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으로 우려했던 일이 현실화되고 있다. 국토 동남권 '신공항 무용론'이 중앙에서 슬그머니 일기 시작하더니 이제는 아예 '원점에서 재검토'라는 그럴듯한 말로 포장된 채 전국을 활보하고 있다. 답답한 심정은 영남권 주민들뿐이고 실제 칼자루를 쥐고 있는 중앙은 별무관심이다. 더욱 답답한 것은 영남권이 정확하게 양분돼 한 치의 양보도 없이 이전투구를 벌이고 있다는 점이다.
워낙 경쟁이 치열해 어느 쪽이든 선택이 되면 나머지 한쪽은 거의 죽는다고 봐야 한다. 표와 직결되는 민주주의에서 이 '뜨거운 감자'를 누가 삼키려고 하겠는가. 이런 상황이니 중앙의 입장에서는 차라리 '없었던 것으로 하자'는 제3의 논리가 고개를 드는 것은 당연하다.
정치권에서는 이미 "조사 결과 두 곳 다 타당성이 없다면 양쪽 다 못할 수도 있는 것 아니냐"는 의견과 "신공항은 경제성도 떨어지고 지역 갈등을 유발하니 원점에서 재검토하자"는 의견이 공공연히 나와 영남권 민심을 뒤집어 놓았다. 급기야 김형오 전 국회의장은 "죽을 각오로 얘기하지만 신공항은 타당성이 없다"고 했다. 그는 부산이 지역구인데도 이렇게 대못을 박은 것은 무엇을 암시하고 있는가.
지금까지 밀양 그룹과 가덕도 그룹은 벼랑 끝 게임을 하고 있다. 어느 한쪽이 결정돼도 심사 결과를 놓고 승복하지 않을 것이 뻔하다. 워낙 나름대로 논리 개발을 많이 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둘 다 실패하면 상처는 더 커진다. 서로를 원망할 수밖에 없는 구도로 발전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바닥으로의 경쟁(race to the bottom) 게임이다. 일반적으로 경쟁은 효율성을 높이는 가장 좋은 방법이지만 정책 사업 유치 경쟁은 서로의 살을 갉아먹는 최악의 선택이다.
이제 밀양 그룹과 가덕도 그룹이 간과한 것이 무엇인지 드러났다. 두 그룹은 서로 목청만 높이면 이기는 줄로 알았다. 중앙이라는 '제3의 세력'이 있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은 것이다. 그리고 그 세력이 양쪽 모두를 무력화시킬 수 있을 정도로 강하다는 사실도 알았다.
그렇다면 양 그룹의 선택은 자명하다. 지금이라도 합리적인 판단에 승복하겠다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만약 신공항이 어느 쪽으로도 가지 않고 '찻잔 속 태풍'으로 끝난다면 양 그룹 다 그 쓰라린 생채기를 어떻게 이겨낼 수 있겠는가.
윤주태(객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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