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가 바뀌면서 퇴색했지만 '군사부일체'(君師父一體)는 여러모로 의미가 있는 말이다. 임금과 스승과 아버지의 은혜(恩惠)는 똑같다는 사전적 의미를 넘어 스승과 학부모의 역할은 어때야 하는가를 곱씹게 하게 한다. 요즘에는 교권(敎權)이 추락했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자식을 학교에 맡긴 학부모들은 선생님을 존경하는 마음이 가득했다. 제자와 자식의 앞날을 서로 걱정하고 잘되기를 바라며 교사와 학부모가 마음을 합친 것이다.
1978년에 설립돼 올해로 33년을 맞은 '구남회'. 강산이 세 번 바뀌는 긴 세월 동안 만남이 이어져 온 구남회는 교사와 학부모들이 결성한 아름다운 모임이다. 구남회를 결성한 사람들은 달성군 구지면에 있던 구남초교 교장, 교사들과 학생들의 아버지였다.
70년대 후반 구남초교는 전체가 6학급에 불과한 시골의 작은 학교였다. 시골학교여서 교육 여건도 그다지 좋지 않았다. 당시 교장을 역임한 권영준 구남회 회장은 "부임 당시만 해도 달성군 전체 학교 중 학업성적이 하위권에 처져 있었다"며 "하지만 자식의 교육을 걱정하는 학부모님들과 교사들의 열정이 하나로 어우러져 얼마 후에는 2, 3위권으로 올라서는 기적을 이뤄냈다"고 회고했다. 학부모들도 학교에 한없는 애정을 갖고 있어 스스로 학교에 찾아와 부서진 책걸상을 고쳐주고 운동장을 정비해주는 등 열과 성을 다했다.
이 같은 과정을 거치면서 자연스럽게 구남회가 결성됐다. 구남초교에 근무한 교직원과 학부모를 대상으로 한 모임이 결성된 것. 회원의 상호 친목은 물론 자녀교육 방법 및 교육정보, 의견 교환, 영농방법 개선 등에 회원들이 마음을 합치기 시작했다.
권 회장은 "학교와 학부모가 신뢰를 갖고 가깝게 지내게 된 것은 학생 수가 180명도 안 되는 소규모 학교를 구남회 회원인 교원과 부모가 일치단결하여 주야로 학교 교육에 전념한 것이 계기가 됐다"며 "대구시내 다른 큰 학교를 능가할 정도로 학부모들의 학교에 대한 애정이 대단했다"고 회고했다. 경남 창녕에 거주하는 한 회원은 이 학교의 교육내용이 우수하다고 하여 자녀를 통학시키기도 했다.
교사들의 학교에 대한 열정도 대단해 구남회 회원인 황수룡 교사의 경우 매달 월급에서 돈을 떼어 부락 단위로 선발한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전달하기도 했다. 황수룡 회원은 "아이들이 수업을 끝내고 집에 돌아가면 야산으로 소를 먹이러 다니는 등 공부를 제대로 할 수 없는 것을 보고 학부모들에게 협조를 구해 면학 분위기를 조성하는 데 힘을 쏟았다"며 "학생들에게 충효의 마음을 심어주는 데 기여한다는 마음에서 장학금을 전달했다"고 얘기했다.
세월이 흐르면서 구남초교에 들어오는 학생들이 적어져 안타깝게도 학교는 문을 닫았지만 구남회 회원들의 만남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학교를 떠난 교사들도 빠지지 않고 모임에 참석한다. 일 년에 두 차례씩 모임을 갖고 여행을 같이하고 소식을 전하는 등 친목을 다져왔다. 당시 육성회 회장을 맡았던 최인부 구남회 총무는 "당시 40대였던 회원들이 어느새 70, 80대가 됐다"며 "아이들을 통해 맺어진 선생님과 학부모의 아름다운 인연이 수십 년 동안이나 이어져온 데 대해 자부심을 느낀다. 앞으로도 구남회 회원들의 인연은 계속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대현 문화부장 sk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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