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음조차 힘든 병 '뇌졸중'. 옛날엔 중풍이라고 부르더니 갑자기 왜 뇌졸중이냐고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많다. 일부 사람은 '뇌졸증(症)'이라고 오해하기도 한다. 병명의 전체 이름은 '뇌졸중풍'(腦卒中風)이다. 말 그대로 '뇌에 갑자기(卒) 진행한다(中)'는 의미이고, '풍'(風)은 '(병이) 뻗친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흔히 중풍과 뇌졸중은 같은 의미로 쓰이지만 한의학에서 말하는 '중풍'에는 서양의학이 '뇌졸중'으로 분류하지 않는 질환도 포함한다. 뇌졸중의 세계를 좀 더 자세히 알아본다.
뇌졸중은 왜 그렇게 급히 병원에 와야 하며, 빨리 치료해야 한다고 난리일까? 뇌신경세포가 지닌 특징 때문이다. 먼저 뇌신경세포는 '욕심'이 없다. 간, 근육 등 대부분 세포는 글리코겐 등 유사시에 대비한 에너지원을 쌓아둔다. 피 흐름이 중단돼도 한동안 견딜 수 있다. 하지만 뇌 조직은 다르다.
두개골이라는 한정된 공간에 갇혀 있기 때문에 함부로 부피를 늘릴 수 없다. 뇌는 인체에서 가장 연약한 조직이다. 마치 연두부와 같은 정도다. 외부 손상을 막기 위해 단단한 두개골에 넣어두었는데 이것이 문제의 발단이다.
두개골이라는 한정된 공간 속에서 뇌의 부피가 커지면 전체 조직의 압력이 높아지고 결국 피가 흐를 수 없게 된다. 따라서 뇌신경세포는 커지면 안 되고, 세포 내에 에너지를 쌓아둘 수도 없다. 심장은 뇌에 다른 조직의 40배에 달하는 많은 피를 보낸다. 하지만 뇌는 필요한 만큼만 소비하고, 남은 산소와 영양분은 미련없이 정맥을 통해 다시 내보낸다. 뇌경색이나 뇌부종(뇌가 붓는 것)이 생기면 그 질환 자체 때문이 아니라 피가 잘 올라가지 못해 숨지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뇌경색(뇌혈관이 혈전으로 막히는 경우)이 와서 피를 통한 산소와 영양분 공급이 중단되면 그 즉시 뇌 세포는 죽어가기 시작한다. 실험에 따르면, 중뇌동맥이 막히면 1분에 180만 개(시간당 1억 개)의 세포가 죽는다. 전체 신경세포 수는 15억 개에 불과하다.
뇌신경세포의 다른 특징은 '재생'이 없다는 것이다. 피부조직은 28일, 폐는 20일, 위장관은 3일 등 인체 모든 조직은 자동으로 죽고 재생해 항상 새것으로 유지된다. 그러나 뇌신경세포는 한번 죽으면 전혀 새것으로 대체하지 않는다. 이는 당연한 것이다. 다른 세포처럼 뇌 세포가 계속 새것으로 대체된다면 인간은 아무런 사고나 기억 활동을 못할 테니까.
◆왜 하필 '3시간'인가?
지난 회에 설명했듯이 뇌경색(또는 허혈성 뇌졸중)은 혈관이 터져버리는 뇌출혈(또는 출혈성 뇌졸중)과는 달리 피떡(혈전)이 가느다란 뇌 혈관을 막아 생기는 것이다. 이를 치료하려면 최대한 빨리 혈전을 제거해야 한다.
1995년 미국 식품의약국(FDA)에서 '혈전용해제 정맥주사 치료법'을 채택했다. 말 그대로 정맥에 혈전용해제(혈전을 녹여버리는 주사약)를 넣어 막힌 혈관을 뚫는 것이다. 채택 당시 FDA는 뇌경색 발생 후 일정 시간이 지난 뒤 혈전용해제를 주사하면 오히려 뇌출혈이 발생할 위험이 높아진다며 '시간 제한'을 두었는데, 그 시간이 바로 '운명의 3시간'이다.
