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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리의 시와 함께] 고목에게 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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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당초 산에 대해 시 나부랭이로 아첨 몇 번했다고 산이 덥석 열외로 쳐주리라 생각한 게 실수였다 허락도 없이 무단 점거한 산길 알아서 가만가만 그리로만 다닐 일이지 태초의 언어만으로 저희끼리 잘 사는 숲에 벌써 특권이라도 주어진 양 오염 겹겹의 은유와 상징 몇 외워 함부로 끼어들었으니 그럴밖에 가시넝쿨 헤치다가 무심결에 잠복한 나무와 정면충돌하고 말았다. 그것도 아예 풀죽은 고목 가지에게 된통 일격을 당했다 눈두덩이 부어오르고 피가 솟구쳤다 그러나 상처는 정확히 눈과 눈두덩의 경계에 딱 그치고 있었다 일촉즉발의 순간 눈꺼풀이 저를 바쳐 눈알을 오구감탕 감싼 것이다 어미가 새끼를 품듯 껍질이 알을 꼭 껴안은 것이다 참으로 잽싸고 갸륵한 충정이다 얼마나 놀라운 경비태세냐 좋다 오늘은 비록 낯가림 심한 산에게 징벌의 낯붉힘을 당한 터지만 그래도 내겐 혼신을 다해 제 몸을 감싸는 초병이 있다 그걸 확인했다 든든한 백이다 이제 산도 알 것이다.

김규성

공부 좀 했다고 오만방자한 날은 어김없이 시험을 망치곤 했다. 이 정도쯤이야 하고 방심하다가는 후보에도 못 드는 씁쓸한 경험도 있고, 늘 오르내리던 계단에서 간당간당 발 까불다가 굴러서 깁스한 경험 물론 있고말고.

삶은 참 공평하게도 다가오더라. 공짜로 얻어진 건 꼭 그만큼 나가게 되더라. 그러니 무얼 더 중언부언한단 말인가. 꽃 진 자리 꽃 나고, 물 나간 자리 다시 물 고이는데.

이십여 년 전 환성사에서 어느 스님이 하신 말씀 아직도 기억난다. "인과란 1㎜의 오차도 없습니다. 잠시 잠깐이 순간이며 영원입니다. 잘 사셔야 합니다." 그래도 낙담은 말자. 삶은 우리에게서 다 앗아가지는 않으니까. 된통 일격을 가할 때도 마지막 '눈꺼풀' 하나는 남겨 두시니까. 1㎜의 '초병' 하나는 남겨두시니까.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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