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사설] 퇴직 공무원 자리 마련 재원이 된 고용보험기금

고용노동부가 2천억 원이란 거금을 들여 경기도 분당에 초호화판 직업 체험관을 짓고 있다. '한국 잡월드'라는 이름의 이 체험관은 대지 2만 5천여 평, 연면적 1만 2천여 평의 초현대식 건물로 내년 3월에 문을 연다. 청소년들이 다양한 직업의 특징을 배우고 직접 체험할 수 있게 한다는 것이 그 취지지만 일본에서는 이미 실패한 사업이다. 물가 폭등으로 전 국민이 내핍에 들어갔지만 정부는 성공 가능성도 희박한 사업에 흥청망청 돈을 써대고 있는 것이다.

잡월드에서 제공하려는 체험 시설을 보면 굳이 이런 초호화판 건물까지 지어야 하는지 납득이 안 된다. 잡월드에는 은행원, 자동차 정비원, 경찰관, 펀드 매니저, 의사, 슈퍼마켓 계산원 등 66개 직업을 체험할 수 있는 시설이 들어선다. 그러나 이런 직업들은 학생들이 학교 수업과 언론, 평소 생활 현장 등을 통해 이미 알고 있는 것들이다.

더 기가 막히는 것은 건설비가 고용보험기금에서 빼낸 것이란 사실이다. 고용보험기금이 무엇인가. 실직 근로자들의 생계를 지원하기 위한 사회안전망이 아닌가. 더구나 고용보험기금은 경기 악화로 실업급여가 늘어나면서 2007년 이후 매년 적자를 내고 있다. 실직 근로자를 지원할 돈도 모자라는 판에 기금 설립 목적과 전혀 관계가 없는 사업에 기금을 빼내는 그 뻔뻔함이 놀랍다.

일본의 직업체험관은 운영 직원이 퇴직 관료로 채워지면서 물의를 빚은 바 있다. 500명의 직원을 둘 예정인 한국의 체험관도 같은 꼴이 될 것이 뻔하다. 그렇다면 직업체험관은 청소년에게 직업 세계를 체험케 한다는 미명 하의 퇴직 공무원 자리 보전 기관이나 다름없다. 실직 근로자를 지원하라고 만든 고용보험기금이 퇴직 관료의 자리 만들기에 쓰이고 있는 것이 지금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