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이웃사랑] "놀이터도 못가고 혼자 놀아요"…구순구개열 앓는 지희 양

코가 없는 지희는 자신의 특이한 외모보다 바깥의 차별과 놀림이 더 견디기 힘겹다. 우태욱기자 woo@msnet.co.kr
코가 없는 지희는 자신의 특이한 외모보다 바깥의 차별과 놀림이 더 견디기 힘겹다. 우태욱기자 woo@msnet.co.kr

지희(가명·6·여)는 유치원 친구들에게 "코가 없다"고 늘 놀림을 당한다. 사람을 피하는 버릇도 유치원 생활을 하면서 더 심해졌다. 기자가 "몇 살이냐"고 묻자 아이는 땅에 시선을 고정시킨 채 손가락으로 나이를 알려줬다. 말을 걸면 걸수록 지희는 더 뒷걸음쳤고 결국 엄마 남미현(가명·33·여) 씨의 다리에 얼굴을 파묻어 버렸다. 지희는 '언청이'라고 부르는 구순구개열 장애를 앓고 있다. 친구들의 놀림이나 특별한 외모보다 지희를 더 외롭게 하는 것은 아빠의 빈자리다.

◆코가 없는 아이

6살 난 꼬마는 자신을 감추는 데 익숙했다. 다른 사람들이 제 얼굴을 유심히 쳐다보기라도 하면 이내 고개를 돌려 버렸다. 지희는 날 때부터 사랑받지 못했다. 미현 씨가 임신 6개월 때 딸의 장애를 알게 됐고 남편(가명·40)은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아이를 당장 지우라"고 했다. 엄마에게 지희는 2살 많은 지현이(가명·8)처럼 똑같이 소중한 딸이었다. 장애 때문에 뱃속에서 움트고 있는 생명의 씨앗을 꺼트릴 수는 없었다.

이렇게 해서 지희는 세상의 빛을 보게 됐다. 하지만 얼굴이 일그러진 채 태어난 지희를 처음엔 친척들도 외면했다. 집 앞에서 10m만 나가면 널찍한 공원이 있지만 외할머니 김춘분(69) 씨는 손녀딸을 공원에 데려가지 않았다. 바깥 출입을 할 때면 지희 얼굴에 포대기를 둘둘 감아 드러나지 않게 했다. 지희에게 향하는 동네 사람들의 시선과 수군거림이 무서웠다. 아이는 자연스레 집안에서 지내는 시간이 길어졌고 말수도 줄어들었다. 집 앞 놀이터에 그네를 타러 갈 때도 마스크로 얼굴을 가렸다. 자신의 외모가 남들과 다르다는 것을 의식한 것이다.

이런 딸 때문에 미현 씨는 큰 결심을 했다. 지희를 집에 가둬두고 키워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고 지난해 유치원에 입학시켰다. 가슴에 상처가 생기더라도 세상과 부딪치는 편을 택한 것이다. 지희의 유치원 생활은 엄마의 생각보다 힘들었다. 아이들은 지희의 '다름'을 인정할 만큼 성숙하지 못했고, '코 없는 아이' '아빠 없는 아이' 등 차이점을 찾아내 따돌리기 시작했다. 친구를 만들기 위해 다닌 유치원에서 지희는 혼자가 됐다. 혼자 소꿉놀이를 하고 책을 읽고, 밥을 먹고, 이렇게 쓸쓸한 유치원 생활을 한 지도 벌써 1년이 다 돼간다. 미현 씨는 "지희가 유치원에서 '혼자 논다'고 말할 때마다 가슴이 미어진다. 이 모든 게 엄마 탓인 것만 같아서 미안하다"며 눈물을 쏟아냈다.

◆사랑받지 못한 아이들

지희와 지현이는 풀이 잔뜩 죽어 있었다. 한창 응석을 부릴 나이인데 기가 죽은 아이들은 인터뷰 내내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미현 씨는 "아이들이 사랑에 굶주려 있다"고 했다. 그는 친척집에 얹혀 사는 처지에 아이들이 밝고 씩씩하게 자라기를 바라는 것은 엄마의 욕심이라고 생각했다. 미현 씨는 2006년 지희를 낳은 뒤 큰오빠 영철(40) 씨의 집으로 들어왔다. 미혼인 오빠와 언니 영숙(36) 씨, 부모님이 함께 사는 집에 미현 씨가 들어온 것이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사회 생활을 하던 미현 씨는 23살 때 지금의 남편을 만났다. 아는 사람에게 사기를 당해 5천만원의 카드빚이 있었던 미현 씨에게 남편은 "결혼해서 같이 빚을 갚고 행복하게 살자"며 그의 손을 잡았다. 남편 말만 믿고 결혼식을 올리지도 않은 채 살았는데 남편은 조금씩 변하기 시작했다. "빚 있는 여자랑 결혼해서 내가 왜 이 고생을 하냐"며 친정 식구들과 말싸움을 종종 했고 집을 비우는 횟수도 늘어났다. 첫째 지현이가 태어나면 남편도 바뀔 것이라 생각했는데 오히려 가정을 외면했다. 뚜렷한 직장이 없었던 남편은 지희의 장애를 안 뒤 아예 연락을 끊었다. 그래서 미현 씨는 아이들이 "아빠가 어딨냐"고 물으면 "하늘나라에 갔다"고 답할 수밖에 없다.

현재 친정 식구들도 미현 씨 가족을 따뜻하게 품어줄 여유가 없다. 외할아버지(75)는 지난해 중풍으로 쓰러져 거동이 힘든 상태다. 주유소 아르바이트를 하는 오빠, 대형마트에서 일하는 언니가 버는 돈을 합쳐도 200만원이 될까 말까다. 기초생활수급자인 미현 씨의 생계급여를 보태도 큰오빠가 집을 사느라 받은 은행 대출 이자 50만원과 각종 생활비를 감당하기엔 턱없이 부족하다.

◆"코를 만들어 주세요"

코뼈가 없는 지희는 코가 푹 꺼져 있었다. 입 천장이 갈라져 천장에 구멍이 있는 지희가 윗니가 나지 않는 것도 이 때문이다. 입 천장과 양쪽으로 갈라진 윗 입술을 꿰매는 수술을 했지만 여전히 아이의 얼굴에는 중심이 잡혀 있지 않았다. 지희는 벌써 2차례 수술을 받았다. 없는 형편에 미현 씨는 언니의 도움을 받아 지희에게 입술을 꿰매는 수술을 받게 했다. 문제는 성장 속도에 맞춰 계속해서 수술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구순구개열' 장애는 첫 수술만 의료혜택을 받을 수 있으며 이후 수술은 '성형'으로 간주돼 정부의 혜택을 받을 수 없다. 지난해 10월로 예정됐던 수술을 미룬 것도 수술비 때문이었다. 귀에 있는 연골을 떼어내 지희의 코뼈를 만들어 주고 싶어도 차일피일 미루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도 미현 씨는 딸이 평범하게 세상 사람들과 섞여 살아가길 원했다. 집안 환경도, 아이의 생김새도 평범하지 않지만 지희가 자라면서 세상의 편견과 장애를 극복해 주길 바랐다. 지금 지희에게 육신의 병보다 더 무서운 것은 가슴에 난 상처이기 때문이다.

황수영기자 swimmin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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