 더욱 깊어간다.

영화는 미키의 고군분투를 담담하게 그려낸다. 벗어날 수 없는 가족이란 그 질긴 인연을 받아들이면서도 한 가닥 외로운 자신의 길을 걸어간다. 링 위에서 처절하게 싸우는 미키는 링 아래에서 또 처절하게 싸워야 할 파이터인 셈이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것도 있지만, 영화의 힘은 다양한 캐릭터들이 끌어올리고 있다.

특히 디키는 참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인물로 나온다. '미끄러져 넘어진 것'이라는 말도 있지만 그는 슈가레이 레너드를 다운시켰다는 것을 늘 자랑하며 다닌다. 그러나 자잘한 범죄로 늘 가족들의 걱정을 끼치고, 미키에게도 짐이 된다. 누구보다 미키를 잘 알고 있어 KO로 이기도록 감옥에 면회온 미키에게 조언을 해주기도 한다. 특히 갈등이 극에 치닫자 동생의 여자친구를 찾아 화해를 맺는 장면은 짙은 형제애를 느끼게 해준다.

'파이터'는 복싱영화라기 보다 미국에서 살아가는 한 이민자 가족의 분투를 그린 영화다. 계속 맞다가 단 한 방으로 상대를 KO시키는 미키의 카운터펀치는 삶이 펴기를 애타게 기원하는 그들의 마음과 같은 것이다.

"형은 늘 내 영웅이었어"라는 미키의 마지막 대사는 늘 골칫덩이지만 그래도 믿을 수 있는 것은 형제와 가족이란 것을 보여주는 감동적인 대사다.

크리스찬 베일은 수상소감에서 시상식을 찾은 영화의 실제 주인공인 미키와 디키 형제를 향해 "당신들의 이야기는 정말 놀랍고 감동적이었다"라고 말했다. 10일 개봉 예정. 15세 관람가. 러닝타임 114분.

김중기 객원기자 filmton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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