왜 하필 3시간인가. 이는 뇌 혈관의 특징 때문이다. 뇌혈관은 쉽게 말해서 비닐처럼 혈관 벽이 꽉 막혀 있다가 피가 모자라면 이를 열기 시작한다. 그런데 뇌경색이 오면 피가 부족하기 때문에 혈관 벽을 여는데, 너무 많이 열렸을 때(즉 시간이 늦었을 때) 혈전용해제를 쓰면 갑작스레 피가 몰려들어 뇌 안에서 대량 출혈이 생길 수 있다는 것. 아울러 시간이 늦을수록 혈전이 점점 딱딱하게 굳어지기 때문에 혈전용해제를 써도 녹지 않는다.
하지만 '3시간'이라는 기준에 대해 의사들은 '시간 만능주의'와 '허무주의'에 빠지지 말 것을 경고한다. 쉽게 말해 3시간 안에만 도착하면 된다고 생각해서 느긋하게 대처해서는 결코 안 되며, 3시간이 지났다고 해서 치료가 어렵다고 포기해서도 안 된다는 말이다.
앞서 밝혔듯이 뇌신경세포는 1분에 180만 개씩 죽어가기 때문에 병원에 1시간 만에 도착하는 것과 2시간 만에 도착하는 것은 천지차이다. 하지만 3시간이 넘더라도 8시간을 넘지 않는다면 기계적 혈전제거술(뇌혈관에 직접 기구를 집어넣어 혈전을 빼내는 것)이 가능하다. 뇌신경세포의 손상은 각오해야 한다. 그렇다 해도 후유증 최소화를 위해 이런 처치는 필수다.
◆어지럽거나 한쪽 눈 잘 안보이기도
시계 수리공인 50대 A씨. 몇 해 전 그는 대전에서 열린 기능경기대회 심사위원으로 참석한 뒤 열차를 타고 대구로 돌아왔다. 동대구역을 빠져나오던 그는 갑자기 몸의 절반이 마비되는 느낌을 받았다. 깜짝 놀랐지만 마비 증상은 이내 풀렸다. 이후에도 별다른 이상은 없었고 A씨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어느 날 시계수리점으로 찾아온 단골손님에게 자신의 마비 경험을 들려주었다. 그저 별일도 다 있다는 듯이 담담하게 이야기했다. 마침 그 말을 들은 사람은 다름 아닌 대학병원의 뇌졸중 전문의.
그는 시계수리공이 겪은 증상이 이른바 '미니 뇌졸중'임을 알아채고 곧장 병원으로 데려간 뒤 뇌혈관 MRI를 찍게 했다. 아니나 다를까 아무런 자각증상은 없었지만 혈전 때문에 미세 뇌 혈관이 막혀 있었다. 곧바로 조치를 취한 뒤 행여 다시 막히지 않도록 아스피린을 처방했다. 몇 해가 흘렀지만 지금도 그 시계 수리공은 아무 불편 없이 자기 일을 묵묵히 하고 있다.
흔히 '일과성 뇌허혈'이라고 불리는 '미니 뇌졸중'(미니 중풍). 뇌졸중 의사들은 이를 '유일한 희망'이라고 말한다. 또는 '뇌졸중을 대비할 수 있도록 하늘이 내려준 기회'라고 표현할 정도다. 처음 혈전이 생겨서 혈관을 막을 때엔 말랑하고 물컹한 상태다. 혈관은 이를 없애려고 애를 쓰고 대부분 쉽게 사라진다. 이때 나타나는 가벼운 증상이 바로 '미니 뇌졸중'이다.
뇌졸중이 왔을 때 완전한 정상상태로 회복하는 경우는 10% 이하임을 앞서 밝힌 바 있다. 하지만 미니 뇌졸중일 때 병원에 오면 이론적으로 90% 이상은 완전한 정상을 유지할 수 있게 된다고 한다. 미니 뇌졸중일 때 오는 증상은 ▷말이 어눌해지거나 ▷반쪽 마비가 오며 ▷어지럽거나 ▷한쪽 눈이 잘 안 보인다.
이런 증상이 몇 분간 지속되다가 회복되거나 또는 몇 초 동안 연달아 반복될 때 '미니 뇌졸중'을 의심해야 한다. 하지만 어쩌다 한 번 일어설 때 몇 초간 어지러운 증상은 해당되지 않는다. 미니 뇌졸중일 때 치료하지 않고 방치하면, 아무런 증상이 없다가 진짜 뇌졸중이 온다. 확률은 한 달 이내 30% 이상이다. 김수용기자 ksy@msnet.co.kr
자료 제공=대구경북 권역심뇌혈관질환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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