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지방의 한말 항일 의병전쟁은 어느 지역보다 강렬하고 장기간에 걸쳐 전개되었다. 경북은 가장 먼저 의병이 시작된 곳이요, 전기 의병으로는 가장 오랫동안 항쟁이 지속된 곳이다.
하층계급이 의병의 주도세력으로 급성장한 곳 또한 경북이고, 팽팽하게 나뉘던 계몽운동과의 경쟁관계를 극복하고 공동의 광장으로 합류한 곳도 경북이다. 경북의 의병항쟁은 넓은 범위에서 문화권별로 전개된 특징을 보이고 있다.
북부지역의 안동·예안·예천·봉화·영주·의성·청송·영양, 서북부지역의 문경·상주, 동해안 북부의 영해·영덕, 서부지역의 김천·선산, 남동부의 영천·경주·포항 등 여러 지역에서 의병항쟁이 펼쳐졌다.
북부지역에는 권세연·김흥락·김도화·이만도·김도현·금석주·박주상·장윤덕·김상종·심성지, 서북부지역에서는 이강년, 동해안의 신돌석, 서부지역의 허위, 남동부지역의 정환직·정용기 부자와 최세윤 등의 활약이 돋보였다.
경북지역의 의병항쟁사를 전기와 중·후기 그리고 1910년의 전환기·말기 등의 시기별로 구분하고, 북부·서북부·동해안·서부·남동부 등 문화권별로 전개된 의진을 중심으로 살펴본다.'
◇전기의병(1984~1986)
경북지역의 전기의병은 안동에서 처음 시작되었다. 의병전쟁사의 단서를 연 안동의병은 갑오변란(1894년 6월 일본군이 경복궁을 강제 점령하고 멋대로 제도 개혁을 요구한 사건) 직후 공주 유생인 서상철이 안동에 와서 격문을 돌리고 예안의 실력자 이만도 등을 만나 거병을 논의하면서 비롯됐다.
안동의진은 상주 함창의 태봉에 있던 일본군 병참부대를 1차 공격 목표로 삼고 태봉전투에 참가했으나 열악한 무기와 훈련 부족으로 후퇴했다. 비록 패배했지만 한말 의병사의 새 장을 여는 역사적 의미가 있는 거사였다.
안동의병은 1985년 을미사변과 단발령에 대한 저항으로 다시 일어났다. 이른바 을미의병이다. 김흥락·김도화·곽종석 등의 명의로 안동통문(安東通文)이, 이만도·금봉술·이만윤 등의 명의로 예안통문(禮安通文)이 배포되었다.
봉화의 권세연을 의병장으로 한 1차 의진과 김도화를 의병장으로 한 2차 의진이 안동부성을 공략했으며, 안동권 7개 의진과 제천의진이 연합해 다시 태봉을 공격해 나흘동안 격전을 벌이다 후퇴했다. 이를 추격한 일본군은 안동부 시가지에 방화를 해 1천여 호의 민가를 잿더미로 만드는 만행을 저질렀다.
이후 약화된 안동의진은 일부는 전력의 한계에 부딪혀 후일을 기약하면서, 일부는 국왕의 선유에 의해 해산했다. 그러나 영양의 김도현 의진은 강원도 일대와 일월산을 중심으로 저항하는 등 가장 오랜 항전을 펼쳤다.
문경 중심의 서북부지방은 이강년 의진이 안동의진에 쫓겨 상경하던 안동부 관찰사 김석중을 사로잡아 처형하는 등 활약을 벌이다 일본군의 기습을 받아 제천의진에 합류했다.
영덕·영해 중심의 동해안 북부지방은 영양 김도현 의진의 활동무대이기도 했으며 영덕과 영해에서 조직된 의진이 있었으나 별다른 전과는 없었다. 김천·선산을 중심으로 일어난 의병이 김산의진이다.
1896년 3월 금릉향교에서 결성된 김산의진은 김산(여영소·어중룡) 상주(조남식·조동석) 선산(허위) 및 충청도 등지의 유생으로 구성된 연합의진으로 이기찬을 창의대장으로 추대했다. 김천 장날 수백명의 장병을 모집하고 금릉 무기고를 습격해 무장한 김산의진은 대구감영 관군과의 1,2차 전투에서 패배하고 흩어지면서 일부 의병이 유인석 의진에 합류했다.
동남부지방에는 최세윤이 흥해에서 독자적인 의병을 거느리고 관군과 싸우다 안동연합의진에 합세했으며, 경주에는 이채구가 이끄는 의진이 경주성 공격에 성공을 거두기도 했다.
전기의병은 경북 전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났으나, 대체로 북부지역이나 서북부지역이 비교적 전투성 의병의 성격을 띤데 비해 나머지 지역은 시위성이 강했다고 할 수 있다. 전기의병은 모두 유림 중심 조직이었고 척사의병의 성격이 강했다.
◇중·후기의병(1904~1909)
경북지방의 중기의병은 지역별로 북부지역과 동해안 북부지역 및 동남부지역에서 일어났다. 안동의진은 김도화의 문인이었던 유인석·이상룡·김동삼·이인화 등 소장 유림세력의 계몽운동의 바람과 장기간의 항전으로 인한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약화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전기의병 때 이름을 떨친 유시연과 영양의 김도현이 재기하면서 청송의 임용상, 영해의 신돌석, 진보의 이현규 의진 등과 연합하거나 연결하면서 곳곳에서 유격전을 전개했다.
동해안 북부지방에는 신돌석이라는 평민 의병장이 등장해 수백명의 민중 저항세력을 규합하며 내륙으로는 영양·안동까지, 남으로는 청하에 이르는 넓은 지역을 종횡무진 휩쓸며 수많은 전투에서 전설적인 승리를 거두었다.
전국적인 명성에다 주민의 지지도가 높았던 신돌석 의병장의 휘하에는 양반계급인 유생들이 많았으며, 안동의 퇴계 종가나 이상룡 가문이 지원을 했다는 점은 신분사회를 극복하는 진보성을 나타내며 의병 전쟁사에서 새로운 장을 열게 하였다.
동남부지방의 산남의진은 영천 검단리(현 충효동)가 고향인 정환직·용기 부자가 의병장으로 나서 일본군과 활발한 전투를 벌이다가 장렬하게 전사하는 전례없는 의병항쟁사를 남겼다.
◇전환기·말기의병(1910~1919)
경술국치 이후 1910년대 들어 경북의 의병은 주로 소백산맥 근방의 북부 산악지대에서 소규모의 유격전으로 마지막 항전을 펼쳤다. 안동 중심의 척사유림들은 자정순국으로 처절한 항거를 했으며, 일부는 만주로 망명해 독립군으로 발전했다.
그리고 의병계열의 인물들이 풍기에서 비밀결사체인 광복단을 조직했으며, 문경에서는 민단조합이라는 의병적 조직이 결성되었다. 민단조합은 군자금 모집 과정에서 발각되어 와해되었다. 하지만 광복단은 대구의 계몽운동조직인 조선국권회복단과 통합하며 일제강점기 초반 한국의 대표적인 항일조직인 광복회로 발전해 경북의병사의 빛나는 말미를 장식했다.
조향래기자 bulsajo@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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